어제 오래간만에 친구집에 다녀왔습니다.
친구의 생후 8개월된 아기를 보니 제 아이의 그때 모습이 정말 까마득한 옛날 일 같습니다.
친구는 새로 산 유아복 사진을 보여주며 해외 직구로 반도 안되는 가격에 샀다고 자랑하는데
저는 그 브랜드를 들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또래 아이들 엄마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고,
현재 다니는 유치원 엄마중에도 연락하는 사람이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 정보를 알지도 못했고,
저는 아가방류의 한국 브렌드를 대충 사서 입혔습니다.
그것도 창고파격세일로 90-80% 세일할때만......^^;
비싼 그 옷들은 뭐가 다르냐고 물어봤더니 빨래를 해보면 확연히 티가 난다고 합니다.
뒤틀림없이 고른 면옷은 몇 번을 삶아 빨아도 솔기터짐 현상이 전혀 없다고 합니다.
저는.....솔기터진 옷이 있었는지도 전혀 기억이 없네요.^^;
겨우 베게만한 친구의 아들녀석보다 더 어릴 때부터 아이와 전 책을 읽었습니다.
불쌍한(?) 우리 아들은 창고파격세일 허름한 옷을 입고 생후 6개월부터 책만 읽었습니다.ㅜ.,ㅜ
지금 돌이켜보니 저는 일종의 이상한 자존심을 내세우고 있었습니다.
백화점 고급 브렌드의 옷을 입은 저 아이는 나중에 저 옷을 기억하지 못할테지만
내 아이는 지금 읽는 이 책 속의 글자 하나하나가 뇌세포에 아로새겨져서
정신적으로 훨씬 성숙하고 지적인 생명체가 될 것이라는 오만이었습니다.
세상에 직업이 교수와 과학자만 있는것도 아닌데
저 아이의 눈이 기억하는 세련된 브렌드를 볼 줄 아는 감각은
나중에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세상에 이름을 알리거나
패션 모델이나 연예인이 되어 완판신화를 만드는 사람을 만들 줄 어찌 알까나.......
푸하하하 그래서 저도 앞으로 백화점 해외 브렌드만 사서 입히겠다는 것은 아니고,
세상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내 잣대로 재거나 저울질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 삶의 방식은 그들대로 멋있다고 인정해 주어야겠다고 말입니다.
내가 옷에 관심이 없고,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더 우월하다는 감상이야말로
정말 싸구려 감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어제 만난 제 친구의 독서량은 저를 훨씬 능가합니다.
일류대 석사출신이지만 애낳고 백수놀이 중입니다.
독서는 물론 패션까지 우월한거지요.^^
아이가 자는 동안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대신 아이에게 예쁜 옷을 입혀주고 싶은
엄마의 소망은 졸린 눈을 비비며 인터넷 쇼핑을 하고 있는거지요.
내가 졸린 눈을 비비며 책정보를 찾아 인터넷 서핑을 했던것처럼.......
저는 부족한 패션감각을 숨기고 자꾸 나의 지적인 모습만 봐달라고
세상에 어이없는 떼를 쓰고 있는 또 다른 이상한 종자는 아닐까 싶네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종자가 이러한데 앞으로도 계속 그런 떼를 쓰고 살려고 해요.
생긴대로 살아야지 내가 전지현 옷을 입는다고 전지현 삘이 나겠어요?
그냥 앞으로도 이대로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공부하는 것이 체질에 맞는듯 합니다.
이렇게 어찌저찌하다보니 집에 쌓인건 책뿐이요, 책만이 살길이라고 살았어요.
남편의 간곡한 부탁으로 한 오백여권을 처분한 듯 한데 다시 그 자리를 삐집고 책이 들어와
책장은 아직도 책이 빼곡하여 전혀 줄어든 기색이 없습니다.
한쪽은 아이의 장난감이 수북하게 쌓여있고,
방 하나는 온갖 짐으로 쌓여서 거의 사용도 하지 못하고,
거실은 온통 책으로 도배를 하여 정말 어디 맨벽에 등붙일때 하나 없는 집을 보니
제 오만의 극치가 난장판 집안의 모습인 듯 싶었습니다.
이렇게 책을 쌓아놓고 매일 도서관에서 또 책을 대출해와서 구석에 또 쌓아놓으니
아이에게 늘 압박아닌 압박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젯밤 아이를 재우고 박스를 구해서 책을 차곡차곡 넣었습니다.
우리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것처럼 다른 아이들도 읽을 수 있도록
언니가 운영하는 유치원의 도서관에 보내기로 맘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책들이 있던 책장을 비우고 아이의 레고를 책장에 줄 맞추어 넣어주었습니다.
선배맘들이 아이가 커서도 아기 때 읽던 책을 꺼내본다고 치우지 말라고 하셨지만
아이가 5세때 처음 책을 정리할 때 안절부절하던 모습은 저에게 더이상 없었습니다.
아이가 지적 성장을 계속하면 궁금한 것이 더욱 더 많아지고
새로운 책으로 그 욕구를 채우고 싶지 아기 때 보던 책을 마냥 안고 있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아이와 저는 요즘 전기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전기란 무엇인지(어떤 현상인것인지), 그 유래와 역사를 알아보고,
전류, 전압, 저항은 무엇인지
직렬과 병렬로 연결했을 때의 차이를 살펴 보았습니다.
그것의 시작은 원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는 책 한 권으로 시작하여,
빅뱅과 생명의 탄생을 거치면서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의 역할에 관심이 옮겨갔고,
그것이 전기로까지 발전된 것입니다.
아기때 함께 읽던 보드북의 감상에 계속 젖어 있을 순 없습니다.
과감한 책 정리를 하고 아이에게 휴식이 되어 줄 레고를 차라리 넣어주고,
아이가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지식을 넓혀주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아이는 아마도 부족한 에미를 만나서 패션쪽 일을 하지 못할 듯 싶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서 일하기보다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이나 아무도 관심없는 실험실에서 비커를 흔들지 모르겠습니다.
그마져도 지금 우리의 공부가 성공할 경우일 때 말이죠.
미래의 유망직종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에서 뻗어나오는 줄기는 아니라고 합니다.
식견이 부족한 에미는 그런 걸 탁탁 알아서 제시해 줄줄 모릅니다.
그냥 책 읽는것이 즐겁고, 책을 통해 무언가 알아가는것을 좋아하니
아이와 함께 앞으로도 그냥 책을 읽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쌓아두지 않고, 지금의 책을 반으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집이 좁다고 투덜거리지 않고, 하나 둘 버리는 연습을 하려고 합니다.
쌓아둔 책은 일종의 자기만족이었지 진정한 지식의 성장이 아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지적으로 성숙하기 위하여 읽은 책을 나누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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