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영~ 버릇이 없어. 어른이 말하는데 꼬박꼬박 말대꾸하니...‘
흔히 들을 수 있는 어른들의 불평입니다. 사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어른이 뭐라 말씀하시면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무조건 묵묵히 들어야만 했습니다. 어른을 대하는 예의바른 태도라 교육을 받았지요. 자신의 생각을 감히 입밖으로 꺼내거나 어른 말씀에 토를 달으려고 발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야 반듯하고 공손한,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은 아이로 평가되었으니까요.
세월이 흘렀습니다. 많은 것이 변했지요. 어른이 존중받던 세상에서 이제는 아이 중심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남아선호 사상도 점차 자취를 감춰가고 딸 아들 구분없이 교육의 기회도 사회진출의 기회도 평등하게 부여됩니다. 현모양처가 장래희망이라던 여학생들의 보편적인 꿈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뿐인가요 웃자고 하는 얘기들을 들어보면 남편들이 불쌍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아내가 곰탕을 끓이면 긴장해야 한다느니 이사가는 날엔 강아지를 끼고 트럭 조수석에 먼저 앉아 있어야 한다는 등... 여성들의 권위가 날로 치솟고 있는 느낌마저 듭니다^^
석사과정 마지막 학기에 우연히 대사관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시절 통역을 하면서 외국인들과 접할 기회가 자주 있긴 했지만 온종일 서양인과 한 사무실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건 처음이라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습니다. 일은 경험이 없어 그렇다 치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중 제일 어렵게 느꼈던 것은 바로 말대답의 순발력입니다. 자라오면서 윗사람들과 사소한 농담을 한다거나 어른들의 말을 받아치면서 내 생각을 개진해 본 적이 없으니 나름 반듯하고 공손한 범생이 인생입니다.
대사를 비롯한 외교관들은 직급으로나 연배로나 나의 의식으론 당연히 윗사람들이었고 그러니 언제나 그랬듯이 질문에 대한 답변만을 하거나 그들이 하는 말을 그저 받아들일 뿐이었지요. 그들을 대할 때면 대응하는 사고체계가 나도 모르게 어느새 일방통행 회로로 자동 세팅되었던 것 같습니다. 잦은 회의와 파티, 리셉션이나 행사에서 그들과 소소한 대화나 농담을 할 때에도 순발력 있게 자유로이 대꾸하지 못했으니 공손한 마음으로 ‘그저 웃지요‘는 더 이상 미덕이 아님을 절감해야 했습니다. 외국어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사고의 경직이 더 큰 문제였죠. 또래나 연배가 아래인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마치 주술에 걸린 듯 자동으로 셔터가 다운되는 질환이라고나 할까요. 정말 오랜 병입니다ㅜㅜ
그들과 지내면서 더욱 놀라웠던 것은 대화중에 어떤 주제가 나오게 되던 그들은 이미 준비된 토론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들의 토론 문화는 거의 유전인자를 타고난 수준입니다. 상대의 나이나 지위고하, 전공이나 주제에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소신껏 피력하는 데에는 어느 전문가 못지않습니다. 감정이나 기싸움이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상대가 나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적대시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의 대화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문제점이 있음을 뼈저리게 느낀 시절입니다.
말대답이 곧 버릇없음은 결코 아니며 말대답도 교육이라는 결론을 내렸지요.
가끔 TV에서 진행하는 토론 프로그램을 봅니다. 전문가라고 초빙된 패널들이 주제에 따른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주장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거나 스스로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주제와 엇나가거나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말이나 의견을 경청하면서 내 생각을 잘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기술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기간의 경험과 훈련이 필요하지요. 이런 경험과 훈련은 어려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시끄러! 입다물어!’는 곧 아이의 자유로운 사고의 싹을 자르는 행위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단 아이의 생각을 들어보고 대처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 말도 자꾸 해야 늘고 생각도 늘어갑니다.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되는 말을 상황에 맞게 선별하는 능력도 반복된 학습효과라 할 수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독서를 강조하는 것은 아이의 지식을 넓히는 것뿐만 아니라 사고능력을 확장시키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말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사고를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하지요.
유태인들은 머릿속에 든 지식을 입으로 꺼낼 수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지식이 아니라고 합니다. 토론을 통한 학습을 권장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아이의 사고가 어떻게 얼마만큼 적절하게 발전되고 표현되는지를 지켜보는 것도 부모의 역할입니다.
아이가 하는 말에 관심을 갖고 귀 기울여 보는 건 어떨까요? 어쩌면 말대답이라는 단어 자체가 갖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이들의 자유로운 사고 표현을 막는 장애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원본 게시물: http://www.suksuk.co.kr/momboard/read.php?table=BGX_025&number=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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