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어릴 적 별명은 쫄쫄이였다. 어린 아이가 엄마를 쫄쫄 따라 다니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겠지만 딸의 경우는 좀 더 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겨우 떼어 놓고 외출한 후 돌아오면 아이는 내 옷가지를 껴안고 구석에서 여전히 흐느끼며 자고 있곤 했다. 분리 불안을 심하게 겪는 아이를 이해해 줄 노력은 하지 않고 엄마가 곧 돌아올 텐데 같이 가겠다고 떼를 쓰는 아이만 늘 야단치고 혼을 냈으니 경험 없는 엄마의 무지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분리불안은 아마도 떠돌이 생활에서 비롯된 듯하다. 제 아빠의 해외발령으로 딸은 어릴 적부터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자랐다. 아프리카 발령이 났을 때 친정어머니는 키니네를 먹어야 하는 현지 상황이 아이한테 나쁘니 아이를 서울에 놓고 가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기라도 한 것이었을까, 갓 세 돌이 지난 딸아이는 화장실 안까지 나를 따라오며 한 순간도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을 못 견뎌 했다. 일주일 먼저 현지로 출발하는 남편 다리를 붙들고 울고 불던 공항 이별 장면은 지금도 가슴이 먹먹하다. 아마도 아이가 본능적으로 자신을 두고 떠나는 아빠를 보며 혼자 남겨질 까 두려워했던 가보다.
이렇게 역마살을 팔자로 타고 난 딸아이는 서울서 태어나 5개월 때 미국으로 건너갔고 다시 네 살 때 아프리카에 가서 이년을 살았다. 아이를 키우며 가장 걱정하는 일이 건강과 교육이라고 한다면 그 두 문제는 바로 우리 아이의 문제였다.
무엇보다 언어의 혼란으로 아이는 비행기가 우리말로 뭐냐고 묻는가 하면 ‘아이 엠 똥누잉(I am 똥누ing’) 하며 영어와 우리말을 구분 못하고 섞어 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영어 조기교육의 열풍을 타고 돌도 지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영어 단어카드를 보여주는 열성엄마 이야기를 TV에서 본 적이 있다. 좋은 발음을 위해 혀 성형까지 감행한다니 도대체 그 영어가 무얼까 싶다. 물론 이제 영어는 더 이상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만의 언어가 아니라 세계인과의 소통을 위한 도구언어가 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오랜 타향생활에서 내린 결론이 하나 있다. 한국 사람에게 한국어가 부족해서는 결코 엄마들이 원하는, 흔히 말하는 ‘훌륭한 스펙’을 만들 수 없다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워오는 영어에 감복한 나머지 집에서 조차 영어책만 읽히고 영어로 대화하게 했던 많은 이민 1세대 부모들은 지금 자식들과 속 시원히 소통하지 못하며 살고 있다. 어쩌면 언어의 장벽이 문화와 세대 간의 장벽을 더 두텁게 만든 것은 아닐까.
영어는 필수요, 중국어나 기타 외국어가 경쟁력이 되는 요즘 시대에도 모국어인 우리말은 기본이고 정체성이다. 한국에서 산 세월이 7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아도 딸아이가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국적이 한국이라서가 아니라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기 때문이다. 많은 외국 회사들이 한국에 진출하는 이유는 잘살게 된 한국에서 돈 좀 벌어보려는 속셈일 테고 그 때문에 영어만 잘하는 자국민 놔두고 영어도 잘하는 한국 사람을 채용하는 것일 것이다. 아이들의 언어 특히 외국어 교육에는 조급해할 이유가 없다는 게 자식 둘러메고 세상 돌아다니며 얻은 결론이다. 모국어에 대한 원칙을 지키며 꾸준히 열심히 하는 것 외에는 외국어 배우는데 왕도도 없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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