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에 있던 글 모임터로 옮겼다가 여기서도 재활용합니다.
제가 자주 가는 모임터에 복수극에 관한 글이 올라와 생각이 나서리.
년 전 썼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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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채플힐.
대학도시로 깡촌이고 downtown이라는 Franklin Street는 왠만한 읍내 크기도 안된다.
그 곳 대학에서 난 3년간 포닥을 했다.
그 이전에 산 세월까지 치면 도합 4년 반을 살았다.
이후에 버지니아주 샬롯스빌에서도 한 2년 살며 드나들었는데
웬지 채플힐이 더 정스럽고 고향 같다.
읍내 Franklin Street 일부 UNC Chapel Hill 본관
포닥은 일종의 직업 겸 학업과정인데 나는 인근 초등학교에 가서
ESL 아이들을 가르치고 그 향상도를 대학에 보고하였다.
말하자면 선생 아닌 선생으로 월급도 받고 공부도 했다.
오늘 얘기의 핵심은 이게 아니고....
채플힐에 살면서 유치한 복수 사건이 하나 있었으니 벌써 10년도 넘은 얘기를 할란다.
처음 그 도시에 도착해 아이를 입학시켰는데 이미 한국 아이들이 있었다.
한 예쁜 부자집 마나님이 학부형으로 혁혁한 활동을 하고 계셨다.
본시 성의 없게 생긴 외모에 그 나마 화장도 않는 나는 철저히 무시를 당하는데
결정적으로 똥차까지 끌었으니 이 마나님,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원래 나는 아무데나 갖다놔도 설치는 사람이다.
허나 당시 초등학교에 일하고, 대학원서 수업 듣고,
그리고 애를 키울라니 애 학교에서 설칠 겨를은 없었다.
학교의 모든 행사에서 늘 도우미를 하시던 마나님은
나만 보면 유독 미국 부모나 교사와 영어 대화를 나누었다.
이 양반이 내가 영어를 할 줄 모른다고 여긴 모양이다.
그냥 모르는 척 할 수 밖에.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꼬마들 댄스파티에 갔다가
한국 부모들이 모였는데 이 마나님이 내일 오전 모두 집합하잔다.
차도 한 잔 하고 우정을 다지자고.
그런데 그게 오전이니 나는 일을 해야했다. 학교 가는 일.
마나님: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나: "뭐, 그냥."
가게 알바라도 하는 줄 알았을게다.
그 때 내가 초등학교에서 일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다른 어머님(그 분은 유명한 피아니스트이자 음대 교수)이 다소 과장하여,
교수: "재원 어머니는 미국 초등학교 영어선생이잖아요."
마나님: "에~에?"
흐흐흐... 그 뒤부터 그 마나님 내 앞에서 영어 안 했다.
그런데 얄팍한 나는 좀 겸손하지 못 하고
그 아줌마(갑자기 마나님에서 격하)만 보면 유창하게 영어를 발사했다.
나만 보면 무시하던 아줌마를 이렇게 영어 쏼라대는 것으로 복수하고
그 아줌마 떠난 뒤로 나의 무대가 된 학교.
귀국할 때까지 나는 애 학교를 주름 잡았다.
제 버릇 어쩌지 못 하니까 마구 설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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