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이거, 고야만 4개째 쓰고 있습니다, 그려......끌끌끌~~ ^^;
휴가철인데 다들 휴양지에서 즐겁게 지내고 계시지요?
아마 휴양지에서도 글이나 댓글은 못 달아도 스맛폰으로 뭐 글 올라온거 없나 보시진 않으세요?
ㅋㅋㅋㅋㅋ 제가 그렇거든요.
휴대폰으로 새글이나 댓글 올라온거 읽는 재미가 쏠쏠한데
요즘처럼 게시판이 무슨무슨 방 외에 다른 게시글이 없으면 허전해요.
그래서 오공쥬 휴가가기전 비장한 각오로 고야를 마무리 하기로 했습니다.
전 휴가 가기전 오늘이 더 휴가스러운 기분은 왜일까요?
휴가가서 한 남자가 더 플러스 되서 두 남자 뒤치닥거리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지끈~~~.
내일과 모레는 서울친구들과의 모임이 있어서 또 바쁠듯하니
오늘 아니면 안되겠다는 각오로 컴앞에 섰습니다.
드뎌 고야의 마지막편 오늘은 <전쟁의 참화>와 <귀머거리집 그림들>을 함께 볼까요?^^
1. 전쟁의 참화
<전쟁의 참화>는 <카프리초스>처럼 전부 80장으로 이루어진 동판화로
프랑스의 에스파나 침략이후 이것에 항거하여 독립 전쟁이 진행되던 시기에 만들어진 판화집입니다.
그러나 이 판화집은 고야의 사후 35년이 지나서야 출판됩니다.
크게 세부분으로 나누어지는 <전쟁의 참화>는
첫째 1810년 에스파냐 시골 사람들의 용감한 저항과 싸움 및, 처형과 살인
둘째 1811-1812년 사이 마드리드의 기근
셋째 1815년까지 전쟁 종식 후 페르난도 7세 복귀한 뒤 의 재난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전쟁은 너무나 끔찍합니다. 그 끔찍한 전쟁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겪으면서
늙은 화가는 이것을 판화라는 장르의 그림으로 남겨
전쟁의 무자비함과 비인간적 폭력성을 세상에 알리고 싶은것 같습니다.
(이것은 더 나쁘다)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똑같다)
그림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그림만으로도 전쟁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죽고 죽이는 일뿐 아니라 잔인한 복수를 위해서
시체에 대한 야만적인 행동은 이미 인간성을 포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모습을 두 눈으로 목격한 고야는
말년에 귀머거리집이라고 부르는 검은집으로 들어갑니다.
2. 귀머거리 집
73세가 된 고야는 말년을 보낼 집을 하나 장만합니다.
부인도 죽고 자식과의 재산분배도 끝나서 혼자 한적한 곳에서 여생을 보낼
집을 지으려고 준비한 게지요.
그러나 집을 지은지 얼마되지 않아 고야는 심한 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됩니다.
<고야와 의사 아리에타>
새집에서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었을 고야에게 찾아온 병마로 죽을 고비를 넘긴
고야는 의사 아리에타에게 감사의 의미로 그림을 그리고 밑에 이러한 글귀를 남겨두었습니다.
"뛰어난 솜씨와 정성으로 1819년 말, 위험한 중병에서 73세의 나를 구해 준 친구 아리에타에게
감사를 담아서, 1820년에 그리다. 고야."
고야를 위해 헌신을 다해 간호하는 친구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의사와 고야이외에도 자세히 보면
산사람인지 유령인지 모를듯한 얼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슨 의미로 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유령같은 모습은 마치 저승사자를 연상케 합니다.
죽을 고비를 넘긴 고야는 자신의 새집을 기괴하고 음울한 그림들로 채우기 시작합니다.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제우스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이 권력을 빼앗고 왕이 된다는 신탁이 두려워서
아이를 낳자마자 모두 잡아먹는 장면을 그린 것입니다.
<결투>
두 남자는 다리가 땅에 파묻혀서 도망가지고 못하고, 싸움을 그만둘 수도 없어서
서로 죽을때까지 싸워야하는 운명을 맞닥뜨리고 있는듯 보입니다.
<두 노인>
뒤의 노인이 앞의 노인에게 뭔가 이야기를 하는 듯 하지만
그 모습이 기괴한 것이 사람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뒤를 쫒는 악령과 같은 모습이지 않습니까?
<성 이시드로 축제일의 순례>
축제일이 어찌 이리 기괴하고 음산한 분위기일까요?
<개>
다시 개로 돌아왔습니다.
고야를 소개한 계기가 바로 이 개라는 작품때문이었는데
이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고야의 일대기부터 작품을 다시 본 것이기도 합니다.
고야의 생애와 함께 본 그림들의 감상은 어떠했나요?
여러분도 고야의 저 개에게서 강한 울림을 받으시나요?
에스파냐의 정치적 혼란과 전쟁으로 인한 기근과 인간의 잔인함,
개인적인 고뇌와 현실비판의식들이 그의 그림속에는 녹아있습니다.
이런 암울한 그림들로 온 집안을 꾸며놓은 늙은 귀머거리 화가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을까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야는 1824년 프랑스로 건너가 지인들의 초상화를 그리거나
다양한 실험을 통한 새로운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하다가 4년 뒤 프랑스 보르도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마지막 스케치 작품중의 하나인 이 작품은
말년의 고야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미 고령의 화가가 새로운 화법을 연구하고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며
죽음의 순간까지 작품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모습이
백발이 성성한 현자가 손에서 책을 놓지 않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파란만장한 굴곡진 삶을 살아온 고야의 작품이
현대에 와서도 그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은 그의 그러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정신이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같이 해준 여러분들께 감사드리면서
드뎌 오늘 고야를 마칩니다.
주참고도서는 조이한의 <혼돈의 시대를 기록한 고야>
그림출처는 http://www.franciscodegoya.net/
참 다음번에는 윌리엄 터너와 컨스터블의 풍경화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두 화가의 그림을 대조해 보면 풍경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날거예요.
살짝 떡밥을 던지는 오공쥬
진짜 끝~~~.^^


쑥쑥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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