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겄지만... 사실 우리 엄마...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뭐 꺽어진 70이 된 과년한 딸년이 시집을 간다고 했을 때도
시집 못가게 (남들 같으면 얼씨구나 춤이라도 췄을 것을) 울고 불고 온갖 심통을 내더니...
결혼식장에도 30분을 지각하신 분입니다....
그 슬하에서도 이렇게 바른 심성으로 자라난 것을 보면, 가끔 나는 참 착한 아이가 아닌가...
혼자 생각해 봅니다....
우리 엄마... 나 어렸을 때 질문을 너무 많이 한다고.. 무지 귀찮아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뭐 지금도 말 많은 녀석이 어렸을 때는 오죽했겠습니까?
게다가 위로 오빠만 넷이 있는데, 그 사내 녀석들 사이에서 울 엄마는 오죽 힘들었겄습니까?
그래도 질문을 하면 꾸역꾸역 대답을 해 주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틀린 답이 태반이었습니다.
1. 미술 문제를 틀리다...
어렸을 때 초록색도 파란색, 파란색도 파란색이라고 하기에...
엄마.. 왜 이 색이랑 저 색은 서로 다른데 다 파란색이라고 해? 하고 물었더니
둘 다 파란색이야...
하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국민학교 시험에서 주황색의 보색 물어 보는 시험 문제에...틀린 적 있었습니다.
2. 과학 문제를 틀리다...
또 가장자리라는 말을 가장 좋은 자리다라고 말해 준 탓에
중학교 1학년때 과학시간 시험 문제를 틀린 적이 있었습니다.
(왜 코너를 돌 때 가장 빨리 도는 자리는? 뭐 이런 문제였는데 가장자리라고 답변 했습니다)
3. 학교 이름을 틀리게 쓰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엄마의 경상도 윽양...
제가 서울 태생이기는 하나, 유치원 ~ 초등 6학년 1학기를 대구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다 서울로 다시 전학을 가게 되었는데
울 엄마 왈..
엄: 야.. 느그 이번에 전학 갈 국민핵교가 느 이름이랑 똑같데이~
은: 진짜로? 그러면 내 가는 학교가 은주국민핵교가?
엄: 그렇다 카이!
은: 엄마! 그카면 내 새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게 노트 다시 사도!
그래서 새로운 노트에 볼팬으로 (그때는 화이트도 없었습니다) 이쁘게 궁서체로 "은주 국민학교"라고 다 써 놓았지요...
아~ 전학을 갔습니다....
그 학교의 이름은..."언주 국민학교"였습니다.
뭐 대충 여기 까지 입니다.
뭐 우리 엄마야 워낙 특이한 사람이고...
그래서 저를 제주도 말 처럼 방목하며 키우신 덕에,, 성적이 떨어져도 네 복, 성적이 올라도 네 복...
별 간섭을 안받고 자랐습니다.
그렇기에 좀 더 자주적이고 뭐 아무데나 떤져 놔도 알아서 밥벌이 하고 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집쟁이기는 하지만서리... 누구 딸인데...)
뭐 시집 갈 때는 울구 불구 하더니, 그래도 가니까 사위 이뻐서 죽두만요...
뭐 저런 걸 데려가서 고생하냐고 오히려 저는 찬밥입니다요...
요즘은 이것 저것 반지도 물려주시구~ 우리 엄마~ 너무 좋아~!!
엄마! 건강하슈~!! 알라븅!!
(급하게 훈훈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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