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구두씨.
아침 바람이 상쾌도하여 색상을 잘 맞춘 옷차림으로 햇살을 가릅니다.
새로 산 상아빛 뾰족 구두를 꺼내어 신고
정수리에 가득한 흰머리를 묻어둡니다.
자, 이제 걸어갑니다.
몇 발자국 안갔는데 스타킹이 밀려납니다.
신발 속에서 스타킹이 밀려나니 이 세상 발 딛고
설 곳이 없습니다.
그동안 운동화에 양말만 신었던 탓인듯도 합니다.
그저 탓하겠습니까 스타킹을 몰랐던 것이겠지요.
특히 왼쪽 발이 심한듯합니다.
다시 올라가자니 오늘의 옷맵시가 무너집니다.
하루인데 어쩌겠지 싶어 돌아가던 마음을 데려옵니다.
걷는데 양쪽 골반과 허벅지가 만나는 자리가
고통스럽습니다.
11자로 의식해서 걸으려니 더욱 그렇습니다.
아무도 없는 틈에 팔자로 걸어보지만
이상하게도 잘 되지 않습니다.
구두는 와우...살 때는 5센치라 생각했는데
7센치는 되어보입니다. 앞굽이 높은 것을 샀으니 망정이지 버스에서 조용히 깜놀합니다.
영화 은교가 떠오릅니다.
거기서 박해일씨가 누구의 시를 인용했지요.
기억은 나이 마흔만큼만 납니다만,
젊음이 너희의 특권? 거저받은 선물? ㅋㅋ이듯이
늚음도 나의 잘못이 아니다.
뭐 인터넷 찾아서 잘 쓰면 좋겠지만, 못찾고
쓰는 것도 투박하니 좋지 않나요?
늙어가는 입장에서 아주 공감을 쏟아냈습니다.
내 마음은 하이힐인데 거죽이 늙어버렸어요.
아가씨인척 이쁜옷이 더욱 그리운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주름옷이 한창이네요.
결국 남들의 10분지 1의 속도로 걸어갑니다.
느리게 느리게 뾰족구두를 한탄하며 걸어갑니다.
얼마나얼마나 빠르게 다녔는지를 깨달으며,
얼마나얼마나 느리니 한장한장의 바닥돌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앞으로, 적어도 40년은 더 살아야할텐데
이 몸으로 어찌 버틸지 고민입니다.
우리 중국어 반에는 80인 노인분들이 계시지요.
60이면 중간이라 소리합니다.
막내인 저는, 함께 늙어갑니다.
40이면 다 산건줄 알았는데 새로이 시작해야함을
알고 갑니다.
이제 내립니다.
다리가 휘어지겠지요.
그래도
걸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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