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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딘 아이, 급한 엄마

  • 지나샘
  • |
  • 2015-03-23
19

얼마 전 인기 강사인 김창옥교수가 “소나기 -소통을 나누는 이야기”에서 한 강연은 내게 ‘자기 존중’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그는 자신이 경희대 성악과를 다니던 시절, 서울대 성악과를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지방대 음대를 낮춰보았던 심리 저 밑바닥에는 자기 스스로를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않는 마음이 깔려 있었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자신을 무시하므로 자기가 이룬 것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하지 않았으며 또 거기서 비롯된 열등감을 잣대로 나보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을 구분 짓다 보니 상처가 되는 말에 더 민감해 지더라고 했다.

 

열등감은 그릇된 비교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못하고, 내 능력이 모자란다는 생각. 그런데 문제는 항상 그 다른 사람이 정확히 누구인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나는 하나지만 비교대상은 불특정 다수이며 항상 나의 모자라는 부분만 그 여러 명의 잘난 부분들과 견주어진다. 더구나 현대사회는 점수화된 평가제도로 사람들의 순서를 매기고 나의 서열을 숫자로 확인하게 하는 사회가 아닌가. 오죽하면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풍자가 나왔겠는가. 그런데 여기에 속도까지 더해져서 남들보다 더 빨리 이루어내지 못하면 영영 뒤쳐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사회이다.

 

누구 집 아이는 세 살에 한글을 깨쳤다는데 우리 아이는 왜 늦을까, 하나를 가르쳐 열을 알아도 모자랄 것 같은 세상에 하나도 빨리 못해내는 것 같은 내 아이에 대한 엄마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달된다. 그리고 마음이 급한 엄마의 성화에 주눅이 든 아이는 서서히 자신감을 잃게 되고 결국 자존감을 상실하고 만다. 이런 아이가, 잘하는 게 하나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 좌절과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잘해내는 아이들의 경우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거는 주변, 특히 부모의 지나친 기대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만을 미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늘 잘하기를 바라는 부모를 보며 아이들은 행여 그 기대에 못 미칠세라 불안해한다. 내 아이가 잘하면 당연하지만 잘못하면 야단이 나는 부모 때문에 부모의 성에 차는 결과를 얻기 위해 정당한 노력이 아닌 속임수까지 서슴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지난 주, 번역수업을 준비하면서 프랑스의 인기작가인 다니엘 뻬낙의 글을 다시 읽었다. 그가 자신이 초등학교 5학년이던 시절 받았던 성적표를 책의 뒤표지로 삼은 것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국어인 프랑스어 과목에는 ‘명랑한 아이지만 서글픈 학생임’, 수학은 ‘기초가 부족함’, 제2외국어인 영어에는 ‘말은 많이 하나 영어는 한마디도 못함’, 기술은 ‘수업시간 중 아무 것도 안하며 숙제도 전혀 안 해옴’ 등으로 적힌 각 과목 선생님들의 평가는 작가가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 학교생활을 했을 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자전적 소설인 “학교는 괴로워”에서 작가는 자신이 어린 시절 알파벳 첫 글자인 a를 익히는 데만 일 년이 걸렸던 일을 회고한다. 뿐만 아니라 그는 여러 번의 낙제와 유급, 재수, 삼수에 걸친 대학입시, 등의 실패를 겪는다. 그런데 그때마다 늘 아버지 특유의 격려, ‘뭐가 문제냐, 26년이면 알파벳을 다 익히게 될 텐데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알파벳은 알다시피 26자이다’, 또 그가 1968년 대입에 가까스로 성공하자 ‘대학 들어가는데 혁명(68년 프랑스에서 학생들이 시작한 사회개혁운동을 말한다)이 필요했으니 앞으로 교사자격증 따려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되겠구나’ 하는 식의 유머가 곁에 있었다고 추억한다.

오늘날 그는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비중 있는 소설가가 되어있다.

 

믿고 기다리는 힘을 그대로 보여준 다니엘 뻬낙의 아버지를 통해 나는 좀 ‘더딘’ 아이에게 ‘급한’ 엄마가 요구하는 세상의 속도가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를 반성한다. 더 잘할 수 있는데 왜 그것 밖에 못하냐며 아이의 자신감과 자기 존중감을 열등감으로 바꿔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나친 채찍이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지 너무도 잘 알기에 나는 지금도 조심한다.Ⓙ



지나샘의 딸내미 메고 세상 한 바퀴 칼럼글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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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정
  • |
  • 2015-03-24 09:15
답댓글

지나샘~~

꽃샘추위가 코끝을 맵게하고있어요~ 감기 조심하시구요~ (고놈의 감기가 엄청 독하답니다~)

언젠가 아이의 시계는 지금에. 엄마의 시계는 고삼에 맞춰져있다는 이야기를 책을 통해 읽은 적이 있습니다.

지금 하나틀리는거. 지금 조금 못하는거 크게 문제될게 없는데

그대로 고삼때 하나틀리면 등급내려가고, 그대로 고삼때 조금 못하면 당장 입시를 헤쳐 나가지 못하니까...

그이후로 저도 제 아이의 시계에 제 시계를 맞추려고 무진 노력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바꾸는건 습관을 바꾸는것 보다도 훨씬 훨씬 어려워요...

의식적으로 친구에게 말합니다.

"초3이면 초3꺼 잘하고 중3이면 중3거 잘하고 고3이면 고3꺼 잘하면 되지. 지금 5학년거 못한다고 5학년되서 우리애들이 5학년거 못하겠니? 지금꺼 잘하자~"

말은 그럴듯해도 불안한 맘까지 어쩔수는 없습니다만, 그 불안 아이에게 들키지 않게 지금 잘 웃으면서 지내는거, 지금 잘한다고 칭찬해주는거 밖에는 할 수 없는 엄마라서...

걸어가는 아이손잡고 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늘 생각하게해주시는 지나쌤! 오늘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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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꽃향유
  • |
  • 2015-03-23 12:22
답댓글

저희 집 첫째가 세살 때 한글을 떼었어요.

알파벳도 12개월 정도에 알았던 것 같아요. 

엄청 기쁘고 신기하고, 아이가 자라면서 다른 모든 것들도 잘하길 바랬죠.

그런데 수에 대한 이해는 엄청 느린 편이었어요. 어디까지나 엄마의 잣대로요.

큰애가 3살에 둘째가 태어났어요. 알파벳은 5살에 간신히 떼었고, 한글책읽기는 6살에 가능하더라구요.

그런데 둘째라서인지 큰애처럼 모든 게 빠르지 않아도 재촉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저희 조급함도 조금 약해지게 되더군요.

그리고..둘째가 3살에 셋째가 태어났어요 ㅎㅎ

6살인데 아직 한글책 못 읽고, 알파벳도 헷갈리는 중이고, 아는 것만 큰소리로 자신있게 읽어요.

내려갈수록 느려지는 학습의 속도에 저의 불같은 조급함은 이제 반쯤은 사그라들은 것 같아요.

그래~~ 빠르다고 좋을 게 뭐냐. 아이들만 행복하면 그만이다... 빠르다고 아이들이 잘 풀리는 것도 아니고..점점 이런 마음이 되어가더라구요.

다른 성격과 다른 속도의 아이들 셋이 있다보니 저의 성격도 좀 느긋해지는 것 같아요.

다니엘 뻬낙의 아버지처럼 부처같은 마음이 될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 닥달하는 것만은 정말 꼭 고쳐야겠어요.

아~ 저런 넓은 바다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의 여유도 연습하면 가능해질까요? ㅎㅎ 아무래도 안되겠죠?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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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world
  • |
  • 2015-03-23 20:59
우와 세아이를 키우시는 수퍼맘이시군요. 감히 외동이 경험 뿐인 제가 무슨 말씀을 더 드리리요.
각각의 개성과 속도릉 파악하셨다면 그걸로 이미 성공한 엄마이십니다. 굿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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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InBIn
  • |
  • 2015-03-23 10:24
답댓글
지나샘~~~햇살은 봄이라고 얘기하는 월요일이네요~^^
초등학교의 제일 끝 학년이 된 아이를 보며..
엄마의 조바심과 불안함이 올라오는 시기에
지나샘의 콕 꼬집어서 알려주시는 글을 보게 되었어요~~
지금 저희집의 제일 중요한 일은 가출한 집중력을
되돌리는 일이예요~~^^;;
사춘기님이 살짝 오시면서 대충대충 보내는 시간들이
많아졌거든요..
자기 스스로 할수 있는 아이가 될수 있길 바라며..
너무 몰아부치지 않는 엄마가 되기위해 저도 수련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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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world
  • |
  • 2015-03-23 20:57
제가 아이 키우면서 '엄마는 사춘기라는거 몰라, 그런거 없어'하고 막무가내로 사춘기 감정을 무시했거든요. 그런데 그 호르몬이라는게, 참 있더라구요. 제가 갱년기를 겪게되니 격한 공감이 ㅎㅎㅎㅎㅎ
누가 그러더라구요. 사춘기 원인이 "미친 호르몬"이라고. 잠시 시간을 주세요, 아이한테.
홧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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