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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감정에 충실해~

  • 수경샘
  • |
  • 2015-03-18
15

나한테는 아주 친한 외국인 여자 교수 한분이 계십니다.

때로는 엄마 같고 때로는 왕언니 같은 분이니 그야말로 아무에게도 못할 속얘기도 터놓을 수 있는 좋은 친구이기도 합니다.

사실 그 교수님은 학생들에게 ‘F학점’을 주기로 유명하고 ‘한 번 찍히면 졸업할 때까지 신상이 편치 않다’라는 말이 전해 오는 엄격한 분이었지요. 3학년이 되었을 때 교수님의 호출을 받고 연구실의 조교로 들어갔으니 그 인연은 참으로 오래되었습니다. 여전히 조심스런 분이었고 까다로운 성격에 조교라고는 둔 적도 없는 분이었으니 주변의 선배와 동기들까지 애처롭다는 듯 쳐다보았습니다.

조교직을 수락하기에 용기가 필요했던 건 당연합니다ㅎㅎ

 

시간이 흐르면서 대화도 늘어가고 때로는 한국어도 간간이 가르쳐드리고, 어쩌다 보니 이제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처지까지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은 꼭 만나 밀린 이야기도 나누고 정기적으로 식사도 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합니다. 한국인 남편과의 소소한 일상과 김장얘기며 제사지낸 얘기, 이제는 며느리와 손주들 얘기까지 스스럼없이 전해줍니다.

 

요즘처럼 꽃샘추위에 날씨가 변덕을 떨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출근길에 학교 입구에서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감기가 심하게 걸려 며칠간 고생을 하신 모양이었습니다.

‘글쎄, 내가 이렇게 감기에 걸렸는데 걱정은커녕 남편이 벌컥 화를 내더라.’

‘내가 감기에 걸렸는데 왜 남편이 화를 내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돼.’

본인은 감기에 걸려 이렇게 목도 아프고 힘든데 위로나 걱정조차 없이 화를 내며 핀잔을 주는 남편이 야속했던 것 같았습니다. 하소연을 들으며 그 남편분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한국인의 정서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바로 정서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였다고나 할까요. 그럴 때의 나무람은 잘못을 지적하고 꾸짖기 보다는 애정과 관심, 그리고 얼마나 내가 그로인해 속이 상한지, 걱정을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이라 설명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듯 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건 아니라는 거지요. 정작 불편한 본인을 앞에 두고 자신의 감정만을 내세워 심지어 화까지 낸다는 건 잘못된 일이라고요.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하고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지만 상대방에 대한 진지한 배려가 부족함을 꼬집었습니다.

외국인들과 지내다 보면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이질감이나 표현의 차이에서 오는 오해 등, 많은 것을 느끼게 되고 때로는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특히 절제된 감정이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응하는 방식은 감정이 앞서고 걸핏하면 화를 내는 우리로서는 반성해야 할 점이기도 합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한 번 쯤 생각해 볼 문제인 듯싶습니다.

 

막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 것 같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오니 오른손에 깁스를 하고 있더군요. 깜짝 놀라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벽에 부딪혔다는군요. 손가락뼈를 잡아당겨 맞추는데 아파서 죽을 뻔 했다고요. 혼자 정형외과에 가서 깁스를 하고 왔다는 말에 왜 엄마한테 전화를 안했느냐, 얼마나 장난이 심했으면 뼈까지 다쳤냐, 조심안하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등... 잔소리에 핀잔까지 쏟아내었습니다. 정말 속상하더군요.

그런데 조용히 듣고 있던 아이의 대답은 전화를 한다고 달라질 게 뭐가 있냐는 거였습니다. 어차피 병원에 가서 치료를 해야 할 사람은 자신이고 엄마가 알았다 해도 금방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걱정만 할 텐데... 깁스 했으니 괜찮다고. 당분간 고생은 좀 하겠지만...’

그렇지요. 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속상하고 걱정하는 마음이긴 했지만 얼마나 아픈지, 힘들어서 어쩌니 등의 위로는 뒷전이었고 일단 내 감정에 충실했으니 지금도 생각해 보면 한 템포 쉬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가 남습니다.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해도 과연 누구를 위한 핀잔이고 잔소리였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보다는 내감정이 앞섰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후로는 일이 생길 때마다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하려 많이 노력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크고 작은 일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결과가 항상 만족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걱정하고 사랑한다는 미명 하에 아이에게 거침없이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면 우선 엄마의 감정에 충실해서 아이를 꾸짖기보다는 정작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혹시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닐 지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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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kcarrot
  • |
  • 2015-03-19 12:32
답댓글

어흑~ 정말 마음에 와 닿는 아드님말이네요....

너무 기특하고 대견했던거 같은데요~

아이에게 필요한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다시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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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경샘
  • |
  • 2015-03-19 23:00
아이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게 확실히 시간차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일단 속에서 튀어나오는 생각과 말을 막고,
숨 한번 들이쉬고 다시 정리해서~
함께 노력해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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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로라공쥬
  • |
  • 2015-03-18 21:14
답댓글

오늘 글은 정말 완전 동감하는 바입니다.

저도 남편과 저런 사소한 일들에 투닥거리는데 잘 고쳐지지 않아요.

저또한 아이에게 저도 모르게 그런것 같구요.

고쳐야지요, 고쳐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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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경샘
  • |
  • 2015-03-19 22:51
넘치는 사랑의 표현이 왜 그렇게 되는지...
뒤돌아 후회해도 막상 닥치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니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어요? 엄마인걸. 도닦는 심정으로 노력할 밖에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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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5-03-18 12:55
답댓글

저도 3학년부터 따르던 교수님이 좋아서 조교가 되었어요. 석박사 지도교수였을 뿐 아니라 미국서 포닥할 때도 근처에 사셔서 친정처럼 드나들었지요. 은퇴하셔서 한국에 안 계신대데 간간이 서로 태평양 오가며 뵙습니다. 혈육 아니고도 맺어진 이 깊은 인연은 제게 해운이랍니다. 오는 수경샘 글 주제와는 무관한 얘기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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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경샘
  • |
  • 2015-03-19 22:49
인연이 특별한 은사님이 계시다는 건 정말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속 든든한 지원군도 되고 존경의 대상도 되고 푸근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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