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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되어 보니

  • 지나샘
  • |
  • 2015-03-16
15

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천 삼백만 관객을 넘겼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중적 관심이나 그에 따른 대박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내게는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웠던 나의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추억들과 오버랩 되면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영화로 남았다. 가난에 대한 기억이 세대에 따라 이렇게 차이나는 나라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흔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어서 나와 친정어머니, 나와 내 딸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비교적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내 딸의 소비 행태와 어머니의 그것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맘때가 되면 새 학년이 되어 새 책에 새 공책, 가지런히 깎은 여러 자루의 연필을 새로 산 필통에 챙기고 거기다 새 운동화까지 얻어 신어 신바람 나게 집을 나서던 어릴 적 등굣길이 기억난다. 조르고 졸라 아주 오랜만에 ‘새것’을 쟁취(!)한 기쁨이 학기 초의 의욕과 다짐으로 이어지곤 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미 부모 세대의 6.25와 보릿고개가 생소하듯 우리 아이들에게 몽당연필을 모나미 볼펜대에 끼워 쓰던 때의 궁핍은 먼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일 뿐이다.

 

프랑스 혁명이 났을 때 마리 앙뜨와네뜨가 빵을 달라고 외치는 시위대에게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지’ 했다는 일화는 브리오슈가 케익으로 와전되면서 더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궁에서만 살던 철없는 마리 앙뜨와네뜨는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궁핍이라는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남의 무게를 평생 견디며 산, 영화 속 덕수를 보며 요즘 장남, 장녀들은 왜 자신이 동생과 가족의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희생해야하는지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부모 세대의 가난과 희생의 경험은 ‘이 고생을 자식이 아닌 우리가 겪어 다행이다’라고 말하던 영화 속 주인공 대사에 짧지만 강렬하게 함축되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한 방송인이 ‘토가 나온다’고 표현하여 논란을 일으켰는데 아마도 그는 이 장면 해석에 슬며시 편승한 보수 매체들의 순수하지 않은 의도를 비꼬고 싶었던 거라 이해한다. 하지만 아이 키우는 부모치고 자식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공감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군대도 대신 가주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들을 도처에서 만나는 이 시대에 말이다.

 

우리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누려보지 못한 것을 자식이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강요되지 않은 희생을 알아서하고 아이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까지 미리 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기백만 원짜리 유모차, 깜짝 놀랄 만큼 비싼 완구나 옷 등의 소비를, 흔쾌히는 아니어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자식세대의 소비문화가 다른 것에 대해 뭔지 모를 억울함을 느끼는 부모님들도 계실 것이다. ‘난 이렇게 한 푼을 아끼며 살았는데 자식들은 어쩌면 저렇게 쉽게 사고 또 버리기도 잘 하는 걸까? 나는 버스, 지하철만 타는데 젊은 것들은 택시만 잘도 타고 다니네...

 

그런데 슬프게도 그런 부를 누리는 요즘  아이들이 더 행복하고 나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이젠 아무도 물질적 풍요만으로 행복하기에 충분하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비싼 과외와, 넘쳐나는 고급학용품, 일찍부터 해외여행을 ‘누리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공부를 잘해야 하고 더 만족스러워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가 없다. 우리는 과외공부 하나 받은 일 없이 사과 궤짝 엎어 놓고 공부했어도 대학만 잘 갔는데 너희는 부모가 다 뒷받침해주는데도 왜 그 모양이냐고 다그치는 것은 시대착오적 행동이 되고 만다.

 

한 마디로 우리와 그들은 그냥 다른 세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므로 이 세태를 그냥 받아들일지, 아니면 적당한 타협, 절충점이 어디인지를 고민할 뿐이다.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 마음이 이해가 되고 부모가 되어보니 ‘요즘 애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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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2015-03-17 13:41
답댓글

결핍....

결핍인 부분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데서 풍족을 누려 그 결핍이 결핍인지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는듯도 해요..

풍요속의 빈곤...

교육뿐 아니라...인생에서도 크나큰 화두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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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kcarrot
  • |
  • 2015-03-16 16:50
답댓글

맞습니다. 요즘은 너무 물질적으로 풍요롭죠..

저희 어릴때는 몽당연필, 몽당크레파스.. 크레파스만 하여도 좋아하는 색은 다써서 거의 없어도 그냥 썻는데 요즘은 몇개씩이나 되죠. 생일 선물이라면서 모두둘 문구용품 선물해서 이거 참.. 처치 곤란입니다....

그런 풍족함으로 인하여 아이들의 옷과 가방, 신발로 친구를 평가하고 하는 부모들이 있다하기도 하고.....명풍으로만 입히는 아이는 엄마가 신발과 옷 더럽히지 말라고 해서 뭔가 묻히기라도 하면 큰일 나는지 알아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이런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어떤 것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아무래도 전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 하는게 목표인데 잘 될라나 모르겠어요~^^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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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world
  • |
  • 2015-03-16 19:58
대리 만족때문에 그러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릴 적 가지고 싶었거나 하고 싶었던 일들을 자식에게 해줌으로써 스스로 만족을 얻는게 아닐까.... 문제는 자식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지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누가 엄마더러 그렇게 해달랬어?' 이런 말을 듣고 상처받기 전에 누구를 위한 행동인지 잘 생각해봐야 할것 같아요.
dkcarrot님은 현명한 선택을 하신거지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려 노력하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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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준준맘
  • |
  • 2015-03-16 12:47
답댓글

요즘 세상은 '풍족'함 자체가 리스크라고 생각되요.

여기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조금의 부족함도 참아낼 수 없으니..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부족함을 주는 교육이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번에 읽은 유대인 교육관련 책에 보니까, 굉장한 부자 집인데 초등딸 방만 허름한 가구를 들여놓았다고...

이런 걸 저절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교육하기 위함이었다고 해요. 그런 내용이 참 감동(?)적이었어요. ㅋ

 

또 예전에 장병혜 박사님(인지 전혜성 박사님인지 헛갈리네요) 의 책을 읽으면서도 참 놀랐는데

어릴 때 부자집에서 자라셨고 일하는 사람도 여럿 부렸지만

부모님께서는 '부모가 필요해서 부리는 사람이니 너희는 절대로 그분들에게 일을 시켜서는 안된다' 하고 가르치셨대요. 그래서 뭐든지 손수 해야만 했다고..

 

저는 가족과 함께 일년에 한차례씩 세계각지로 봉사여행을 다녀오는데, 그런 곳에 갔다오면 그나마

'옛날에 어른들은...' 이런 얘기 할 때 이상하지 않아 좋습니다.

옛날에 그렇게 산 게 아니라 아직도 그보다 비참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았으니까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조금 모자르게 클까....

어떻게 하면 사서 고생을 시킬까.. 하고 늘 고민합니다.

늘 그런 고민 중이라 선생님 글이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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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world
  • |
  • 2015-03-16 20:07
봉사여행을 하시다니 대단하세요. 저도 모자람을 알고 컸기에 모자람을 겪는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럼에도 내 아이에게는 웬만하면 다해주고 싶은 마음을 자제하기가 쉽지않네요.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아이들에게 '헝그리 정신'이 있어야 제대로 큰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적절한 선을 지키고자 늘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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