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이라는 영화가 천 삼백만 관객을 넘겼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중적 관심이나 그에 따른 대박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차치하고 내게는 너나 할 것 없이 어려웠던 나의 어린 시절의 몇 가지 추억들과 오버랩 되면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영화로 남았다. 가난에 대한 기억이 세대에 따라 이렇게 차이나는 나라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흔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어서 나와 친정어머니, 나와 내 딸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비교적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나와 내 딸의 소비 행태와 어머니의 그것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맘때가 되면 새 학년이 되어 새 책에 새 공책, 가지런히 깎은 여러 자루의 연필을 새로 산 필통에 챙기고 거기다 새 운동화까지 얻어 신어 신바람 나게 집을 나서던 어릴 적 등굣길이 기억난다. 조르고 졸라 아주 오랜만에 ‘새것’을 쟁취(!)한 기쁨이 학기 초의 의욕과 다짐으로 이어지곤 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미 부모 세대의 6.25와 보릿고개가 생소하듯 우리 아이들에게 몽당연필을 모나미 볼펜대에 끼워 쓰던 때의 궁핍은 먼 옛날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일 뿐이다.
프랑스 혁명이 났을 때 마리 앙뜨와네뜨가 빵을 달라고 외치는 시위대에게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지’ 했다는 일화는 브리오슈가 케익으로 와전되면서 더 유명한 이야기가 되었다. 궁에서만 살던 철없는 마리 앙뜨와네뜨는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궁핍이라는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장남의 무게를 평생 견디며 산, 영화 속 덕수를 보며 요즘 장남, 장녀들은 왜 자신이 동생과 가족의 뒷바라지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희생해야하는지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것 같다.
부모 세대의 가난과 희생의 경험은 ‘이 고생을 자식이 아닌 우리가 겪어 다행이다’라고 말하던 영화 속 주인공 대사에 짧지만 강렬하게 함축되어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한 방송인이 ‘토가 나온다’고 표현하여 논란을 일으켰는데 아마도 그는 이 장면 해석에 슬며시 편승한 보수 매체들의 순수하지 않은 의도를 비꼬고 싶었던 거라 이해한다. 하지만 아이 키우는 부모치고 자식을 고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에 공감하지 않을 이가 있을까? 할 수만 있다면 군대도 대신 가주고 싶다고 말하는 엄마들을 도처에서 만나는 이 시대에 말이다.
우리 부모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누려보지 못한 것을 자식이 누릴 수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강요되지 않은 희생을 알아서하고 아이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들까지 미리 해주고 있는지 모른다. 기백만 원짜리 유모차, 깜짝 놀랄 만큼 비싼 완구나 옷 등의 소비를, 흔쾌히는 아니어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자식세대의 소비문화가 다른 것에 대해 뭔지 모를 억울함을 느끼는 부모님들도 계실 것이다. ‘난 이렇게 한 푼을 아끼며 살았는데 자식들은 어쩌면 저렇게 쉽게 사고 또 버리기도 잘 하는 걸까? 나는 버스, 지하철만 타는데 젊은 것들은 택시만 잘도 타고 다니네...
그런데 슬프게도 그런 부를 누리는 요즘 아이들이 더 행복하고 나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가 없다. 이젠 아무도 물질적 풍요만으로 행복하기에 충분하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비싼 과외와, 넘쳐나는 고급학용품, 일찍부터 해외여행을 ‘누리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보다 더 공부를 잘해야 하고 더 만족스러워해야 한다고 강요할 수가 없다. 우리는 과외공부 하나 받은 일 없이 사과 궤짝 엎어 놓고 공부했어도 대학만 잘 갔는데 너희는 부모가 다 뒷받침해주는데도 왜 그 모양이냐고 다그치는 것은 시대착오적 행동이 되고 만다.
한 마디로 우리와 그들은 그냥 다른 세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이므로 이 세태를 그냥 받아들일지, 아니면 적당한 타협, 절충점이 어디인지를 고민할 뿐이다.
부모가 되어보니 부모 마음이 이해가 되고 부모가 되어보니 ‘요즘 애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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