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네갈에 살 때의 일이다. 현지인 중에 삑이라는 이름의 청년이 있었다. 늘 조용했지만 눈치가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미리 알아서 일을 하는 친구였다. 가정 형편상 학교를 하지 못해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던 많은 세네갈 젊은이 중 하나였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아니 가족을 먹여 살리는 처지에 있는 청년이었다.
그가 어느 날 남편에게 3만 쎄파를 가불해 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20년 전인 1994년, 그는 2500쎄파 즉 우리 돈으로 일당 5천 원 정도를 받고 일하고 있었다. 이슬람 교인이 많은 세네갈에서는 금식 기도기간인 라마단이 끝나면 보통 양을 잡아 잔치를 하는데 양을 살 돈이 없다는 것이 가불의 이유였고 돈을 다 갚을 때까지 일당을 안 받겠다는 조건이었다. 어느 날이던가, 바퀴가 망가진 카트를 어느 틈에 자기 집에 가져다가 본인이 직접 철사로 총총 동여매어 수리를 해다 놓은 일이 있은 다음부터 남편은 그 청년의 성의를 기억하고 있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이었고 고마워하는 남편에게 그저 씩 웃으며 별 것 아니라는 듯 멋쩍어 할 뿐, 전혀 공치사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루하루 일당 받고 일하는 형편이라 연락처도 제대로 몰랐지만 남편은 기꺼이 가불을 해주었다.
그런데 다음번에 만나 하루 일을 마치고 남편이 그 날부터 돈을 갚는 것이려니, 일당을 주지 않고 헤어지려던 순간이었다. 삑은 하루 품삯 2500쎄파 중 1500쎄파만 까나가면 안 되겠느냐고 부탁을 했다. 집에 빵을 사갈 돈이 없노라고... 바게뜨가 120쎄파 정도였으니 1000쎄파면 식구 여러 명이 먹을 빵 값은 되는데 식구 중 일하는 사람이 자기 혼자라서 자기가 벌지 못하면 모두 굶는다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남편이 그 돈을 까나가며 그 청년에게 일을 주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이후에도 한결같은 그 청년의 성실함은 우리가 세네갈을 떠나면서 그를 한국인 지사장이 관리하던 공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추천하게끔 했고 운전면허가 있어야 취직이 된다는 말에 운전학원에 다니도록 도와주게 만들었다. 그 청년은 어지간해서는 남에게 부탁을 잘 안하는 사람이었던 남편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던 것이다.
일자리가 없어 한창 나이의 젊은이들이 하릴없이 놀고 있는 세네갈에서 한국 공장에 취직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어서 지사장 말에 의하면 여기저기서 부탁이 수없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 곳에서 고정 월급을 받으며 일하게 되었으니 삑에게는 바로 행운의 기회가 온 것이었다. 세네갈 떠난 후 제법 세월이 지나 오랜만에 만난 한국 지사장에게 삑의 안부를 물으니 매니저로 승진하여 일을 열심히 잘하고 있노라는 반가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친구를 소개해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기회란 그런 게 아닐까 한다. 평소의 성실함과 진심으로 살다보면 어느 순간 찾아오는 것. 이미 다 커서 더 이상 엄마의 잔소리가 통하지 않는 나이에 이른 딸아이에게 나는 가끔 이 이야기를 꺼내며 항상 진심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기를, 매사에 성실함으로 임하기를 당부한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님이 “운도 실력이 있어야 따른다”고 하셨던가. 그 실력이란 요즘 말하는 ‘스펙’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엇, 난 그 진심이 갖는 힘을 믿는다. 삑이 어쩌다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닌 것이다.
서로 말도 잘 안 통했지만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가 귀국 이삿짐을 싸던 날 나타나 온갖 허드렛일을 해주며 말없이 고마움을 표시하던 청년, 삑을 기억한다. 여전히 그 성실함으로 잘 살고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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