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두 자매가 있었다. 큰 딸에게 거는 기대가 컸던 엄마는 큰 아이한테는 늘 엄격했다. 성실한 성격에 명민한 아이였으므로 공부도 잘했다. 엄마에게는 큰딸이 백 점을 받고 일등을 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어서 칭찬에 인색했고 시험에서 하나만 틀려도 속상해하며 야단과 잔소리를 쏟아냈다. 다 아는 건데 부주의해서 틀렸지 않냐, 너는 덤벙거리는 게 탈이다 하며.
둘째 딸은 언니에 비하면 요령이 있었다. 살살 애교를 부리며 엄마 기분을 잘 맞추었고 그래서 야단맞을 일도 그냥 넘어가는 적이 많았다. 둘째여서 용서가 되었고 막내라서 무슨 짓을 해도 다 귀여웠다. 엄마 눈에는 큰 딸은 다섯 살에도 큰 애였고 일곱 살에도 ‘일곱 살이나 먹은’ 아이였지만 둘째는 일곱 살에도 아직 ‘일곱 살 밖에 안 된 어린애’였던 것이다. 둘째 딸은 공부가 그만그만했다. 그래서 더욱 엄마는 조금만 잘해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5 곱하기 7이 45라 쓴 답에도 어이구, 그래도 지난번보다는 덜 틀렸네 하며 격려했다.
큰 딸은 이런 엄마의 꾸중이 무서워 시험 결과를 숨기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점점 공부와 학교생활에 자신감을 잃었다. 반면 둘째는 매사에 당당했고-요즘 말로 근자감이 넘쳤다고 해야 하나- 그런 성격 덕에 교우관계나 학업에서도 차츰 나아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고 두 자매의 대학 진학 결과는 엄마가 예전에 예상하고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아는 집의 실제 이야기이고 사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엄마의 기대가 지나친 간섭으로 또 결과에 대한 조급증이 되어 큰 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두 자매와 엄마 사이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금방 알아내지만 우리 자신이 자식에게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치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충분히 능력이 있어 보이는데 아이가 왜 그것 밖에 못할까 하는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 때문이다 초등학교 다니던 아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다 보면 그것도 모르냐며 차마 여기 옮기지는 못하지만 ‘돌대가리’보다 더한 표현을 써가며 고래고래 야단을 치게 된다는 내 친구가 있었다. 엄마는 답답해서 그냥 한 소리였겠지만 그 아들이 엄마의 그 성난 표정과 말에 받은 상처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나이가 되어도 어떤 것은 남아 아직도 가끔씩 아프고 씁쓸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할 때 남편에게 “자네는 안됐네, 내 딸이 해주는 음식을 평생 먹어야하니”라고 하신 아버지의 농담은 가뜩이나 음식 만드는 데 자신이 없었던 나를 지금까지도 괴롭힌다. 시부모님 초대는 쉬워도 친정 부모님 오시라하기는 아직도 어렵고 그러다 보니 평소 안하던 실수도 하게 되어 돈가스를 만들면 튀김옷이 벗겨지고 탕수육은 쏘스 농도가 맞지 않으며 늘 잘하던 케익 역시 제대로 부풀지를 않는다. 솜씨가 모자라니 열심히 하라는 뜻이었을 아버지 말씀이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되어 역효과를 내는 것이다.
아이를 야단을 치는 것은 더 잘하라는 격려일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 면에서는 그리 바람직한 방법은 아닌 듯하다. 두 자매네 큰딸에게 있어 엄마의 그런 태도가 어디 학교성적과 대학진학에만 영향을 미쳤겠는가. 아이 교육에 부모의 감정이 실리지 않을 수는 없지만 부모가 부모로서 노력해야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객관적이 되어 봐주기, 나의 감정을 실어서 꾸중하지 않기, 자극을 준다는 미명 아래 지나친 표현은 자제하기, 아이가 민감해 하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기, 지나간 일까지 자꾸 들추며 잔소리하지 않기, 등.
세상에 거저 되는 것은 없다. 더구나 아이를 키우는 일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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