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에 글을 올리는 것을 알고 있는 남편이 하루는 내게 자녀 키우는데 있어 아빠의 역할에 대해 한번 써보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적당한(?)’ 무관심이 아이의 교육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변명처럼 덧붙인다. 듣고 보니 아이가 대학을 잘 가기 위해서는 할아버지의 경제력과 엄마의 정보력 그리고 아빠의 무관심, 이 세 가지가 필요하다는 우스개가 생각났다.
동화 속의 아빠를 기억해 보자. 사실 옛날이야기 속에서 아빠들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나 아니면 계모의 온갖 구박에 방관자로 또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나온다. 예를 들어 백설공주 이야기 속 사냥꾼은 백설공주를 숲에 데려가 죽이고 간과 허파를 가지고 오라는 계모의 명령에 차마 백설공주를 해치지는 못하고 다른 동물의 간과 허파를 대신 가져다준다. 분석하자면 동화 속에 등장하는 사냥꾼은 아빠의 다른 모습이다. 아이 눈에 비친, 엄마와의 사이에서 자기편이 아닌 듯 무관심해 보이는 아빠인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였을 그 시절에 아빠가 자녀 교육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 없건만 옛 이야기 속의 아빠는 왜 하나같이 미미한 역할의 수행자로만 그려지고 있는 것일까? 아마 예전에도 아이의 성장과 교육에는 엄마들이 더 직접적인 관여를 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사냥꾼=아빠는 백설공주를 위해 적극적으로 계모와 맞서거나 편들어 주지는 않지만 큰 위험으로부터 구해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현대의 아빠는 어떤가? 얼마 전 부터 아빠들이 아이를 돌보는 TV 프로그램들이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행여 다칠세라 따라다니며 잔소리를 해대는 소심한 엄마들에 비하여 아이들의 저지레에 좀 더 대범하고 체력적으로도 우세한 아빠들이 아이를 돌보는 것은 확연히 달라 보인다. 같이 캠핑을 하며 부자, 부녀간 그동안 쌓인 서먹함과 거리를 메워나가고 또 아이들을 안아주고 밥을 먹이며 아빠라는 존재를 느끼게 한다. 저 아이들이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을 통해 얼마나 자존감과 든든함을 느꼈을 것인가, 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했다. 아빠가 인정해 주는 ‘나’는 엄마가 칭찬하는 ‘나’와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저런 환경을 누릴 수 있는 아빠와 아이들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어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을 아빠들의 육아 휴직이 종종 화제에 오르고 실제로 휴직을 실천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윗사람 눈치를 보며 법정 휴가일도 제대로 못쓰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나는 요새 ‘미생’이라는 드라마에 빠져있다. 대한민국의 보통 직장인들,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며 하루에도 열두 번씩 사표 쓰고 싶은 마음을 접는 아빠들의 모습이 보인다. 매일 이런저런 이유로 술에 절어 귀가하는 남편이 잔소리하는 아내와 시청자를 향해 외친다. 니들이 술맛을 아냐고... 팍팍한 삶을 살고 있는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남편이 많이 안쓰럽다.
나의 남편도 예외가 아니어서 아이에게 섭섭함을 느끼게 하기 일쑤인 바쁜 직장인이다. 그럼에도 본인의 무관심이 아이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믿는 것을 보며 그 근거에 대해 한참을 생각해 본다. 그러자 그 속에서, 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부침이 좀 있어도 묵묵히 믿고 지켜봐 준 버팀목 아빠를 발견한다. 그리고 딸아이가 잘못한 일로 내게 야단을 맞을 때 앞으로 다시는 안그럴테니 아빠에겐 절대 말하지 말라던 이유가 엄마의 잔소리와 꾸중은 참을 만하지만 아빠의 자신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는 것이 싫어서였다는 것을, 무관심의 모습을 했으나 그 속에 담겨있는 자신에 대한 깊은 신뢰를 스스로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제대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아빠의 ‘적당한’ 무관심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가족을 위해 오늘도 달리는 대한민국의 아빠들, 모두 힘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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