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마보이, 맘마걸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시대이다.
인기 있는 학과목 수강신청을 아이 대신 해주고, 교수에게 딸 성적에 대한 항의 전화도 서슴지 않으며, 잠 모자라는 의사아들이 안쓰러워 의사인 엄마가 대신 회진체크를 해주었다는, 성인이 된 아이들이 독립하지 못한, 어쩌면 그들을 독립시키지 못한 엄마들 이야기를 주위에서 심심찮게 듣는다. 해외출장 갔던 아들이, 선배인 내 남편한테 업무 관련해 싫은 소리를 들었다고 국제전화로 한 시간 동안 불평을 한 어떤 나이 지긋하신 어머니도 생각난다. ‘경험이 부족해 잘 모르는 후배를 잘 달래 가르쳐야지 그리 혼을 내면 어떻게 하느냐, 기가 죽을 게 아니냐’고 하셨다. 전화를 끊고 남편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돌아가서 쪼르르 엄마한테 쫒아가 미주알고주알 자기 잘못한 부분은 쏙 빼고 일러바쳤을 서른일곱 먹은 아들도 아들이지만 그렇다고 직장 상사에게 직접 전화하여 우리 아들이 어떤 아들인데 하는 엄마는 또 어찌 이해할 것인가.
소위 맘마보이, 맘마걸은 자녀가 많지 않다보니 생겨나게 된, 과잉보호와 도를 지나친 관심, 간섭이 낳은 우리 사회의 한 현상이다. 엄마는 아이를 위해 최고라 생각되는 것을 골라주고, 어렵고 귀찮은 일을 대신해주며, 나쁘다고 판단되는 건 못하게 하면서 엄마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는다. 판단과 선택과 결정을,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엄마가 나서서 대신 해주는 것이다.
물론 부모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잘 들여다보면 아이가 원해서라기보다는 그냥 자신이 어릴 적 못 받은 걸 해주면서 이런 것을 해줄 능력 있는 부모라는 자기만족감 또는 대리만족에 빠져있는 경우도 적지 않아 보인다. 심지어 자기가 좋아서 해줘 놓고는 생색도 낸다. 스스로 ‘나는 좋은 엄마’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아이들 역시 점차 이런 환경에 젖어 엄마의 이와 같은 도를 넘은 관여와 간섭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헬리콥터맘이니 캥거루족이니 하는 신조어가 괜히 생겼겠는가.
이런 주제로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릴 적 부모가 너무 심하게 간섭하여 싫었다는 부류와 너무 무관심하여 섭섭했다는 부류로 갈리었다. 전자는 결혼까지 했는데 본인이든 배우자든 혼자 할 줄 아는 게 너무 없더라고, 그래서 아이들은 독립적으로 키우겠노라고 말했고 후자는 무심해 보였던 부모가 상처가 되어 자신은 아이들에게 뭐든지 다 해주고 싶다고 했다. 형편이 안돼서 혹은 딸이라서 누리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을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아낌없이 다 해주고 싶은 엄마의 사랑이 과하여 엄마 없이는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혹은 나이 사십이 넘어도 여전히 부모 그늘 아래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의존적인 아이들을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다. 관심과 간섭사이의 적정선을 찾아 지키는 것, 그것이 부모의 올바른 자식 사랑법이 아닐까. 부모세대보다 똑똑한 우리 자식들이 더 크게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말이다.
법륜 스님이 말씀 중에 그러셨다. 출가하는 석가를 부모가 간섭하여 못하게 막았더라면 부처가 되셨겠는가고.
과유불급이라.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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