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선생님은 이담에 커서 뭐가 되고 싶어요?’
작고 아담한 체구의 유치원 원장선생님이 어느 날 아침 한 원생에게 받은 질문이랍니다. 아마도 자신이 아이 눈에는 아직 덜 자란 어른으로 보였나보다고 웃으며 말하더군요^^ 유치원에서 전날 내 준 숙제랍니다. 난 이 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오라고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갖는 꿈은 때로는 허황되고 터무니없기도 하지만 듣고 보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나쁜 놈을 무찌르는 로봇이 되고 싶은 아이가 있는가 하면 대통령도 되고 싶고 자동차회사 회장님이 되고 싶기도 합니다. 요술공주가 꿈이기도 하고 아빠와 결혼하고 싶다는 공주님도 있습니다. 꿈인데 뭔들 못 꿔보겠어요?
꿈이란 어쩌면 작은 소원들이 모여 이루어지는 모자이크는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소원은 바둑판 모양의 칸이 그어진 하얀 공책에 글씨를 써 보는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언니가 바둑판 모양의 칸이 그어진 하얀 공책(일명 바둑이 공책)에 연필로 글씨를 쓸 때면 세상에 그렇게 언니가 멋져 보이고 부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매일 엄마 옆에서 거무죽죽한 신문지를 접어 칸마다 시꺼먼 먹물로 먹글씨를 쓰는 데 하얀 공책이라니요. 학교에나 들어가야 공책을 쓸 수 있으니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요. 지금은 상상도 안 되는 일이지요? 예전에는 나라 전체가 가난했으니 꼭 필요하지 않으면 돈을 주고 산다는 것은 사치와 허영으로 치부되었고 어린 나이에도 눈치는 있어서 감히 공책을 갖고 싶다는 말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빨리 학교에 들어가고 싶었고 바둑이 공책에 글씨를 쓰는 숙제를 하고 싶었지요. 글쓰기 숙제는 가슴 벅찬 선물이었습니다. ‘너는 하얀 바둑이 공책에 글씨를 써도 되느리라~’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는 신의 목소리처럼 머릿속에 울려 퍼졌습니다.
다음으로 기억나는 소원은 동화책을 가져 보는 것이었지요. 글씨는 깨우쳤는데 왜 그리 읽을 책들이 귀했는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세계명작 동화집’을 아버지께 선물로 받고 기뻐했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딱딱한 표지에 그림도 있고 열 두 권이 한 세트로 되어 있었는데 읽고 또 읽었습니다. 단단했던 책표지는 얼마 안가서 곧 새의 부러진 날갯죽지 마냥 덜렁거리게 되었죠. 일주일동안 엄마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잘 하면 토요일에는 근처 중고등학교 도서관에서 특별히 책을 빌릴 수 있도록 주선해 주셨으니, 토요일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버스로 서너 정류장은 족히 되었던 거리를 언니의 손을 잡고 큰길을 건너 한참을 걸어야 했지만 새로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설레기만 했지요. 종이의 묵은 냄새로 가득 찬 도서관의 책꽂이는 눈앞에 펼쳐진 신세계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용돈을 모아 언니와 교대로 한 달에 한권씩 새로 나오는 책을 사서 읽기도 했지요.
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에서 돌아 온 아이들에게 하는 첫 마디는 ‘오늘도 학교에서 재미있었니?’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물음에 하루는 막내가 ‘엄마는 학교 가는 게 그렇게 맨날 재미있었어요?’라며 물었습니다. 손꼽아 기다리던 학교였으니 지금 생각해도 잠 못 이루며 설레던 밤들이 생생하군요. ‘당연하지. 학교는 재미있는 곳이야. 친구들도 많고 선생님께 새로운 것도 배우고!’ 아이들은 그저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오늘은 무엇을 배울까, 어떤 일이 있을까, 쉬는 시간엔 뭘 하며 놀까’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가길 바라던 날들입니다.
우리의 형편은 훨씬 더 좋아졌고 공책에 그레파스, 색연필 온갖 종류의 문구류와 책들에 이르기까지 넘치고도 넘치는 세상입니다. 바둑이 공책에 글씨를 쓰고 싶다는, 동화책을 갖고 싶다는 간절한 소원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운동화 대신 샌들이 신고 싶고 까만 에나멜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가고 싶던 시절. 종이 위에 그려진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입으로 소리내며 수없이 두드리던 시절.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입밖으로 꺼내지 조차 못하고 일요일 아침이면 골목 어귀 고등학생 언니가 치는 피아노 소리를 듣고 싶어 아침밥도 굶어가며 남의 집 담벼락 밑에 쭈그리고 앉아 귀 기울이던 시절. 너나나나 할 것 없이 모두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안타깝지만 그리운 시절입니다. 그리고 ‘헝그리 정신’으로 버티던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작은 소원이 있었고 그 소원들은 우리가 살아 나가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원대한 꿈과 포부는 하루아침에 마술램프의 지니처럼 튀어나오는 것도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어쩌면 어려서부터 가졌던 작은 소원들과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기울였던 정성과 노력이 꿈을 실현하는 길로 나 자신을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는 것은 아닐는지요. 간절했던 바람과 결실의 기쁨을 안겨 주었던 성취감, 그리고 그 경험은 또 다른 소원을 계획하는 에너지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소원성취의 작은 단편들은 마치 모자이크 그림을 하나씩 맞추어 가듯 내 삶의 모양을 완성시켜가는 조각들이라는 생각입니다. 어떤 작품이 완성될는지...
커갈수록 꿈이 없다는 아이들.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무기력한 아이들이 지천입니다. 풍족하지만 빈곤한 아이들을 보며 과연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인지 자문하게 됩니다. 눈앞에 줄줄이 제공되는 풀코스의 메뉴를 소화하기에도 바쁜 아이들에게 작고 간절한 소원이 비집고 들어갈 여유가 있기는 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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