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서너 살이던 무렵, 좋아하던 동화 중 “엄마를 바꿔줘요”라는 책이 있었다. 좀 엄하긴 해도 내가 이 정도면 괜찮은 엄마라는 것을 아이에게 세뇌(?)시키기 위해 고른 책이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뭐든지 안된다하는 책 속의 ‘진짜 엄마’는 과자나 사탕을 아이 마음대로 먹지 못하게 하고 TV도 보고 싶은 만큼 실컷 못 보게 하는 ‘안 돼!’ 엄마이다. ‘다른 엄마로 바뀌면’ 왠지 더 좋을 것 같은 아이의 상상을 이루어주기 위해 책에서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안주고 과자와 사탕만 주는 엄마,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하고 TV만 보게 하는, 혹은 놀이터에서 저녁 늦게까지 놀게 놔두는 엄마를 차례로 경험하게 한다. 그런데 아이는 이런 엄마들을 하나씩 겪으면서 점차 ‘안 돼’의 이유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모든 것을 적당하게 조절해주고 보살펴 주는 원래의 엄마가 제일 좋은 엄마임을 인정한다는 내용이다.
상황을 너무 극단화한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딸아이가 한동안 손에서 놓지 않고 계속 읽어달라고 했던 책이니 뭔가 강한 끌림이 있었던 듯하다. 어쩌면 ‘다른 엄마면 뭐가 다를까, 더 좋을 지도 몰라’ 하는 내적 갈등(?)을 동화를 들으며 해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다른 사람도 어릴 적 한번쯤, 특히 야단을 맞거나 섭섭한 일이 생겼을 때 지금 부모가 나의 진짜 부모일까 의심해 본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외가에서 크던 시절,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았던 막내 삼촌이 나를 골리느라 ‘니 엄마한테 가라’ 그럴 때마다 내 엄마는 왜 나를 이렇게 외가에 놔두어 설움을 받게 하는 건지, 도대체 진짜 엄마이긴 한 건지 어린 마음에 서운해 한 적이 있었다.
“엄마를 바꿔줘요”의 엄마는 아이 눈에 보이는 엄마들의 일상적인 모습일 것이다. 동화 속에서는 충분히 안 될 이유가 있는 상황들을 설정해 놓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반드시 그런 경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단 ‘진짜 엄마’가 제일 좋은 엄마라고 타협은 했지만 책 밖으로 나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을 무조건 안 된다고만 하는 엄마, 왜 안되는 지를 설명해주지 않고 처음부터 ‘안 돼’가 습관이 된 엄마들이 보인다. 이런 부모의 ‘안 돼’는 아이한테 어떻게 이해되고 있을까? 때때로 엄마들의 ‘안 돼’는 그저 '싫어' 또는 ‘해주기 귀찮아’와 같은 의미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자식을 키우면서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방향으로 아이가 자라길, 혹은 바뀌길 바란다. 그래서 부모가 아이에게 뭔가를 시킬 때 싫다고 답하면 말을 안 듣는다고 속상해하고 때론 상처까지 받는다. 다 저 좋으라고 하라는 건데 왜 안하겠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될 때도 많다. 좀 더 커서는 사춘기 아이가 보여주는 ‘안 돼’를 반항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아이한테는 일방적으로 안된다고 하면서 부모인 내게 안된다는 답을 하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과연 서로 어떤 소통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본다. 물론 컴퓨터 게임 시간을 제한하기 위한 ‘안 돼’도 있고 엄마 눈에 거슬리는 길이의 교복치마를 고집하는 딸에게 하는 ‘안 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설사 부모 생각이 옳더라도 안된다고 말하기 전에 무조건 안 돼가 아닌 합당한 사유로 설득하고 타협할 노력을 해본 적은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합당한’ 사유가 얼마나 합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인생에서 100대 빵의 일방적인 승부는 없는 법, 적당한 수준에서 서로의 원하는 바를 맞춰가는 것도 부모와 아이가 모두 배워야할, 삶을 살아가는 기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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