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은 프랑스에서 바이올린 교수가 서울에 오셨는데 통역을 해줄 수 있겠는가 하는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다. 빠리 시립음악원 교수이셨고 한국 학생들을 대상으로 마스터클래스를 여신 것이다. 다행히 딸아이가 바이올린을 한 덕에 얻어들은 풍월이 있어 몇 가지 음악 전문 용어를 익히니 수업 통역은 그리 어렵지 않았고 매우 특별한 경험이 되었다.
마스터 클래스 신청자들은 90퍼센트 이상이 예중, 예고 입시를 앞둔 어린 학생들이었다. 자신이 그간 연습한 곡을 교수 앞에서 해보이고 가르침을 받는 수업이었는데 주로 입시를 위해 수개월 이상 준비했던 곡을 연주했다. 레슨은 공개수업으로 진행되었으므로 교실에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가득했다. 교수는 비디오카메라까지 동원된 뜨거운 분위기에 놀란 반응을 보이며 연주가 끝날 때마다 각 학생의 나이와 바이올린을 한 지 몇 년 되었는가를 물었다.
“15살 이구요, 10년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예고 입시생이다 보니 평균 나이가 만 15세였다.
“어린 나이에 이렇게 어려운 곡을 하다니... 테크닉이 아주 훌륭하네요.”
그런데 그 교수는 어린 나이에 그런 곡을 연주하는 것이 놀랍다고 그저 격려차원에서 말했을 뿐 그렇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음악을 정말로 사랑하는 학생인지 아니면 부모 때문에 거기까지 밀려 온 학생인지 소리를 듣고 금방 구별하였다. 간간히 내게 작은 소리로 ‘저 학생은 음악 하는 것이 별로 즐겁지 않아 보이네요’ 라는 평을 하시고는 했다. 물론 입시 직전이었으니 그 스트레스가 소리에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렇지만 교수의 귀에는 우리는 못 듣는, 무언가 다른 소리가 들리는 게 틀림없었다. 연주를 훌륭히 끝낸 듯 보이는 학생에 대해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으니까.
우리는 일반적으로 ‘최연소’라는 타이틀을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어린 나이에 훌륭한 성과를 거둔 것이니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그래서인지 뭐든 ‘빨리 빨리’ 이루도록 장려하는 분위기이고 악기 공부에도 그런 조바심을 보인다. 어려운 곡을 보다 어린 나이에 연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또 진도를 어디까지 나갔는지 에도 매우 신경을 쓰는데, 하던 것을 얼른 끝내고 새로운 곡으로 자꾸 넘어가야 소질을 보이고 더 잘하는 것 같기 때문인가 보다. 하긴 나 역시 피아노를 배우던 시절, 체르니 30번을 어서 끝내고 40번을 치노라 하고 싶어 연습이 덜되어 서투른 곡도 그냥 적당히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어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TV프로그램 중 달인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고 또 즐겨 본다. 어느 분야가 되었건 그들 모두 경지에 이른, 도를 통한 솜씨로 보는 이들에게 큰 재미와 감동을 선사하는데 유심히 보면 한 분야 경력이 30년은 보통인 경우가 많다.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세월이 쌓이면서 달인이 되었던 것이다.
아이가 걸음마를 일찍 시작한다고 달리기 선수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아이가 조금 늦되어도 조급해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마라톤이고 아이들은 출발 선 근처에서 이제 막 뛰기 위한 준비를 하는 중이 아닌가. 페이스를 잘 조절해야 완주하는 법, 100세 시대라는데 나이 오십은 돼야 반환점임을 상기하면 초반에 진 뺄 일이 절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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