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아주 오래 전에 보았던 이란 영화가 있어요. 꼬마 아이가 주인공이었는데 아주 순진하고 착한 소년이었죠.
실수로 친구의 숙제 노트를 가져온 것을 알게 되고 그 친구의 노트를 돌려줘야만 한다는 일념하에 어딘지도 모르는 친구의 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내용... (숙제 안해오면 퇴학이라는 선생님의 말을 그대로 믿었거든요)
제목하야..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제 글의 제목을 '엄마표의 끝은 어디인가..'라고 쓰고 보니 갑자기 그 영화 제목이 생각났어요.
친구의 집은 어디에 있는지. 친구의 노트를 돌려줄 수 있을지 없을지. 친구가 나 때문에 숙제를 못해서 혼나면 어떡하나. 내가 찾아가는 이 길이 맞나...
물론 결국 친구의 집은 찾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해피앤딩이 아니냐.. 하면 또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른들이라면 첨부터 대굴빡 굴려 생각해냈을 '숙제 대신 해주기'를 하고 친구가 맞이할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어요.
못 보신 분들은 꼭 한 번 보셔요. 아이들의 눈으로 보이는 세상과 아이의 마음을 알게 되실 거니까요.
여튼...
저는 엄마표의 끝은 어디인가..와 이 영화가 이상하게 오버랩이 되면서 공통점이 보이네요.
저는 엄마표의 끝이 정확히 어디인지 잘 모릅니다.
제가 맞게 가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혹시 이렇게 가다가 우리 아이를 망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실력도 없는 내가 할 수나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과연 도착이나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첨부터 학원을 보내면 되지 ..'하는 것은 소년이 첨부터 친구의 숙제를 해주면 되지..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저에게 엄마표는 소년의 숙제처럼 꼼수부리지 않는 정직한 길이라는 소신 때문이겠지요.
숙제를 대신 해가서 친구를 구해주는 것이 결코 나쁘지 않았어요.
너무 사랑스럽고 감동스러운 장면이었지요.
하지만 이 아이가 처음부터 친구 숙제 까지 다 해 놓고 룰루랄라 놀았다면 과연 그렇게 사랑스러웠을까요?
만약 저도 최선의 끝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대신 해주는 숙제처럼 학원이라는 도구를 쓸 겁니다. 그렇지만 그 때 보내는 학원이라면 사랑스러운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엄마표를 고집하고 있는 큰 이유는 초등생인 아이들에게 여유시간. 독서시간을 많이 주고자 했기 때문이에요.
아이가 저학년 땐 고학년 수학 문제집, 특히 심화 문제집을 서점에서 들쳐보고 헉!!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요. 아~~~ 난 절대로 절대로 고학년 때는 수학을 도와주지 못하겠구나..
그런데 아이도 그렇지만 저 역시 어느 학년을 점프한 것이 아니라 같이 올라왔기 때문에 고학년이 되었는데도 가능하더란 말입니다. 중간에 놓았었다면 이어가지 못했을 거예요. 덕분에 둘째 봐주기가 더 수월한 건 말할 것도 없구요..
영어는 스스로 읽고 듣고 하기 때문에 딱히 엄마표라고 해도 크게 손 가는 일은 없습니다.
저학년 때 레벨에 욕심내지 않고 그저 습관만 잘 잡아준 것..
저학년 때 책들은 같이 읽어서 내용 공유했던 것.. 그게 큰 핵심이었던 거 같구요
그리고 나선 편해졌어요.
어차피 영작이야 쓰는 게 목적이지 오류첨삭이 목적이 아니라서 가끔씩 쓸 거리를 던져주는 정도였구요.
5학년 들어서면서부터 azar빨강으로 문법을 시작했는데 이것도 뒤에 답이 있어서 봐주기 그리 어렵지는 않아요. 처음에 책 두께 보고 허거덕! 했지만 한꺼번에 수백장 푸는 거 아니잖아요.
한 걸음씩 가다보면 끝이 나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고 있네요. 고난이도 문법이 아니라서 괜찮아요.
사회, 과학도 학습지 아닌 시중 문제집으로 하니까 채점해주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사회, 과학은 주말에만 합니다.) 우리가 경험한 실제 이야기나 읽었던 책 이야기도 하면서..
아직도 진행중인 엄마표..
어디가 끝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더래도 친구의 집을 찾아서 할 수 있는데까지 뛰고 달렸던 이란 소년같은 마음으로 일단은 쭉~ 해보려구요. 그리고 지금은 엄마표에서 엄마표 반, 아이표 반이 되었거든요. 머지않아 아이표가 될 거라 믿습니다. ^^


쑥쑥몰
체험이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