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었던 아들을 찾았노라고 흐느껴 우는 중년 여인의 고백록.
지금은 장성한 아들 둘에 늦둥이 딸 하나를 둔 마나님의 얘기입니다.
큰 아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간절히 유학을 원하더랍니다.
당시 조기유학 붐이 마구 불어 주변에 보내는 이도 많아 호주 홈스테이를 시켰답니다.
세 살 아래 아들이 형이 잘 하고 있으니 부러워하여 둘째도 중학교 때 보냈답니다.
문제는 수학교사와의 사이에서 생겼습니다.
머리가 비상한 건지, 잘 못 배운 건지 문제를 보면 암산으로 답을 안답니다.
풀이 과정을 쓰지 않고 답만 덜렁덜렁 쓰니 지적을 받는데
컨닝 하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꾸지람을 들었다네요.
이 말은 시험 볼 때 뿐 아니라 수업시간에 연습문제를 풀면서
교과서 답지를 기억해 쓰는 것도 해당됩니다.
거듭되는 지적에 화가 난 아이가 책을 탁 덮었는데 이 것이 품행 문제가 되어
벌점을 크게 받아 퇴학 직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부모의 증언이니 좀 가려서 들읍시다.)
하여 호주 학교를 떠나 고등학교 때 한국에 와서 학교를 다니게 되었답니다.
아이가 엄마 보기를 꺼려하고 말이 사라지고 자기 안에 갇혀버렸다네요.
알고보니 호주 홈스테이를 한국 독신 여성 집에서 했는데
아이도 착하고 돈은 꼬박꼬박 오니 봉이라 생각했는지
그 여성이 "부모는 너를 버렸으니 나랑 살자."고 귀가 닳도록 말했답니다.
학교 성적도 형편 없고 고통스런 부모자식 관계를 이어가던 어느 날 고3 담임을 만났습니다.
"난 여지껏 이런 애가 내 반에 있었는지도 몰랐다."라며 운을 떼더랍니다.
학교에서도 말이 없고 그저 그림자처럼 가만히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아이가 갈 대학이 없습니다." 선생의 독설은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요? 그럼 대학에 가지 말아야지요." 엄마가 이렇게 대답했더니
"내가 맡은 학생이 원서를 쓰지 않은 예가 없습니다.
엄마가 되서 애를 대학에 안 보내겠다니 정신이 있으십니까?"
엄마가 단판에 선생을 눌렀습니다.
"아이를 몇 개월 맡아놓고 이런 애가 있었는지도 몰랐다면서 선생님의 정신은 온전합니까?
자퇴시키겠습니다. 이제껏 살펴 봐온 내 새끼 내가 맡겠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잘 키워놓겠습니다."
정말로 아이를 자퇴시키고 검정고시를 시작했답니다.
자식의 마음 문을 여는데 3년이 걸렸다면서 흐느껴 우십디다.
검정고시 붙고 욕심을 부려 아이를 다그쳐 공부시키다 아이를 버리는 줄 알았대요.
다시 마음을 내려놓고 같이 거실에서 공부하면서 대입 준비를 했답니다.
남들이 선호하는 명문대는 못 갔지만 이제는 자식이 사람 노릇할 거라는 자신이 있답니다.
선생님이라면 무조건 굽실거리고 살살 기는 우리의 기가 막힌 예의.
저도 애 엄마 경력보다 선생 경력이 더 긴 사람이라 선생님을 위해 주면 좋긴합니다만
저 따위 인간에게도 무조건 선생이라고 예를 갖추고 싶지는 않네요.
선생을 단칼에 제압했다는 말에 제가 박수를 쳤습니다.
짝짝짝
스승의 날 다가오는데 이런 글을 쓰다니 전 심보가 삐둘어졌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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