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말을 쓰지만 저는 서울 토박이는 아닙니다.
부모님도 지방 출신이시고 저의 출생지는 충청도여유.
초등 이전부터 서울에서 자랐지만 서울이 주는 이미지,
뭐랄까 세련됨, 부자 등의 이미지와는 무관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70년대 서울 변두리에서 맞은 어린이날은 그래서 아주 오죽잖않지요.
한 반에는 70여명이 북적대었고 형편이 아주 어려운 집 아이도 많았어요.
엄마가 바빴는지, 게을렀는지 구멍난 양말 신은 애도 많았고,
코흘리개, 지저분한 애, 팔꿈치 기운 옷 입은 애 등 요란했답니다.
어린이 날이면 담임이 임원이랍시고 명찰 단 애들을 불러모아 특명을 내립니다.
남녀 각 셋트로 한 8명 쯤 되었던 거 같습니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어린이날 무얼 보낼 건지 알아와라."
울 엄마는 반장도 아닌데 내가 왜 그런 걸 들고가냐고 부회장 나부랭이인
나의 타이틀을 무시하고 단호하게 거절하셨던 기억도 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형편이 어려워 그런 돈 쓸 여력이 없었을 겁니다.
어린이 날 뿐 아니라 학교를 전혀 찾아오지 않는 엄마 때문에
학교에 자주 와 어항 물도 갈아주고 꽃꽂이도 해주는 친구 엄마들이 부러웠어요.
그래도 그 시절 고아원이라 불리던 시설에서 학교 다니던 아이들은 저를 부러워했겠지요.
자장면 한 그릇이면 최고였던 오죽잖은 어린이날.
그나마 그런 어린이날도 없었을 아이들 몇 명 얼굴이 떠오릅니다.
이름이 양씨라고 별명이 양재기였던 애가 있었는데....
아이들과 즐겁고 여유로운 어린이날 보내셨나요?
어린이 날이 무의미해진 저는 오늘 여느 토요일 처럼 지냈습니다.
산책하고 들어오다 호화 유모차 안에 갖가지 선물더미에 파묻힌 아기를 보았습니다.
제 자식이 그랬을 겁니다. 없는 돈 짜내서 꾸몄거든요.
저는 젊어서 내 자식만 보고 내 아이만 호강시키느라 혈안이었어요.
오죽잖은 어린이날을 보내고 있을 아이들 생각을 못 했어요.
반성합니다.


쑥쑥몰
체험이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