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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 뻑적지근하게 키운다고요

  • 홍박샘
  • |
  • 2012-03-27
62

아이가 공부 잘 한 집 얘기 들으면 어려서 뛰어나지 않았다는 둥,

엄마는 잘 모른다는 둥, 아이가 알아서 했다는 둥....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나를 맥 빠지게 만드는 인터뷰가 많다.

읽으면서도 속으로 딴지를 건다.

'아무렴 학원 문턱도 안 밟았을까, 아무렴 고등 때 잘 하는 게 가능할까?'

심지어 SAT 학원 설명회 내 옆에 앉았던 아줌마가 아들 잘 된 뒤

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학원만 보내면 안 된다는 둥, 아이의 장점을 보라는 둥.....

(내가 하는 소리네?)

 

그런데 사실 멀리도 아니고 내 조카 녀석네가 그렇다.

내 올케는 그냥 사람만 좋을 뿐, 아들 녀석 공부에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는다.

그럴 여력이 없는 것이, 큰 딸이 공부를 무지 않하는 데다 본인 몸이 아프다.

또 미술을 전공해 평생 그림을 그리는 게 낙이라 내가 보면 딴 세상 사람 같다.

조카녀석은 언변이 없고 세련되지 않아 어디서고 눈에 띄는 애가 아니다.

착한 건지 미련한 건지 어려서부터 누나한테 치이고 맹하고 답답해서 기대 못 받았고

중학교 들어가서도 성적이 대단치 않아 '대학이야 가겠지...' 했던 녀석이다.

 

나는 용의주도하고 아는 게 많아 내 아들을 놓고 이리저리 실험한 엄마다.

엄마표라는 말이 없을 시절부터 유식이 하늘을 찔러 이것저것 다 내가 가르쳤다.

의사네, 상담가네 자주 찾아다녔고 그들이 권하는 영어 원서도 읽었다.

궁금하면 전문가 찾아 질문하고 답 구하고....

울 엄마의 눈에는 당신의 똑똑한 딸은 자식을 저리 잘 키우는데

당신의 답답한 며느리는 자식을 방치한다고 봤다.

그러나 두 사촌형제는 맹하고 답답하기가 저울에 잰 듯 같았다.

 

희한한 일이 생기기 시작하니 중3 때부터 조카는 달라졌다.

수학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공부도 할 만하다는 것이다. 별 일도 다 있어?

학원을 보내줬더니 선생이 싫다고 인강을 한단다.

혼자서 인강 선생 찾아서 공부하다가 영어는 과외 선생을 구해달란다.

중요한 것은 이런 결정을 스스로 내린다. 엄마가 끌어다 집어넣기, 절대 NO!

 

고등학교에서부터 내리 공부에 매진하는데 무서울 정도였다.

작은 일지에 하루 할 일을 꼼꼼이 적고 지켜지지 않으면 자신을 질책했다.

집에 오면 방에 틀어박혀 공부를 하는데 저게 사람인가?

독서실이고 학원이고 일제 담쌓고 집에만 오니 언니는 저녁과 간식만 열심히 해줬다.

옷도 뭐도 관심 없고 매력이 하나도 없는 인간으로 변해간다.

장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이런 아이의 특징은 고집불통.

아무리 과외 선생을 대줘도, 학원 상담을 시켜도 싫으면 타협이 없다.

간식도 한 가지만 먹다가 한 번 안 먹으면 입도 안 댄다.

또 한 가지에 소위 '꽂히면' 그것만 해서 어떤 게 좋으면 그 것만 몇 달 먹는다.

의지가 굳은 건지 머리가 이상한 건지.

올케는 좋다는 간식을 몇 달 해준다. 요렇게도 해보고 조렇게도 해보고.

 

또 하나. 이런 아이의 특징은 희노애락에 둔감하다.

엄마가 아프면 위로할 줄을 아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무덤덤.

고3 때 서울 좋은 동네라 일컬어 지는 지역 고등학교에서 뛰어난 성적을 보였으나

대학에 실패했다. 원하는 대학 한 군데 안 되자 뒤도 안 돌아보고 재수.

또 기계 같이 살더니 이공계 수재들이 가는, 모두 다 '와 ~'하는 학교에 갔다.

머리 속에 뭔 생각이 든 겐지, 마음 속에 뭘 품고 있는지 알 길이 없는 아이.

그냥 믿음직한 우리집 장손. 그 애 엄마는 모른다. 그냥 밥 반찬 해주고 집 지켰다.

 

지나치게 똑똑해서 아들 갈 길 미리 닦고 다니는 나는 뭔가?

신문 기사 오리고, 책 읽고 정보 찾아서 아들과 공유하고 토론한다.

지난 여름 처음 간 SAT 학원 writing 책 오류 찾아내 학원선생한테 따지라고 했다.

그럼 뭐 하나. 관심사는... 삽겹살, 소녀시대, 페이스북

    (뭐  공부를 아주 못 한단 뜻은 아니고.... )

나도 정말 내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가서 "저는 뭐 한 게 없어요, 호호호..." 하고 싶다.

아니거든! 난 요란 뻑적지근하게 자식 키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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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FS Alex
  • |
  • 2012-06-2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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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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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나이스
  • |
  • 2012-04-01 00:12
답댓글

갑자기 그 생각이 드네요. 부산에서 중학교 졸업 즈음, 나보다 성적 안 좋았던 아이가 과학고에 갔었죠. (제가 93학번임다.)

중학교 때는 제가 좀 했더랬거든요. 저는 그런 학교가 있는지도 몰랐고, 그저 할 줄 아는 건 학교 공부...

고등학교 가서 정말 심란했다 말입니다. 국민학교 때 좋아하던 남자애도 과학고 톱으로 들어갔다고 하고...

물론 제가 수학 과학에 뛰어난 자질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이후로 사춘기에 공부가 눈에 안들어오고 충격이 컸었더랍니다. 서울 쪽에는 그 때도 이미 외고가 있었던 걸로 아는데요.

저는 저희 애들에게 엄마가 정보에 어두워 다양한 인생의 길을 비춰주지 못했다는 원망은 안 듣고 싶어요.

저도 밥만 해주고 싶지만, 어디 애가 고등학교 가서 홱 돌아 공부만 할 지 어떻게 장담을 하겠습니까.

모 블로그에 6학년 때 IBT TOEFL 113점 받은 아이나, 4학년부터 5학년 여름방학동안 중학수학을 뗐다는 아이들 영, 수, 과학, 봉사에 영재원에 말이 국내파지 5살부터 부모가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이더라구요. 부모들 학력도 좋구요.물론 아이가 받쳐줬겠지만요.

5학년인 우리 딸, 3, 4학년 때 뭐했나 싶게 후회가 되고 있지만, 쑥쑥에서 홍박샘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저희 동네에는 거의 없어요.

저희는 엄마가 좀 검색질해야 요정도나마 유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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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톨
  • |
  • 2012-03-30 16:47
답댓글

나는 어떤 엄마인가.. 생각하게 되네요.

요란뻑쩍지근하게...는 게을러서 못하고..

그렇다고, 아이하는 대로 믿고 맡기자니 불안하여, 그 중간에서 왔다갔다 속이 타들어가는 엄마네요.

 

마음속 상상으로는..

요란뻑쩍하게 했어도.. 저 암것도 해준것 없어요~ 우아하게 답하고픈 욕망은 있네요.

자기주도학습..자기주도학습.. 요즘의 키워드인데.

자기주도학습을 시키고파서 자기주도학습 학원알아보게 생겼어요. ㅎㅎ

 

저는 클 떄, 부모님이 오빠에게 기대가 늘 컸어서.. 저는 상대적으로 참 헐렁하게 컸죠.

기대가 적었던 만큼, 저는 부담이 없었고, 결과적으로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오빠보다 제 결과가 객관적으로 좋았어요.

부모의 지나친 관심이 아이를 힘들게 한다는걸 알면서도.. 저는 왜 그게 안되는걸까요.

저 역시 큰 애에게 기대감을 버리질 못하네요.

홍박샘 글은 늘 옛 기억을 들춰내게 만드세요. 생각하게 만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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