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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븐을 켜고 기억을 굽다

  • 홍박샘
  • |
  • 2012-02-03
65

엄마들과 박완서 책 읽는 북클럽을 시작하며 또 다시 추억 끄댕이 잡기 놀이가 시작되었다.

젊어서 성공이라는 이름의 성취를 느껴보지 못한 자는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기를 좋아한다.

증거를 요구받지 않는 사례를 들어 자기 삶을 드라마로 만들고픈 얄팍한 전략이다.

지금 떠벌이려고 하는 얘기가 오늘 아침 메뉴에 대한 수다라면 믿어지는가?

 

식모들의 수발로 좋은 음식을 먹고 자란 내 친구는 요리에 관심이 없다.

"뭐 걔네들도 할 수 있는 거 내가 맘 먹으면 못 하겠니? 그냥 귀찮을 뿐이지."

또 엄마가 집에 남아 알뜰살뜰 예쁜 식탁을 받아 본 친구도 요리에 관심이 없다.

"우리 엄마는 귀찮게 맨날 삶고 볶고 부억에서 헤어나오질 못 해. 난 싫다, 얘!" 

 

부억 보다 밖으로 뛰며 살았던 여전사의 식솔인 나는 곱상한 밥상을 받은 적이 없다.

그저 김치와 장건건이만 있으면 '후다닥 찌개'로 세번 의무를 채우는 끼니를 받았다.

고운 식탁보, 예쁜 그릇, 영화에서 보는 양식기 등에 대한 상실감,

아니 애초부터 없었으니 상실감 아닌 상상력은 결혼 후 나를 그런 식탁 구현에 매진하게 했다.

발품 팔아 상표 그릇 사기, 천 끊어 식탁매트 만들기, 남편 졸라 아웃렛 매장 가기 등등...

게다가 콩깍지 씌인 신혼에도 맛 없으면 절대로 맛있다 하지 않는 남편과

어렵사리 얻은 자식의 입맛을 위한 고도의 노력은 나의 부억노동 수준을 높여갔다.

 

그러나 이런 극성이 사그라든 것은 많지도 않은 식구들이 자꾸 흩어져 살면서부터이다.

공부하느라 내가 외국 생활을 했고, 또 남편직장 동네에서 직장을 못 구했고,

아들은 자라 무슨 팔자인지 저 자란 외국 가서 살게 되었다.

나의 식탁에서 행복에 겨워하는 것으로 내 가사노동 댓가를 지불해주던 가족 셋트가

이 빠지듯 이럴 땐 요 사람 없고 저럴 때 조 눔 없어지니 식탁은 허술해져갔다.

쌓아둔 식기는 더러 조카에게 주었다. 첨단 조리도구는 상자째 광에 있고,

식탁은 발가벗겨져 크리넥스며 달력이며 생활용품에 구석을 차지당했다.

 

오늘 아침 불현듯 별다른 아침 메뉴를 생각해냈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누룽지를 끓여먹거나 토스트, 베이글로 때우던 아침에

난 오븐을180도로 예열하고 주섬주섬 냉장고를 뒤졌다. 시금치 프리타타를 위하여.

사용않던 저울, 계량스푼, 오븐 용기.... 다 있다. 앗 생크림?  우유로 오케이.

 

프리타타 (Frittata)란 멋지게 들리지만 야채 등을 넣은 달걀찜이다.

냉장고에 있는 어떤 채소든지 그 성질에 맞게 살짝 익힌 뒤 계랸물을 부어 오븐에 익힌 것.

좀 더 감칠맛을 내기 위해 베이컨을 구워 넣는다.

 

시금치 살짝 데쳐 썰고, 감자도 작은 깍둑썰기하여 삶는다, 이때 삶는 물에 소금 조금씩.

버섯이나 피망 등도 있는대로 간 살짝하여 팬에 살짝 굽고 베이컨도 잘라 구워 기름을 뺀다.

위의 것을 섞어 오븐 용기에 넣고 계란물을 넣는데 계란물 반죽도 쉽다.

계란 2개에 우유 또느 생크림 1큰술이면 비율이 맞다. 나는 계란 4개에 우유 4T,

소금 2분의 1t, 설탕 3분의 1t, 그리고 파메산 치즈 가루 1T를 넣었다.

치즈를 좋아하는 나는 좀 더 넣고 싶지만 집에 있는 치즈가 양질이 아니어서 생략.

기호에 따라 잘게 썰어져 있는 모자렐라 (피자치즈)를 넣는 사람도 있다.

 

아, 중요한 점. 이 계란물을 몽땅 넣어 오븐에 굳게 하려면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래서 계란물의 3분의 2는 팬에 부어 젓가락으로 긇으면서 스클램불 한 뒤

채소 베이컨 혼합물에 덩어리로 섞어줘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 계란물을 부으면 이것이 형제를 굳혀주는 역할을 하고

또 한 10분 만에 프리타타가 완성된다.

오븐 성능이 다 다르므로 위에서 보아 약간 갈색이 나기 시작하면 오븐을 끈다.

내 거는 후다닥 먹어버려 사진 없고 구글 이미지에서 한 컷.

 

예쁜 접시에 포크와 나이프 놓고 바삭바삭 토스트 한 쪽.

그리고 달단한 야채피클 정도 놔주면 쥬스와 함께 좋은 식사. 물론 커피.........

오랜만에 오븐 켜고 즐거운 아침을 해준 아내에게 늙은 남편이 한 말은,

"치즈 맛이 거의  안 나네." 였다. 인상적이지 못 했다는 뜻이다.

 

그대들은 무슨 아침 상을 가족에게 들이대시는고?

이런 수다 한번 떨어봅시다. 유게에서는 연애담, 사는 얘기 다 나옵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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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oneko
  • |
  • 2014-11-05 20:27
답댓글

65번째 댓글을 이제 답니다. 달아도 괜찮겠죠? 홍박사님 글은 조목조목 선이 굵고 글이 참 다박다박합니다.

저의 글은 참으로 가볍기 그지없는데 말이죠....^^;

책만 사다가 어느날 게시판 알게되고 엄마표 울화증에 와락 덤벼든 때가 얼마안되었는데, 이젠 별별 얘기도 다 쓰고 있네요. 너무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렸는데 고수님들 그리고 홍박사님이 어떤 분이신지도 잘 모르고 이 자리에 있기가 이제는 부담스럽네요. 시간을 갖고 쑥쑥의 글들을 살펴봐야겠어요.

그리구, 프리타는 이름도 고상하지만 요리도 참으로 고상스럽네요. 정성이 듬뿍 들어간 요리...^^사실, 요리는 정성이잖아요. 아직 가볍게 휘날리는 제 요리는 깊이를 더할라면 멀었지만, 언젠가는 저도 시금치가 들어간 프리타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런, 소중한 글들이 쌓여가는데 당장 쏟아지는 글들만 살피게 되니 아쉽습니다.

지난 글 중에 좋았던 글들은 귀찮은 엄마들을 위해 좀더 쉽게 볼 수 있어도 좋을 듯 합니다.

바쁜 와중에 제 글에도 놀러와 주시니 감사드리구요, 프리타 글을 읽은 것을 계기로 저도 오래되었으나 여전히 빛나는 글들을 이제라도 찾아봐야겠어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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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리마루맘
  • |
  • 2012-02-08 20:18
답댓글

저도 요즘 고인이 되신 박완서 선생님의 '보시니 참 좋았다'라는 책을 읽은 후에

마지막 소설'기나긴 하루'를 구해 보려던 참이었습니다.

보시니 참 좋았다는 8편의 동화집인데...절판된 책이라 참 어렵게 구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더 소중하게 여겨지네요..

...

저는 맛난 음식 먹는 걸 최고로 좋아하고 가끔 먹어본 음식을

기억을 되새기며 해보고 집안식구들 죄다불러(본가 옆에 살았더라는) 먹이는 고문까지도 합니다..ㅠㅠ.

솜씨는 별로 없지만 요리도구며 식기엔 와그리 욕심이 많은지...

지금도 예쁜그릇 구경하는 걸 옷구경보다 즐겨한다죠,,,...

박사님의 부군과 아드님깨서 박사님의 부억노동 수준을 높여주셨다니..^^;

신혼때 반찬이라곤 단무지 무침밖에 모르던 저에게

울반쪽의 잔소리와 가~끔 칭찬이 저의 요리실력보단 요리가짓수를  팍팍 올려 주었네요

 

정말 맛나보이는 프리타타... 반쪽이와 아이들에게 함 해줘봐야지....

일욜아침 브런치로 딱~~~좋네요~~

레시피,,감사히 받아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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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aktree
  • |
  • 2012-02-06 14:07
답댓글

제목 참 멋스럽습니다..^^

나이 먹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공감하며 읽어질 것 같네요..

전 요리에 잼병인 사람이라..  그걸 감추려고..요리는 덜 될수록 좋다!!!라고 외치며..

드레싱과 소스연구만 하는 꽈라..오븐은 녹이 슬고 있네요..ㅎㅎ

맛깔스런 운 글..맛있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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