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 씁니다.
제가 안 나온다고 게시판이 불타는 것도 아니고 날씨만 불타는군요.
아들녀석 데리고 SM 라이브 콘서트 다녀왔어요.
가족석을 사면 도시락까지 줍디다.
지난 토요일 불타는 날씨에 야외 잠실 경기장,
7시간 동안 악악 거리는 아이들 속에서 두 노인이 고역을 치렀네요.
4시부터 시작된 공연이 더위로 전기가 끊기면서 자꾸 지연, 급기야 11시 넘어 끝났답니다.
소녀시대, 에프엑스, 샤이니, 슈퍼주니어, 보아, 동방신기....
제 나이에 이거 줄줄 외우는 것도 신통하지요.
늦둥이 아들 녀석 덕분입니다.
부산서 올라오는 남편과 아이보다 제가 먼저 표를 받으러 경기장에 갔습니다.
아들이 전화해 야광봉을 미리 사놓으랍니다.
거, 왜 불켜 가지고 흔들어대는 막대 있잖습니까?
아줌마가 야광봉 사자니 잠시 무안하여 노점 아저씨게
"이거 부모 노릇하기 힘 드네요. 야광봉 하나 주세요."
사고나서 전철 서 보니 에잉? 동방신기라고 써있네요.
그 때 알았습니다. 야광봉 색깔도 가수마다 다르다는 걸.
후환이 걱정이대요. 소녀시대는 분홍색인디...
경기장 길목에서 어떤 옷 회사가 비닐봉투에 소녀시대 얼굴을 인쇄해서 나눠주대요.
일단 자리에 앉자 싶어서 아이가 받으러 가려는 걸 말렸더니
그 뒤로 들어오는 사람마다 소녀시대 쇼핑백을 들고오는 거라.
아들 녀석이 봉투 다 떨어진다고 안절부절해요.
그래서 그냥 공연을 즐겨라, 엄마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해준다, 고 안심 시켰는데
가만 보니 정말 곧 동이 나겠더라고요.
이미 공연이 시작됐는데 저는 소녀시대 얼굴 받으러 입구로 다시 나갔습니다.
그 때 알았네요, 잠실 주 경기장은 참으로 넓구나.
손목에 찬 입장객 표시를 보여주고 밖으로 나갔더니 회사가 막 짐을 꾸리네요.
다행이다 하면서 봉투 2장 받아 의기양양 아들에게로 왔습니다. 덥습니다.
그런데! 아, 그런데....
봉투를 펼친 아들 얼굴이 흙빛입니다.
그만, 슈퍼쥬니어 얼굴이 찍힌 봉투를 들고온 겁니다. 에구....
누가 알았나 봉투가 두 종류인지.
다시 허덕허덕 입구로 나갔습니다.
좌석에 모여든 3만5천명의 아그들이 까악까악 나를 보고 소리 지르네요.
뭐 착각은 자유라니께.
짐을 거의 다 싼 직원에게 소녀시대 내놓으라 했더니 다 나갔답니다.
큰 일이다. 비싼 티켓 사줘도 이까짓 비닐 봉투 못 줘서 원망 듣겄구나.
돌아오는데 알바 직원이 짐이 든 소녀시대 봉투를 아무렇게나 들고있는 겁니다.
은밀하게 다가가 협상을 시도했지요.
'저그,,, 저 봉투 나 좀 주셔. 대신 슈쥬 봉투 줄게."
우리 이쁜 윤아 얼굴이 다소 구겨졌지만 그래도 그 봉투 얻어들고 다시 좌석으로!
아들이 두 손을 모아쥐고 고개를 조아리며 감사하답니다.
음향은 머리가 뽀개지게 크지, 3만 애기들은 쉬지 않고 악을 쓰지,
폭죽이 터지다가 불이 확~ 올라오다가 풍선이 날아갑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무대가 밭전자로 여러 개입니다.
각 무대는 좁은 길처럼 연결되어 가수들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춤을 춰대요.
갑자기 무대 밑에서 뽕 튀어나오는가 하면 끌차에 실려 돌아다니고요,
그런가하면 저 안쪽 무대에서 사이키 조명이 터지면서 다른 팀이 튀어나옵니다.
그러다 잠시 음향이 꺼지고 빛이 사라져 초조하게 하더니
저 위 지붕에서 운동장을 완전히 가로질러 줄을 타고 동방신기가 매인 무대로 내려옵니다.
아이들이 미치두먼요. 어떻게 내 눈 앞에 동방신기가 있냐고 신기하다고 울부짖어요.
슈퍼쥬니어와 샤이니 각각 팬인 두 딸을 데려온 엄마와 저는 가끔씩 눈을 마주칩니다.
이게 뭔 아수라장?
소녀시대만 나오면 혼절을 하는 아들과 남편.
(남편은 아들과 친구되려고 애쓴다지만 제 생각엔 진심으로 소녀시대 팬인듯..)
남편은 풍선, 아들은 끝내 분홍으로 바꾼 야광봉 흔듭니다.
저요? 부채 흔들었습니다. 아구 덥습디다.
음식이 안 넘어간다는 아들을 옆에 두고
나눠준 밥 꾸역꾸역 먹었습니다. 비싼 돈 주고 산 건데.
잠 못드는 열대야, 퉁퉁 부은 발로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점:
- 보아는 국보급 가수다.
- 동방신기는 신이다.
- 소녀시대는 노래를 못 한다.
- 어느 꽃미남 가수 보다도 내 아들이 더 이쁘다.
도치 엄마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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