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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텐츠

두 언어의 완전 해석이 불가한 이유

  • 홍박샘
  • |
  • 2010-01-19
14

요즘 전철에는 슬라이딩 도어가 있습니다.

슬라이딩 도어 한 문짝에 있는 시입니다.

 

                                      숨바꼭질

                                                         이진흥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날렸습니다.

                           붉은 내 마음이 들켰습니다.

                           그녀가 나를 죽였습니다.

 

제대로 기억했다면 이렇게 딱 넉 줄입니다.

만일 이 시를 영어로 번역한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Hide and Seek

 

                          Roses of sharon had blossomed.

                          My hair was blown.

                          My red heart was caught.

                          She killed me.

 

도대체 이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입니까?

글자 그대로 옮기자니 도저히 우스워서 최소한 my 정도는 넣었습니다.

시제도 옮겨보자니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네요.

 

원래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시입니다.

직역된 영시에서는 그 감동이 전달 되지 못 합니다.

이 시가 영어로 완전한 해석이 불가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우리나라 아이들이 하는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알아야 합니다.

(숨바꼭질은 서양아이들도 압니다.)

무궁화 게임은 술래가 보지 않을 때 살짝 움직여 앞으로 다가갔다가

술래가 돌아보면 꼼짝 않고 있어야 하는 놀이지요.

 

둘째 게임 미스테리를 풀어야 합니다.

두 게임 중 실제 하는 게임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 무궁화 게임을 하는 데 제목이 숨바꼭질인 이유는

몰래 감추고 있었던 사랑의 감정이 들통난 것을 말합니다.

크게 움직인 것도 아니고 바람에 살짝 머리가 날린 정도의 움직임인데

그만 그녀에게 마음을 들켰습니다.

 

셋째, 상징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그 뜨거운 사랑 때문에 마음이 붉습니다.

아무리 숨겼어도 나의 미동에 그녀는 담박 알아차렸습니다.

부끄러워 마음이 발갛습니다.

‘붉다’는 것 하나로 이 모든 것이 행간에 떠돕니다.

이를 단순히 red 하나로 표현하기엔 역부족입니다.

 

넷째, 중의성이 있습니다.

중의성이란 표현은 하나인데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녀가 나를 죽였습니다’는 술래인 그녀가 나의 움직임을 포착했으므로

나는 게임의 규칙에 따라 죽습니다.

또 하나,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그녀 때문에

나는 죽고 싶은 지경인지도 모릅니다.

 

위 넉 줄을 이해(comprehension)하는데 어휘 실력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시가 펼쳐지는 배경, 술래인 그녀에 대한 나레이터인 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 배경지식과 사전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다른 문학작품을 읽었거나, 드라마를 봤다거나,

나아가 실제 사랑을 해봤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꿔 생각하면 영어를 보고 한국말로 일일이 해석하는 것이

왜 그다지 의미 없는 학습법인가를 말해줍니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언어는 절대 1:1로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 그 얘기를 어떻게 도입해 전개하는가,

어떤 부분이 중요한,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면 됩니다.

이러한 읽기는 그러나 단숨에 얻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책을 읽고 그에 관해서 사소한 것부터 이야기 해보는 습관에서 얻어집니다.

많은 글 읽기를 통해 이러한 독해기술이 생기고 나면

그 때 가서 어휘집이다 문법책을 봐도 늦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학습서들이 쉽게 이해가 되어 금방 마칠 수 있습니다.

 

저는 저 시 ‘숨바꼭질’을 금새 외우고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문학적 소양이 있기 때문이간디요?

짝사랑을 지독하게 해봤기 때문입니다.

희한한 배경지식과 사전경험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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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후지후맘
  • |
  • 2012-08-06 11:00
답댓글

지독한 짝사랑의 경험 때문일까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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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워니맘
  • |
  • 2010-03-09 12:03
답댓글

그냥 아무생각없이 영어에 관련된 글이것거니 하고 시를 읽다가 잔인한 시인가 했는데 ㅋㅋ

창피하네요 시는 쓰는사람과 읽는 사람에 따라 참 많은 해석이 가능한가 봅니다

아직 초보엄마인지라 시간이 날때마다 사이트에 들어와서는 좋은 정보올리신 분들의 글을읽고 있는데

역시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모두 열정적이시더군요

많이 배워갑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하다보니 아이들을 친정엄마가 많이 돌봐주시거던요

그래도 쉬는날이 되면 놀이든 책이든 많이 경험하게 해주려고 하는데도 자꾸 부족한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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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0-03-10 17:48
틈을 내어 읽어 주는 책이 결국 모여서 아이가 스스로 책을 읽는 힘을 줍니다.
그 효과가 몇 년 있어야 나타나니 조바심이 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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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치
  • |
  • 2010-01-28 01:17
답댓글

저한텐.. 이 글이 " 영유를 보내지 마세요요요~~~" 이렇게 들리네요..^^;  모두 자기 수준 만큼 보이나 봐요.ㅋ

영유는 정말 단순한가..  아님, 어린 시기에 해석을 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영어를 익힐수 있는 좋은 방법인가..  우아.. 무지 헷갈리죠..    학습적인건 결국 늦게 해도 된다인데요..  독서와 다양한 경험이 우선이고..  영유에서 하는 단어테스트나..  문장 쓰기나 읽기 스킬은..  어린 그 나이에 안해도 되는 것인지요..  헤헤..  수준높은 글에 이런 댓글을 다니.. 제 얼굴이 부끄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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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박샘
  • |
  • 2010-01-29 13:02
장기적인 커리큘럼이 있는 교육기관에서 받는 교육이라면 따라가야죠.
문제는 그런 식의 수업방식이 전부인양 생각하지 않도록 책 읽게 도와주세요.
해석은 학교에서 선생님과 하고 집에서 엄마와는 책 얘기하자고 하세요.
그림보고 얘기하며 무슨 내용인가 상상하는 재미가 크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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