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전철에는 슬라이딩 도어가 있습니다.
슬라이딩 도어 한 문짝에 있는 시입니다.
숨바꼭질
이진흥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머리카락이 날렸습니다.
붉은 내 마음이 들켰습니다.
그녀가 나를 죽였습니다.
제대로 기억했다면 이렇게 딱 넉 줄입니다.
만일 이 시를 영어로 번역한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Hide and Seek
Roses of sharon had blossomed.
My hair was blown.
My red heart was caught.
She killed me.
도대체 이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입니까?
글자 그대로 옮기자니 도저히 우스워서 최소한 my 정도는 넣었습니다.
시제도 옮겨보자니 보통 까다로운 게 아니네요.
원래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세요.
가슴 저리게 아름다운 시입니다.
직역된 영시에서는 그 감동이 전달 되지 못 합니다.
이 시가 영어로 완전한 해석이 불가한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 우리나라 아이들이 하는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알아야 합니다.
(숨바꼭질은 서양아이들도 압니다.)
무궁화 게임은 술래가 보지 않을 때 살짝 움직여 앞으로 다가갔다가
술래가 돌아보면 꼼짝 않고 있어야 하는 놀이지요.
둘째 게임 미스테리를 풀어야 합니다.
두 게임 중 실제 하는 게임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 무궁화 게임을 하는 데 제목이 숨바꼭질인 이유는
몰래 감추고 있었던 사랑의 감정이 들통난 것을 말합니다.
크게 움직인 것도 아니고 바람에 살짝 머리가 날린 정도의 움직임인데
그만 그녀에게 마음을 들켰습니다.
셋째, 상징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그 뜨거운 사랑 때문에 마음이 붉습니다.
아무리 숨겼어도 나의 미동에 그녀는 담박 알아차렸습니다.
부끄러워 마음이 발갛습니다.
‘붉다’는 것 하나로 이 모든 것이 행간에 떠돕니다.
이를 단순히 red 하나로 표현하기엔 역부족입니다.
넷째, 중의성이 있습니다.
중의성이란 표현은 하나인데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녀가 나를 죽였습니다’는 술래인 그녀가 나의 움직임을 포착했으므로
나는 게임의 규칙에 따라 죽습니다.
또 하나, 나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 그녀 때문에
나는 죽고 싶은 지경인지도 모릅니다.
위 넉 줄을 이해(comprehension)하는데 어휘 실력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 시가 펼쳐지는 배경, 술래인 그녀에 대한 나레이터인 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는 배경지식과 사전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다른 문학작품을 읽었거나, 드라마를 봤다거나,
나아가 실제 사랑을 해봤다는 것을 말합니다.
바꿔 생각하면 영어를 보고 한국말로 일일이 해석하는 것이
왜 그다지 의미 없는 학습법인가를 말해줍니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언어는 절대 1:1로 해석이 되지 않습니다.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가, 그 얘기를 어떻게 도입해 전개하는가,
어떤 부분이 중요한,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를 이해하면 됩니다.
이러한 읽기는 그러나 단숨에 얻어지지 않습니다.
오랜 세월 책을 읽고 그에 관해서 사소한 것부터 이야기 해보는 습관에서 얻어집니다.
많은 글 읽기를 통해 이러한 독해기술이 생기고 나면
그 때 가서 어휘집이다 문법책을 봐도 늦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학습서들이 쉽게 이해가 되어 금방 마칠 수 있습니다.
저는 저 시 ‘숨바꼭질’을 금새 외우고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뭐, 문학적 소양이 있기 때문이간디요?
짝사랑을 지독하게 해봤기 때문입니다.
희한한 배경지식과 사전경험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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