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울님... 참 좋네요.
겁나게 긴 글인데 중간에 한 눈 팔지도 않고 주루룩 스크롤 내리지도 않고 꼼꼼히 잘 읽었습니다.
왠지 주울님은 나즉한 목소리일 것 같아요.
전 제 글 처럼 한 톤 올라가있고 끝에 날이 선 목소리거든요 ㅠ.ㅠ
글을 쭉 읽어 내려 가면서 제 마음이 자꾸 무거워지더군요.
그래서 커밍 아웃하기로 했습니다.
사실은요.... 제가요.... 빈 깡통이에요 ㅠ.ㅠ
울 꼬맹이 올해 초2입니다.
작년 까지 그야말로 한글 독서가 쭉쭉 진행이 되었었습니다.
페이지 수를 가리지 않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신나게 읽어주기에 저도 덩달아 암 생각 없이 계속 물어다주었네요.
그러다가 작년 겨울 무렵 아이 담임 선생님으로 부터 좋은 충고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울 꼬맹이가 독서와 표현 사이의 간격이 좀 큰 것 같다구요.
물론 초1 짜리가 말이든 글이든 표현한다 해봐야 그 수준이 다 그 수준이겠지만
울 꼬맹이는 유독 자기 느낌을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 하고 싫어 한다 하시더군요.
그 당시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아직 어린데... 인풋한 대로 아웃풋이 나오기를 바라기엔 너무 이르지...
좀 더 자라면 표현도 나오겠지.
그렇지만 일년 동안 아이를 지켜보신 담임 선생님 말씀이기에 그냥 묻고 지나가기엔 꺼림직하더라구요.
이후로 아이를 새롭고 냉정하게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작년 초1에 한글책이긴 하지만 나니아도 몇권 읽었고 뉴베리 번역서들도 간간히 읽었고 한국사 관련 책들, 아이가 좋아하는 위인들의 두꺼운 위인전들, 수잔 바우어의 세계 역사 이야기 번역서 5권도 모두 읽었어요.
그것도 여러번... ㅠ.ㅠ
아이가 재밌어 하고 거침 없이 쭉쭉 읽어 가기에 전 그러려니 하고 말았지요.
그 속에 숨은 복병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바로 가슴이 빠진 독서였어요.
눈과 머리로, 그저 재미를 따라, 자기의 관심과 흥미에 따라 후루룩 넘기는 라면발 같은 독서를 해왔던 거에요 ㅠ.ㅠ
그래서 정작 여덟살 짜리 감성을 울릴 수 있는 이야기,
초1 짜리의 머리가 아닌 가슴에 울림을 주는 책들을 읽고도 느낄 줄 모르니 표현할 줄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구차한 변명을 좀 하자면 1학년 초에 학교에서 받은 여러장에 걸친 권장 도서 목록이란 것을 참조하여 책을 읽으면서 아이나 저나 참 많이 실망했었어요.
아이가 이미 어려서 읽은 영어 동화의 번역서들도 많았고 무엇 보다 국내 창작 동화에 대한 실망이 너무 컸죠.
아이들을 위한 밝고 재밌고 꿈을 꿀 수 있는 책들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좀 어둡고 소외되고 특수한 경우의 아이들을 소재로한 이야기들로 엄마들의 눈물샘을 어떻게든 자극해보겠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드는 책들은 아주 많았구요.
아이는 어려서 부터 영어 동화를 접했기에 좋은 그림은 물론 여러 다양한 밝은 이야기들과 어두운 톤의 이야기들도 많이 읽었었습니다.
에즈라 책 키츠의 무거운 톤의 책들도 오드리 우드나 윌리엄 스타이그의 밝은 책들 이상으로 좋아했었습니다.
그렇게 1학기를 학교 도서관에서 권장 도서와 함께 많은 실망을 경험하고서는
아이가 원하는대로 읽으라고 자유를 주었습니다.
굳이 싫다는데... 저학년 생활 동화를 꼭 읽어야할 필요는 없겠지... 아이 마다 취향이 다르니깐...
그렇게 넘어간 것이 세계 역사 이야기 까지 간 것입니다.
속으로 내 새끼 참 똘똘하다 여러번 외쳤습니다 ㅠ.ㅠ
은근 슬쩍 잘앙질도 좀 뿌리고... 겸손한 척하면서 돌아서 목에 힘도 좀 주고...
빈 깡통이 지대루 깽깽 거린 것이지요 ㅠ.ㅠ
아이 친구 엄마에게... 독서지도 공부도 했고 아이들 독서 지도의 경험도 있는 언니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역시나 언니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큰 아이를 키워 본 친구들의 경험도 참고해봤습니다.
독서를 통한 이성과 감성 발달에 있어서 한쪽으로 기울게 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냐...
제 또래, 그 때 아니면 못 느껴볼 독서 경험들을 놓치고 앞으로만 내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12월이 되면서 방문 도서 대여를 시작했습니다.
초등 저학년 대상 책들 중에 아이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찾는다는게 넘 막막하더라구요.
거기다 아이 건강상의 이유로 도서관에 나다닐 형편도 못되었구요 ㅠ.ㅠ
맨 첫날 선생님이 아이 수준이나 기호를 살피기 위해 몇 단계의 책들을 가지고 오셨는데...
아이는 순전 고학년 단계의 책들만 골랐습니다 ㅠ.ㅠ
아이의 반발을 사지 않기 위해서 첫달엔 아이가 원하는 책 세트와 제가 원하는 책 세트,
두단계 차이가 나는 두 세트 8권을 일주일 마다 대여해서 봤습니다.
다행히 선생님께서 저학년 책들을 참 잘 골라 주셨습니다.
녀석이 저학년 책들은 궁딩 붙이고 좀 읽는 재미가 날만하면 끝나버려서 가끔은 짜증도 냈지만 다행히 지 또래의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더군요.
두달째 부터는 고학년 단계 책은 아예 빼고 저학년 책들만 대여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5월 까지만 진행 될 것 같습니다만 그 동안 정말 소중한 경험을 했습니다.
하마터면 울 아그가 평생 모르고 넘어갔을 뻔했던 것들입니다.
무엇보다 저도 참 즐거웠습니다.
토끼집 카드, 장하다 썪은 떡, 에또... 뭐였더라... 기억이 가물가물.... ㅠ.ㅠ
저학년 국내 창작 동화 중에 재밌으면서 뒷맛도 좋은 책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울 꼬맹이 별명이 시니컬 보이였답니다.
애늙인이 같다는 소리지요 ㅠ.ㅠ
제가 색안경을 끼고 봐서 그런지 요즘의 아이 모습이 작년 보다 오히려 더 밝고 어린 느낌이 나는 것 같습니다 ㅋㅋㅋㅋ
아이 독서에 있어서 레벨을 따진다는 것이 그리 큰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큰 의미를 두고 꼭 짚어 봐야 할 것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독서 능력을 바랄 것이 아니라 마음과 머리가 조화로운 책 읽기를 바라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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