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강원도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자랐습니다.
자꾸만 과거의 내모습을 곱씹어 볼 만큼 저는 어느덧 나이가 들어 버렸는 지 모르지만, 여전히 생생한 저의 학창시절은 한마디로 '후회없었다'라는 말로 끝날 수 있었습니다.
전교생이 겨우 기백명인, 각 학년에 5반이 전부인 작은 사립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공립학교처럼 선생님의 이동이 주기적인 곳과는 달리 졸업한지 십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학교에 가면 저를 가르치던 선생님들이 반수를 넘습니다.
나를 직접 가르치지 않았던 세계사 선생님, 일본어 선생님도 아직 제가 어릴 때 얼굴이 많이 남아있는 지 반백이 되버린 모습으로 아줌마가 되어 나타난 저를 반겨주셨죠. 그것도 지금은 찾아뵙기 부끄러운 마음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말입니다.
저는 정말 이기적인 학생이었습니다. 작은 학교, 늘 계신 선생님들은 말을 잘듣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저를 무척이나 아껴주셨고, 칭찬에 인색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제가 제일 모범적인 학생이라고 생각했죠. 이건 제가 그 시절에 조금은 보기 드문 외동딸이어서 더욱 그랬을 지도 모릅니다. 지금이야 혼자가 너무 흔하지만 말이죠.
어쨌거나 저는 후회없이 공부를 했기 때문에, 엄마에게, 아버지에게 최고의 자식이라고 자신하며 살았습니다. 한번도 부모님이 너는 내 속한번 안썩혔다-라고 말하지 않으셨어도, 전 스스로 최고의 자식이라 그렇게 믿었죠. 공부 잘했고, 크게 반항하지 않았으며, 어쨋거나 나쁘지 않은 학교의 인기학과에 들어갔기 때문에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도 나만큼만 닮으면 정말 아무걱정 없을거라고, 근거없이 자신했었죠.
엄마가 종종 대들고 반항하며 잘난체 하는 저를 보고 너 자식이 너맘대로 될 줄아냐고 저주 아닌 원망의 소리를 하셨지만, 전 우리 애는 나를 닮으면 문제없을거라고 반박했죠. 왜그렇게 자신만만하여 했는지 지금은 정말 어디 쥐구멍에라도 코를 박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습니다.
자식은, 제가 아니라는 점을 저는 이제서야 뼈저리게 알아가고 있습니다.
남편은, 제 손아귀에 쥐락펴락 아이를 휘두르려 하는 저를 보고 제발 놓으라고 합니다. 잘 하고 있는 데 왜 자꾸 채찍을 하느냐고, 본인은 그렇게 공부안했었다며 애가 제 욕심만큼 따라주지 않는 이유가 당신탓이니 이해하라고 위로를 하죠.
모든 아이가 일등이 될 수 없다는 거 알면서도 또 그 엄친아와 아이를 맘속으로 비교하며, 틀린 문제 갯수만큼 가슴에 칼을 꼽았습니다.
많은 wannabe를 쫓으며, 우물안에서 왕처럼 군림하던 엄마만큼만 하여라 하며, 혼내고 미워하고 또 미안해하죠. 아이의 일기장에, 어린 나이보다 더 큰 공부에 대한 부담과 엄마에 대한 미안함을 보고 전 이제 조금 서로 편해지자 마음먹었습니다.
같이 영어책을 읽으며 이야기하는 즐거움이 왜 즐거움인지 몰랐는지, 우리 아이는 정말 저를 닮아서 감수성 하나는 기가 막힌데 말입니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제게 주신 그 누군가의 축복을 왜 제가 미처 감사해하지 못했는지요.
우리 아이의 세상은 저의 우물보다 훨씬 넓은 큰 하늘이라는 것을 이제야 인정하나 봅니다.
재인아, 엄마가 미안해. 엄마에 비하면 넌 훨씬 멋있는 놈인데 인정해주지 않아서.. 나에게 더 괜찮은 아들이 되려고 그렇게 노력하는 소리를 귀막고 눈감으며 보지 못했단다. 이제야 후회해.. 정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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