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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정체가 뭐냐, 아들아?

  • 홍현주
  • |
  • 2009-03-24
127

매일 책 쓰고 교재 쓰는 일이 지겨워요. 편안하게 이런저런 얘기 나누고 싶어 글 올립니다.

---------------------

확신을 했지요, "내 아들은 천재다!" 6년 만에 공들여 낳았는데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여기사 천재를 주신 게 틀림없다.

 

증거 1: 애가 걸어 다니기 시작할 때 알파멧 매트를 깔아주었습니다. 'D'하고 소리 치고 애랑 D로 뛰고..... 어느 날 오줌을 바닥에 찌익 싸더니 '에쓔, 에쓔'하대요. 오줌이 흘러 S 모양이 되었습니다.

증거 2: 세 살에 자동차 이름을 다 외워요. 미국에 처음 거주할 때였는데 거긴 미제차, 일제차, 유럽차, 한국차 다 있잖습니까. 밀가루로 반죽해 오븐에 구운 알파벳 모형을 주었더니 어느 날 VOLKSWAGEN 이라고 늘어놓았습니다. ‘옴마나, 조것이 독일언디.....’

증거 3: 5세 무렵 자동차를 3D로 그려요. 상, 하, 좌, 우 입체감이 딱 나게 온갖 자동차를 다 그려요. 자동차 잡지를 구독하며 수 백대의 자동차 값을 다 외웁니다.

        

짜짠~ 제가 무슨 짓을 한 줄 아십니까? MIT 자동차 공학과로 무전을 쳤습니다, 아니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느그들 조기 영재 프로그램 없냐? 줄리아드 음대는 영재 학교가 있어서 토욜에 특별 수업하는디. 느그들 그런 거 있으면 내 애 좀 봐줘라. 얘가 보통 애가 아니여.”

같잖은지 답이 없습디다.


그런데 얘가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수상쩍은 행동을 해요. 이때는 미국에 두번째로 거주할 시기였는데 피아노를 몇 년을 쳐도 ‘솔’도 몰라요. 칠판을 사다놓고 그림을 그려가며 수학 응용문제를 풀어줘도 맹한 눈으로 나를 봅니다. 그리곤 맨 날 먹는 타령만 해요. 눈 뜨자마자, “엄마, 아침밥이 뭐에요?” 아침밥 먹으면서. “엄마, 저녁 때 뭐 주실 거예요?” 밥숟가락 입에 넣으면서, “엄마, 학교 급식표에 오늘 메뉴가 뭔지 봐주세요.” 나참....


바야흐로 5학년 때 한국에 돌아와 중학교에 갔습니다. 이젠 아예 대놓고 둔재 짓을 합니다. 교복 입고 패션쇼를 하는데 이쁘긴 이쁘대요. 그럼, 뭐합니까? 성적표가 걸레인데. 미국 생활 한 5년 쯤 한 애가 영어를 100점 못 맞아요. 우리 애가 여럿 행복하게 했습니다. “쩌그, 미국 살다 온 시키가 백점 못 맞는 영어면 울매나 어렵겄냐. 긍께 우리도 개안타.” 아참, 부산이지, “야야, 가 미국 살다 온 시키 아인나. 가가 영어를 백쯤 몬 만는다. 영어가 울매나 어려브믄 그라겠노. 마, 우리도 개안타. 내는 60점 맞아도 싸다.”


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 눔의 시키 포기하느라고, MIT에 무전까지 쳤던 내가 X팔려서, 원. 그렇다고 예술적이길 한가, 운동을 잘하나 도대체 쓰잘 데가 없는 겁니다. 사춘기가 오면서 저를 배척하기 시작합디다. ‘그래 너 잘났다.’하는 투가 역력해요. 그 때부터 제가 변하기로 했습니다. 못마땅해 꾸중하고 싶은 마음을 혀를 물고 참았습니다. 무조건 칭찬 모드로 돌입, ‘너는 뭐를 해도 이쁘다, 무조건 잘 했다’했지요. 똑똑한 애들은 무조건 칭찬하면 기분 나빠한답니다. 근거 없는 칭찬은 자기를 기분 좋게 하여 내가 원치 않는 일을 하게하려는 음모라고 받아들입니다. 우리 애는 그런 거 없습니다. 아주 좋아 죽습니다.


그렇게 제가 변했습니다. 아이는 성적이 차츰 좋아져서 그닥 뛰어나지는 않아도 제가 죽자사자 뒷바라지 하면 제 밥벌이는 하겠습니다. 중게에 올린 제 글에 어느 분이 어려서 준 기쁨으로 자식들은 효도를 다 하는 거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 새끼가 어려서 준 기쁨이 뭔가? 첫째, 기저귀 차고 방싯방싯 웃어준 것; 둘째, 오줌 싸고 ‘에쓔’ (S) 한 거. 셋째, 2학년 때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상타온 거; 넷째, 중학 교복 입고 패션쇼 한 것; 다섯째, ?? 암만 생각해도 더 이상 없음. 아들아, 도대체 너는 뭐냐?

---------

생활과제: 내 새끼가 천재라고 나를 착각하게 만든 행동을 댓글로 적어봅시다. 댓글은 의사소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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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이맘
  • |
  • 2009-04-04 23:45
답댓글

하하하 저야 한번만이라도 착각을 해 봤음 좋겠는데, 울 아들이 멍청한 건지 내가 똑똑한 건지 속질 몬했네요.

공감가는 내용 재밌게 읽고 갑니다. 좀더 가벼워 졌읍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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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현주
  • |
  • 2009-04-06 20:44
아들이 똑똑하고 엄마가 멍청한 거 아닐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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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지나
  • |
  • 2009-03-31 17:31
답댓글

매일매일 환상에 쌓이고,

또 매일매일 환상이 무너지는 소리에 신음하며 살고 있습니다.

 

제 아이를 천재라고 생각했던적이...

한때는 있었습니다.

 

오늘도 제 마음을 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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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현주
  • |
  • 2009-03-31 18:53
그러셔야죠. 비워진 마음은 또 그 꼬마가 채웁니다, 다른 기쁨으로.
그 맛을 깨달을 때 쯤 늙어버린 내 자신을 발견합니다.
내가 젊어서 깨우쳤으면 훨씬 더 아이의 인생을 풍요롭게 했을 걸, 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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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빔면
  • |
  • 2009-03-31 11:48
답댓글

아들녀석 키우면서 "얘, 정말 천재아냐? 뭔가 특별해~*^^*" 생각할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ㅋㅋ

콩깍지 단단히 씌여 벗겨지지 않았던 게지요.ㅋㅋ

태어나서 밤낮바뀐적 없이 쌔근쌔근 잘잤고,

모유도 엄마힘들지 않게 슬그머니 끊어줬고,

기저귀 뗄때도 힘들지 않게 바~~로 똥오줌 가려주고,

혼자서 갑자기 자연스럽게 한글떼고,

별로 해준것 없는것 같았는데 힘들지 않게 남들부러워할만큼 영어도 해주고

덕분에 엄마아빠 으쓱으쓱 어깨에 힘들어가게 해주고, 

수셈도 알아서 그냥그냥 해주고... 

그랬던 아이라 내심은 더더더더를 항상 요구하고 아이에 대해 욕심내게 되는것 같습니다.

더불어 학년이 올라가면서 아이에게 화내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는것 같아요. 

선생님 미션덕분에 아이로 인해 좋았던 많은 일들 떠올려본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무것도 않코, 나란히 소파에 앉아 쟁반 한가득 과자부어 놓코

아이가 고른 영화 한편 보겠습니다. 어제엄마가 했던짓 ㅜ.ㅜ 회개하면 용서가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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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현주
  • |
  • 2009-03-31 15:41
좋은 생각입니다. 쟁반 한가득 과자 그리고 영화...
행복한 냄새가 여기까지 납니다.
근데 엄마가 어제 무슨 짓을 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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