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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벌어진 왕따

  • 이원진
  • |
  • 2015-11-09

쉬는 시간마다 복도에서 벌어진 왕따


미국은 중고등학교마다 학생들이 책이나 소지품을 보관할 수 있는 개인 사물함이 복도에 갖춰져 있습니다. 한국과는 달리, 각 교시가 끝날 때마다 학생들이 다음 수업이 진행되는 교실로 옮겨 다녀야 하기 때문에 첫 수업이 시작하기 전인 아침 등교시간에 학생들은 자신의 사물함에 외투와 가방을 넣어둡니다.


그리고 매 교시마다 필요한 교과서와 준비물 등을 쉬는 시간에 챙겨 이동하는데, 전 시간의 교과서를 넣어두고 다음 시간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기는 학생들로 쉬는 시간마다 복도는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자신의 바로 옆 사물함을 쓰는 친구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떠들썩하게 주고받는 학생들, 며칠 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과 오랜만에 복도에 마주쳐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학생들, 미국 학교의 복도는 아이들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중요한 공간입니다.

 

 


선생님의 통제를 받는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 학교생활 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복도이다 보니, 매일 복도에서 일어나는 일 또한 각양각색입니다. 급한 마음에 다음 수업이 있는 교실로 뛰다가 넘어지는 학생, 많은 아이가 오가며 북적 이는 와중에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학생, 수업 중에 불거진 갈등을 주먹다짐으로 해결하려는 학생 등, 복도는 학생들이 만나 반갑게 인사를 주고 받는 밝은 공간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어둠이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왕따 행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제 학생 중 한 명이었던 C는 등교와 동시에 여느 때와 같이 소지품을 넣어두려고 본인의 사물함으로 갔습니다. 멀리서 자신의 사물함 주위에 몰려 웅성거리는 다른 학생들을 보며 ‘무슨 일이 생겼나 보다’ 생각했지만 그 ‘무슨 일’의 주인공이 본인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사물함 앞에 도착한 C는 왜 지나가는 학생들까지 멈춰 서서 웅성거리고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소스라치게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의 사물함 문에 적나라한 악성 루머가 적힌 종이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종이에 C의 남자관계에 대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게 과장되어 적혀있었습니다. C가 쉽게 다른 남학생들과 잠자리를 함께한다거나 C와 잠자리를 원하는 남학생이 있으면 전화 한 통이면 된다는 글과 함께 C의 실제 핸드폰 번호까지 있었고, 더 심하게는 ‘C는 창녀’라는 대문짝만 한 문구도 있었습니다.

 
C의 사물함과 가까운 자기 사물함에 들었던 친구들은 쉬쉬하며 C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고, 주위에 몰려들어 있던 남학생들 중 얼굴조차 모르는 학생 하나는 큰소리로 “안녕, C야!”라며 장난 섞인 목소리로 C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수치스러움과 놀란 마음에 어찌 할 바를 모르던 C는 사물함 문에 붙어 있던 종이를 황급히 떼어내고는 가방을 멘 채 화장실로 뛰어갔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목놓아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마음을 가까스로 진정시킨 후 뒤늦게 수업에 들어갔지만,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제까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까지도 겨우 인사만 할 뿐 왠지 자신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다시 사물함으로 가는 중에도 여학생들은 쉬쉬하며 슬그머니 자신을 피하고 몇몇 남학생들은 짓궂은 눈초리로 자신을 쳐다보거나 뒤에서 마치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야한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루가 온종일 끔찍했던 C는 집으로 돌아와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겠지 스스로를 위로하며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 떼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학교로 향한 C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사물함에 다가섰습니다. 하지만 C의 사물함에는 어제와 비슷한 내용이 담긴 종이가 다시 붙어 있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다른 학생들의 시선 또한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 C는 자신을 슬슬 피하는 친구들과 성적인 농담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남학생들로 인해 학교에 가기가 싫어졌고, 견디다 못해 카운슬러인 저를 찾아와서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고 하소연하면서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다는 얘기를 눈물을 흘리며 쏟아냈습니다.

 

 

 


복도에서 벌어진 왕따 해결 및 대처 법


결론부터 말하자면 C의 사물함에 각종 악성 루머를 적은 종이을 붙이고, 이로 인해 C를 왕따 피해자로 몰아 넣은 장본인은 바로 C의 전 남자친구였습니다.


C의 사연을 들은 저는 이를 부교장 선생님에게 보고했고, 이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시작한 부교장 선생님은 우선 C의 사물함을 중심으로 근처의 사물함을 사용하는 학생들을 불러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추적해가다보니 왕따 행위의 근원지가 C의 전 남자친구로 밝혀졌던 것입니다.

가해 남학생은 자신과 사귀던 C가 관계를 끊고 다른 남자와 어울리기 시작한 데 극심한 질투를 느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보복 심리가 발동한 남자친구는 C에 대한 근거 없는 성적 루머와 인신 공격이 담긴 글을 잔뜩 써서 C의 사물함에 붙이고, 주위의 친구들에까지 C에 대한 악성루머를 퍼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육체적, 언어적 형태를 갖추고 있지 않을지라도, 학년초 학생들에게 강조하며 가르쳤던 괴롭힘의 세 가지 형태 중 하나인 ‘비언어적 괴롭힘’으로 분류되는 엄연한 괴롭힘의 한 형태였을 뿐 아니라, C를 몰아넣고 다른 많은 학생으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은 명백한 왕따 형태임을 틀림없었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필체로 쓴 글이 확실한 증거물로 남아 있으니, C의 남자친구는 순순히 자신의 죄를 고백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C에게 마음의 상처와 정신적 피해를 준 대가로 C의 전 남자친구는 학교에서 정학 처분을 받았고, 혹시라도 또 유사한 행위를 반복할 경우 훨씬 던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리라는 경고와 함께, 다시는 C에게 접근해서 말을 걸거나 다른 사람에게 C에 관한 언급조차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선에서 사건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왕따 행위는 누구를 폭행하거나 말로 괴롭히는 것뿐만 아니라 글의 형태로도 조용히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게다가 아무 생각 없이 이러 소문에 동조하고 퍼뜨리거나 짓궂은 농담으로 피해 학생의 마음에 상처를 더하는 행위는 물론이거니와 소리 없이 이를 옆에서 지켜보며 침묵하는 수동적인 주위 학생들의 모습 또한 피해를 당하고 있는 학생에게는 큰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 C를 위해 절대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적극적으로 해명해주었거나, 혹시 그 내용이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잘못됐다고 얘기하는 학생이 하나만 있었더라도, C의 상처는 조금 더 빨리 위로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누구 하나 나서지 않고, 자신의 눈치를 보며 슬슬 피하는 주위의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C는 마치 자신이 모든 이들에게 죄인이 된 것처럼 스스로를 더 고립시키며 마음의 고통을 느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작은 단순한 농담으로 상대를 골탕 먹이려는 의도였을지라도, 이것이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전혀 상관없는 많은 다른 아이까지 왕따의 가해자로 바꿔버릴 수 있는지 똑똑히 볼 수 있었을 뿐더러, 형태에 상관없이 모든 왕따 행위가 피해 학생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와 고통을 주게 되는지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이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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