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쓰려고 저장해 두었는데 다 날아가고 새해가 밝아서야 다시 써서 이렇게 올립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잊으셨을테지만 오공쥬가 여름까지 명화산책을 올리고 있었답니다.
바쁘고, 정신없는데다 책도 구하기 어려워 멈추었다가 이제사 다시 올립니다.
읽기방에, sp에, 위니에, 명화산책까지......
요즘 또 오공쥬가 게시판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려......^^
그래도 하는 김에 이것도 올려봅니다.
오늘은 풍경화를 보여드리려고 합니다.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에 걸쳐 배경에 풍경이 들어간 것을 시작으로
자연 경관을 그린 풍경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는데요,
빛과 대기의 느낌을 살려 그리는 영국의 컨스터블과 터너의 시대로 들어가며
풍경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그 동안 배경에 지나지 않았던 풍경은 그 자체로 의미를 갖게 되어 후에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영국의 두 유명한 풍경화가 중 오늘은 컨스터블을 보려고 합니다.
1. 컨스터블
<자화상> 1806년 위키백과
존 컨스터블 (John Constable 1776년 6월 11일~1837년 3월 31일)은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로
"똑같은 두 날은 있을 수 없다. 아니 단 두 시간도, 세상이 창조된 이래 한 나무에 매달려 있는 잎사귀 중에 단 두 개도 똑같은 건 있을 수 없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풍경화란 눈으로 보이는 사실 그대로의 것을 순수하게 그려 내는 것'이란 생각으로
주로 고향의 풍경을 풍부한 색감으로 그려내는데 평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빛의 움직임과 대기 속 색채에 빠져 빛과 산들바람, 꽃 흘러가는 멋진 구름,
풋풋한 나뭇잎을 생동감있게 그려 냈습니다.
<건초 마차> 1821년 위키백과
"이 화면에서는 밝은 한나절에, 얕은 물을 수레가 평화스럽게 건너고 있다. 왼편에는 전형적인 농가가 있고, 고요한 정경에, 개가 뛰어나와 움직임을 더해 주고 있다. 컨스터블은 과학자와 같은 관찰로 조석의 근소한 변이에서도 자연의 취향이 어느 정도로 변화하는지를 읽고 있다. 이 작품도 나무그늘의 습기나 근처의 물기에서, 흰벽이나 물의 일단을 밝히는 어둠을 통해 비치는 광선까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부로 그 곳을 느끼게 하는 정밀한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위키 백과)
이 사진이 좀 유난히 어둡게 나왔네요.
사진은 제가 위키백과 사진을 주로 가져오는데
다른 곳에서는 저작권때문에 가져오면 배꼽이 되게 해놓는 경우가 많아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실제는 좀 더 밝고 경쾌한 분위기입니다.
이 작품은 컨스터블의 작품중에 가장 유명한 것인데 발표될 당시
영국에서는 인정을 전혀 받지 못하다가 우연히 한 프랑스인이 사서
파리의 살롱에 출품하게 됩니다.
들라크루아는 <카오스 섬의 학살>이라는 작품을 살롱에 출품했는데
이 <건초마차>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배경을 고쳤다고 합니다.
<카오스 섬의 학살> 위키백과
컨스터블은 프랑스에서의 유명세와 달리
고국에서는 53살이 외어서야 왕립 아카데이 정회원이 되는
인정받지 못한 안타까운 화가였지요.
인정을 받던, 받지 못하던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하던 컨스터블은
많은 작품에 집중하면서 더욱 더 빛과 대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주교의 정원에서 본 솔즈베리 대성당> 1825년 위키백과
<옥수수밭> 1826년 위키백과
우리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한 편의 그림같다라는 표현을 하는데
컨스터블의 그림이 바로 그런 작품들 같습니다.
그러나 컨스터블의 그림이 마냥 늘 평화로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후기에 갈수록 그의 그림에는 어두운 구름이 일고, 매서운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마리아의 초상화> 1816년 위키백과
컨스터블은 마흔이 되어서야 어릴때 소꿉동무였던 마리아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녀의 할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불타는 사랑으로 맺어진 인연은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1828년 사랑하는 아내가 결핵으로 죽고나서 컨스터블은
늘 검은 옷만 입고 홀로 7명의 아이를 키웠습니다.
컨스터블은 아내가 죽자 동생에게 편지로
'아이들이 어떻게 자랄지는 신만이 알 것이고,
나에게 세상의 얼굴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했다고 합니다.
아내가 죽은 다음 해에 그린 이 그림들은 너무나 우울하고, 음산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아내가 죽기전에 그린 그림중에도 컨스터블은 폭풍이 올듯한 날씨와 대기의 움직임의 변화를
그림에 담으려는 습작들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올드 세럼> 1829년
<핸들리 성> 1829년
두 작품의 풍경을 보면 폭풍우가 불어 닥칠 것 같습니다.
핸들리성은 다 무너져 내려 폐허에 성의 흔적만 남아 있어요.
늘 그대로의 풍경을 그리고자 노력한 컨스터블도 아내가 떠나고나자
그의 마음에는 어두운 풍경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나 봅니다.
이러한 마음을 표현한 풍경은 터너의 작품에서
확연히 드러납니다.
다음에는 이어서 터너의 작품을 보겠습니다.
수정작업중 박경철님의 블로그에서 컨스터블을 발견!
한 번 읽어보세요. 다양한 그림도 보시구요.^^
http://blog.naver.com/donodonsu?Redirect=Log&logNo=1000108748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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