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제일 나중에 데려다 주세요.
“저희 집에 제일 나중에 내려주시면 안돼요
“가위, 바위, 보해서 이기는 사람을 제일 나중에 내려주세요.
“저, 정말 집에 가기 싫어요. 우리 딴데 가서 놀다가요
저는 대학, 대학원 시절 집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교회에서 청소년 학생들을 몇 년 동안 맡아 지도한 경험이 있습니다. 규모가 작은 교회라 도움을 주는 교사도 없이 약 30명이 되는 학생들을 혼자 가르쳤었는데, 대부분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교회를 다니지 않는 터라 이 아이들을 주말마다 집에서 교회로, 또 교회에서 집으로 실어 나르는 작업이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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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다행히 교회에 낡고 오래된 15인승짜리 봉고 차가 한대 있어서, 매 주말이 되면 토요일 성경공부, 주일 예배시간에 맞추어 30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그야말로 꾸역꾸역 차에 실어 교회로 날라 대는 운전사 노릇까지 제 몫이었는데,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아이들을 죄다 실어 교회로 날라오는데 세 시간,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데려다 주는데 세시간, 합해서 하루 장장 여섯 시간, 이틀에 총열 두 시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아이들은 비좁은 차 내공간속에서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한데 교회에 모임을 마치고, 버스 안에서 지칠 대로 지쳤을 법도 한이 아이들이 매주 거의 애원에 가깝게 제게 졸라 대던 소리가 바로 위의 말들이었습니다. 한마다로 집에 가고 싶지 않으니 다른데 가서 놀다가 느지막하게 데려다 주든지,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이기기라도 할 테니 제일 마지막으로 집에 내려달라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것도 주말마다 마치 무슨 연속극 주제가처럼….
그렇다고 제가 가르치던 아이들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 라든지, 겨울에 난방시설도 없이 추위에 떨어야 한다거나, 밥을 굶는다거나, 아니면 부모들에게 학대를 받는 아이들도 아니었는데, 이 아이들이 집에 가기 싫다고 매달리는 이 애절한 모습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영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눈앞에 생생합니다.
그저 집에 들어가기가 싫은 아이들, 집에 들어가기보다 차라리 답답한 차 속에서 여섯 시간이고
열 시간이고 갇혀 있기를 자청하는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따뜻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품 같은 가정의 의미는 어디로 사라져버린 걸까?
더욱이 슬픈 것은 이런 집 기피증에 걸린 아이들이 바로 우리 주위에 지금 이순간에도 한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나의 자녀들은 어디에 있는지, 내 자녀에게 있어 가정은 무엇인지, 혹시 내 자녀도 ‘집 기피증’에 걸려 있는 건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누구의 책임으로 돌리고 탓을 해야 하는건지, 지금 당장 우리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할부분이 참 많습니다.
이원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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