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제 아이의 학교폭력 사건을 올린 이후로 쑥에 들어오기는 해도 글은 못 올렸는데,
빨간머리 앤님 글 덕에 오래된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 부천에서 서울로 이사오는 바람에 졸업3개월을 남겨놓고 서울로 전학을 와야했지요.
처음에는 호의적이던 아이들이 갑자기 적대적으로 변했습니다.
처음에는 무시,그 다음에는 놀림, 비아냥, 나중에는 폭력으로 까지 변질되었지요.
아는지 모르는지 선생님은 아무 말씀 없으셨고 저는 자존심에 상처받고 아무에게도 내색 않고 꾹꾹 참는
것만이 전부였지요.
졸업때까지 3개월을 어떻게 참고 견뎠는지, 가슴이나 엉덩이등 신체적 놀림은 당연했고
신발주머니에 돌멩이를 넣고 폭력을 행사한 남학생도 있었습니다.
저는 울지도 않고 참을 뿐이었고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제가 왕따를 당하고 있던 것은 담임도 알고 있던 부분이었고 담임이 직접 조장한 부분도 있더군요. 이유는 전학생이면 엄마가 와서 간식도 돌리고, 선생님께 잘봐주십사 봉투도 드려야 하는데
저희 엄마는 전학온 날 인사만 했을 뿐 다시 또 찾아온 적이 없었거든요.
아이들 눈에도 저는 부천에서 이사온 아이라 시골애라고 생각하는데 그런티 전혀 안나고 또 단순히
선생님께서 약간의 조장을 하니 쉽게 딸려 든 것 뿐이더군요.
졸업하고서는 다들 그러더군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니가 잘난체 하거나 밉게 군게 없는데
왜 너를 그렇게 놀리고 때렸는지, 왜 안말렸는지 미안하다고....
졸업식날 담임이었던 자에게 꽃을 드리니 "내가 너한테 미안한게 있다"고 하더군요.
사람 죽여놓고 미안하다 하면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올까요?
저에게는 지옥같은 3개월을 지낸 후였고 제 기억속에 초등6학년때의 친구나 담임선생은 없습니다.
힘든 3개월을 보내고 중학교에 올라간 저는 운 좋게 배치고사 1등을 했고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선생님들의 이쁨을 받고, 선생님을 좋아하는 저는 덤으로 성적까지
올라갔지요. 미술대회면 미술대회, 백일장이면 백일장, 과학경시대회면 과학경시대회 모두 나가 학교를
대표해 상을 많이 받아왔고 제가 모르는 친구나 선배조차 저를 알정도로 학교에서 명물에 속했습니다.
괴로웠던 3개월을 보상받듯 중학시절을 보내고 제가 사는 동네에서 대학진학률이 제일 좋다는 고등학교로
배정을 받았습니다.
고1,2는 우수한 성적으로 평탄하게 지냈고 고3이 되었지요.
그런데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저희집은 전세였고, 집주인 할머니는 아들내외와 다른 집에서 살고 있었지요.
그 집주인 할머니의 둘째 손녀딸이 저와 같은 반이되었습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본 적 없는데, 어느날 그 집 엄마(집주인할머니 며느리)가 찾아왔더군요.
저희 엄마랑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따님이 공부를 그렇게 잘한다면서요? 우리 영희랑 친하게 지냈으면
좋겠네요...하더군요.
저나 엄마는 그냥 하는 소린가 보다 하고 스쳐들었지요.
그런데 며칠뒤 그 아이와 제가 짝이 되었습니다.
가나다순으로 해도, 키로 해도, 성적으로 해도 그 아이와 제가 짝이 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짝이 되었더군요.(당시 저희학교 교육방침은 공부잘하는 애들과 공부 못하는 애들을 분리하는 정책이었습니다.
공부잘하는 애랑 못하는 애가 친구면 떼어놓고, 공부못하는 애들은 사고나 치지말고 공부하는 애들 방해하지 말고 조용히 있다 졸업해라..는 분위기였지요)
같은 반 친구들조차 이상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한달에 한번보는 월중고사를 보는데 그 아이가 제 뒷줄에 앉더군요.
시험시간에는 필기도구로 제 등을 콕콕 찔러대고...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저는 난감해하면서 시험을 계속 봤는데, 시험시간이 끝나고 답안지를 내자 그 친구는 지 시험지를 찢으며
저 때문에 시험을 못봤다며 울고불고 난리더군요.
아니, 내가 왜? 내 뒤에서 등찌르며 시험 방해한 것은 자기면서 왜 나때문에 지가 시험을 못봤다는건지...
이건 전조에 불과했습니다.
그 뒤 무조건 제가 말만하면 화를 내고, 제 책을 숨기고, 가방을 숨기고, 제 어머니께서는 파출부고, 아빠는 알콜중독자며 남동생은 가출했다는 말로 친구들과 제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제 피같은 교과서들을 찢고...너무 기가 막혀서 저는 대응조차 못했습니다.
"제가 도대체 나한테 왜 저러는거지? 나는 지랑 말도 섞은적 없고, 자기랑 친하거나 싸운적도 없는데
왜 사사건건 나를 걸고 넘어지는거지?"
친구들조차 처음에는 그 아이가 이상하다고 하다가 제가 워낙 대응이 없자 그 아이 말을 믿더군요.
학원도 과외도 안받는 제가 오직 수업에만 충실해서 제 교과서가 족보라며 시험 한달전부터 빌려달라고
하던 아이들이 제 교과서를 빼돌리고, 저를 괴롭히는데 동참을 하더군요.
제 친구였던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면 모르는 문제를 제게 물어보느라 저 화장실 갈 시간조차 뺏던 아이들이, 선생님 설명보다 네 설명이 더 쉽다던 아이들이, 네 교과서 빌린 덕분에 점수가 10점이나 더 올라갔다던 아이들이, 저에게
이번 시험문제 뽑아달라던 아이들이 너무나 쉽게 그 아이 말을 믿더군요.
그냥 슬퍼서 대응 안했더니 거짓을 참인줄 알더군요.
더군다나 학교야간자율학습시간에 담임이란 사람이 수시로 불러 저에게 그 아이와 OMR카드를 바꿔주면 되는데 왜 안해서 자기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고, 내가 너하나 졸업 막는거 일도 아니라고 협박을 하더군요.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선생님이란 사람이 학생에게 다른 사람과 답안지를 바꿔주라는 말을 어떻게 상식적으로 합니까?
선생은 교육자고 교육자는 항상 옳은 것만 가르친다고 생각했는데, 컨닝도 안하는 제게 답안지를
바꿔주라니요? 그게 어떻게 교육자가 할 소리인지....저는 이해가 안갔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선생이 학생에게 답안지를 다른 사람과 바꾸라고 했다는 것을 내가 부모님께 이야기 했을 때 어떤 일이 생길까? 분명 부모님은 학교에 와서 항의를 할 것이고 증거도 없는 판국에 나만 이상한 년 될 것은 분명한 일이고, 내가 아무리 모범생이라고 할지라도 내 담임은 고3담임에 부장선생, 다른 선생님들보다 훨씬 파워가 세니 아무리 고1,2담임이 나를 두둔해줘도 그 사람을 못 이길것은 뻔하고,그럼 학생인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서 잘해봐야 아주 힘든 생활을 하며 졸업하거나 그마저도 담임이란 사람때문에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를 협박할 때는 야간자율학습시간이라 지도교사는 그 사람밖에 없고, 녹음기를 준비해 봐야 그 사람이 먼저 옷검사를 하고 자기 이야기를 꺼냈기에 녹음기도 소용없을 것이고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 싸울수도 없고....그렇다고 OMR카드를 바꿔주는 것은 학생으로서 자존심에 상처가 나서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방법이었고, 내가 죽던지 아님 죽기살기로 버티던지 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K대와 Y대가 목표였던 저는 목표를 살아남기와 고등학교 졸업하기로 수정했지요.
그 아이의 교묘한 괴롭힘과 친구들의 묵인, 선생의 협박을 피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성적을 떨어뜨려서 나에게 답안지를 바꿔달라고 할 필요가 없게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성적을 떨어뜨려야 하는데 아는 답을 틀리게 쓸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안했습니다.일부러 야간자율학습시간에 만화방 간다고 친구들에게 소문을 내고
만화방을 갔고 보충수업시간에 딴청을 했습니다.
반에서 2등을 하던 성적이 20등쯤 되었을 때 담임이란 자가 저를 부르더군요.
"너처럼 질긴애 처음봤다.그거 대충 써서 바꿔주고 너는 제대로 체크하면 되는 것을 뭘 못하겠다고
버텨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냐? 내가 그깟 100만원 받아먹은 거 때문에 아주 톡톡히 갚을 치룬다."며
저에게 푸념을 하더군요.
저 처음 알았습니다. 고3 담임정도 되면 100만원을 부모에게 받을 수도 있구나,그런 큰돈을 주면서
선생에게 자기 자식이랑 답안지 바꿔줄 아이를 찾아서 협박하란 부모도 있구나 하고요.
그렇게 힘들게 버티다 보니 2학기 중반이 되어 있었고 반에서 2등이던 제 성적은 22등이 되어있었지요.
어차피 원하던 대학은 꿈도 못꿀 단계였고 제 목표는 오로지 생존과 졸업 뿐이라서 지방대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담임이란 작자...좋아하더군요.끝까지 그 아이가 제가 어디에 원서를 쓰는지 자기보다 좋은대학
쓰면 안된다고 신경썼기 때문입니다.
졸업후 친구 때문에 찾아간 학교에 선생이라고는 그 작자 밖에 없었습니다.어쩔수 없이 가져간 꽃을 주니
"너 대학 어디 다니니? 너 공부 잘했잖아. 다시 시작해봐. 너는 착하니까 잘될꺼야."고 하더군요.
자기도 그렇게 저를 협박하면서 제가 그렇게 아무말 하지 않고 끝까지 참을 줄 몰랐나봅니다.
아니, 졸업까지 한 마당에 자기에게 꽃을 줄 지 몰랐나봅니다.
너는 착하니까 잘될꺼야.....그 말이 자기가 1년 동안 저를 괴롭힌대에 대한 유일한 미안함의 표현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뒤로 완전히 공부를 놓았는데 말입니다.
그 다음해, 그러니까 제가 대학2학년때(지방대 포기하고 서울에 있는 전문대에 갔습니다) 어느날 밤
10시에 전화벨이 울리더군요.
부모님 깨실까봐 얼른 받으니 그.년...이더군요.
자기가 이번에 재수해서 대학 들어갔다며 저에게 너 어디 다녀?하고 묻더군요.
전문대 다닌다고 하니까...
"너 공부 디게 잘했잖아. 나처럼 다시 재수해봐. 하면 되는데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웃습니다.
미친년....사람 죽여놓고 미안하단 말도 없이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하면 죽은 사람이 살아납니까?
그게 사과입니까?
어이가 없어서 그냥 끊었습니다.
저는 정말 죽음보다 힘든 고3을 지냈습니다.
한참 공부해도 모자를 나이에, 왕따에 괴롭힘,헛소문을 퍼트리고 협박을 당하고...
이 모든것을 당하고도 살아남아 있으니 제가 좀 강하긴 강한가 봅니다.
그런데 피해를 당하고서도 참는게 습관이 된 것인지 제 아이가 3살 많은 형에게 3년이나 맞고 돈 뺏기고
하는 것을 알고 보면서도 피하라고, 참으라고만 했습니다.
가해자인 그 아이는 사과 한마디 없고, 그 조부모는 아이들끼리 싸운거 가지고 그런다고 저와 제 아이의
험담을 하고 다닙니다.
우리 집에 들어와서 돈 훔쳐간거, 아이에게 돈 가져와서 아이스크림 사내라고 한거., 엄마가 보는 앞에서도 이유없이 때린거, 집 현관까지 들어와서 때리고 간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사과도 없습니다.
피하라고 참으라고만 한 우리 아이도 불쌍하지만,
그른 것을 그른것이라고 배우지 못한 그 아이도 불쌍합니다.
진심어린 사과를 하면 쪽팔리고 지는게 아니라 서로 치유가 되는 거란것을 모르나 봅니다.
저는 고3담임이었던 사람과 그 아이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제 의식속에 그들은 항상...가.해.자..니까요.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않았으니까요.
자기 편의에 따라 사람을 괴롭히고, 자기 편의에 따라 이용했으니까요.ㅇ
모든 상황의 해석도 자기 편의에 따라 했으니까요.
여러분은 혹시 어떤까요?
우리아이가 가해자, 또는 피해자가 되었을 때,
사과를 하고, 사과를 받아낼 용기가 있으신가요?
귀한 내 아이들에게 바른 것을 가르치실 용기가 있으신가요?
우리는 용기있는 부모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4학년딸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마음이 참 아픕니다
정말 잘 견뎌내셨어요
그맘때 학창시절 친구란 아이들에게 웃게도 하고 울게도 하고 죽고싶게도 만드는
그런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었나 싶어요 저도 친구랑 조금만 틀어져도 학교가 싫고 사는게 싫고 그랬는데
따돌림을 받았더라면 정말 힘드셨을거 같아요
딸아이가 친구들과 좋은관계를 유지하는 걸 보면서 마음에 많은 치유를 받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제 딸아이가 친구얘길할때마다 유독 예민해집니다 혹시나 친구들과 잘 못어울리는 건 아닌가 혼자 밥먹는건 아닌가 체육시간에 외톨이가 되는건 아닌가...매스컴에서 떠드는 왕따때문에 더 예민해지기도 하고 제문제가 아닌 딸아이문제라 더 예민하고 걱정스럽습니다
잘 견뎌내신 맘께 정말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는 좋은일만 있으실거에요 ...^^
학창시절에 친구만큼 좋은 재산도 없는데...현실이 참 안타깝습니다...서로 아끼며 사랑하는것만 해도 아까운 시간에 마음이 아프네요...가해자도 피해자도 방관자도 가엾습니다
품어주지 못한 어른들의 잘못인것만 같아 마음이 더 아픕니다
너무 마음이 아파서 눈물만 주르륵 흐르네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그래도 참고 이겨내셨네요.
저도 한번씩 왕따 문제가 나오면 돌이켜 보는 과거가 있는데요
초등 5학년 무리중 한명이 주가 되었고 우리는 그냥 그친구가 시키는 대로 생각도 없이 그친구를 따돌렸던것 같아요 ...그때 저는 행동으로 옮기진 않았지만 그 친구를 방치하고 있었던것 같아요..
문제가 심각한 상태까지 가진 않았지만 그친구에겐 심각한 문제였겠죠...
그 친구 엄마가 와서 그러지 말라고 해서 그냥 저냥 무마되었는데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이 붉어지고 부끄러워 집니다..
앤님....
저..감동먹었다요.....눈물이...
아직 교육중이라...짧게 달고가요..
글하나로 감동을 주는 님의진심이...마음에 깊이 와닿네요...
그 이쁜 앤님이 몬생겼다고 놀림을 받았다고라?
왕따까지는 아니어도 친구들에게 은근히 배척받은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이게 인간의 본능인가봐.
그나저나 행복한 가정은 아이들에게 최후의 보루라고 하니
사명감으로라도 무뚝뚝한 남편에게 한발 더 다가가야 할 듯.ㅠ
Anna반에 빨강머리앤님과 비슷한 A군이 있었어요.
A군의 엄마는 그 사실을 제대로 몰라서 그냥 남자아이들끼리의 장난인줄 알았구요...
이야기를 듣고 놀라던A군의 엄마는 선생님을 찾아가셨고 그런대로 잘 문제가 풀렸지만
아이의 상처를 생각하면 아직도 맘이 아파요.
차츰 웃음을 찾아가는 A군을 보면 멋지다고 말해줍니다.
몇몇 주도했던 아이들의 엄마들은 '내아이는 그렇지 않은데 친구들때문에,,,'라고 생각하는듯하구요~
내자식이 잘못했을때에 인정하고 제대로 훈육해야한다는 생각보다는
내자식의 방패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더 큰듯합니다.
아직은 2학년이라 어른들의 노력으로 좋아질수 있는데 학년이 올라가면 그것도 힘들다더군요.
우리 아이들 이런 아픔은 없이 자랐으면 하는 바램이에요.
당차고 씩씩하고 귀여운 앤님~
어릴적 아픈이야기 꺼내기 조금 쑥쓰러우셨을텐데
쑥쑥이나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집니다.^^*
아이들, 별난 걸로도 다 친구 놀려대지요. 저 학교다닐 때 너무 말랐다고 놀림받던 친구가 있었는데, 체질적으로 가늘었던 그 친구 대학 때부터 날리더군요 ^^ 별 것 아닌 이유로도 별 거 아닌 것처럼 큰 상처를 주는 말들이 오고가고, 그게 개개 아이들 생각 속에서는 부끄럽다가도 집단이 주는 익명성 속에서는 더 과감하고 못돼게 커질 수 있다는 게 안타깝네요.
큰 애 반에도 소위 전따인 아이가 있는데, 이혼가정에서 엄마품을 모르고 거친 할머니 손에 자란 아이에요. 친구되기가 힘들다면 준비물 챙기는 거, 공부라도 네가 도와줘라 늘 얘기하는데, 욕 듣고 구박받는데 익숙해서 도와주겠다는 것도 무서워한대요 ㅠ 6학년 쯤 되니 별별 소리가 다 들리는데, 못된 짓을 주도하는 아이들 엄마들은 전혀 모르는 거 같다는 것이 더 큰 문제더군요.
어린 A는 더 예뻤을 거 같은데, 거울보고 주름을 찾았다니요... 지금 앤님 미모보다 훨씬 못한 저는 그 맘때 예쁘다는 소리에 도대체 어디가 예쁘다는 거야? 하며 거울보며 의아했던 기억이... ㅋㅋ 웃으시라고 뻘소리 남겨요. 새로운 환경은 항상 약간의 두려움이 있을 텐데, 잘 적응해가는 아이들에게도 화이팅 전합니다^^
앤님에게 ... 그런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언제나 당차고 멋진 분이시라는 이미지가 고착되어있네요.. 저에게는요 ! ^^
앤님의 말씀 200배 공감합니다.
그럼요.. 따뜻한 가정이 있었기에.. 앤님도 지친 마음을 쉴 수 있었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쩜~~~ 명답이십니다. ^^
오늘 아이들과 남편 집에오면 따뜻한 엄마와 아내의 공기로 맞이해야겠어요~~ ^^
앤님~~ 저도 함께 A양을 꼭 안아주고갑니다... ^^
제가 보는 빨간머리앤님은 야리야리해서 천상 여성스러운모습인데 그모습이 어릴적모습이었나봐요
극악스런애들이 앤님에게서 그런모습을 봤나봐요...못된것들같으니..
아이가 고통스러울때는 엄마맘이 이루말할수가 없어요..저도 당장에 쫒아가서 요절을 내고 싶더이다.
지가 맘만 먹으면 욕을 아주 걸쭉하게 잘하거든요...
딸애 크면서 보니까 애들끼리만 문제가 생기는거 아닙디다...
애들간에 또 아이와 선생님사이에 아이와 다름엄마들간에....하여간 딸은 무난하게 그냥 넘어가는형이 아녀요.. 뭔가가 다른애들보다 돌출되나봅니다
유치원 옮겼을떄부터 시작하야 지금까지 갖가지 일을 겪었어요...애들끼리는 그래도 해볼만했는데 선생님이 찍을때는 애도 울었고 .. 요즘엔 제니가 다른 엄마들한테서까지 시달려요...
요즘엄마들 지대로 극성이더군요...
학업만 우수한 아이나 문제많은아이나 딱봐서 애 인성이 별로인애들은 엄마가 같은행동을 해요..
이건 담임샘님 말씀입니다...어떤애는 인상까지 똑같데요..^^
인성이 별로인 우수한애들은 안부딪히면 일이없는데 같이 하는작업이 문젭니다..부모는 혹시나 울애 떄문에 자기애가 손해보지 않을까 하니 그런엄마들한테 엄청 시달리구요..
다들 꺼리는 애경우는 그속에다 제니를 짱박아 노니까 애가 갸들 엄마와 상대해야해서 별일들이 다 생겨요.
이상한점하나는 저한테는 절대 연락을 안하고 애한테만 전화해서 난리를 쳐요..
이런애들 공통점은 엄마들이 진짜 격하게 사소한거부터 다 관여한다는점이고..정작 애들은 개념없는애들이라는거.. 제니말은 생각이 없어서 그렇지 알고 보면 착하다고..근데 엄마들은 이상하대요.. 그니까 이런엄마 자식도 아직은 가능성이 잇는거죠 초등학교시기는..
정말 a못할이야기 참 많습니다..
저는 전교생중 젤 키가 작았는데 워낙 어려서부터 조숙해서 애들이 저를 어려워했어요. 감히 건들지 못했음돠
딸은 저를 당췌 닮지 않아 또래보다 더 늦되서 만만히 보여서 그런지 학교를 정말 야단스럽게 다니네요..
애는 어려서부터 식구들이 보기에 걱정스러워...앞으로 험난할것을 어느정도 예상을 했어요
그래서 이런 대응 훈련을 5~6살떄 일찍 시작했어요..
울애는 스스로 깨닫는 아이가 아닌지라 훈련을 시켜야 했음돠...
그게 여적지는 지대로 먹히고 있는데 여전히 훈련중임돠..
하이고 일하다 썼더니 뻘소리만 늘어놨네요..흐미 ..낯뜨거워서..
앤님은 맘이 따뜻한사람이어요..첫눈에 알아봤는디...
앤님글이 내가 좀더 따뜻하게 애들 않아줘야 겠구나 하는맘을 불러일으켜요..다른집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좋은글 감사해요..
그때의 기억이 많이 아프셨다는데 .. 느껴져서.. 많이 속상하네요..
지금의 앤님의 글들을 보면..
그런 아픈 기억이 있었을거란.. 생각이 안드는데..
언제나 긍정적이시면서도 확실한 모습.. 글에서 느껴지거든요..
우리아이들한테는 그런 아픔이 안왔으면.. 하고 매일 바란답니다..
그래도 잘 이겨내신 앤님.. 4학년의 기억 툴툴 털어내시고.. 이미 털어내셨겠죠? 행복하세요~~~ ^^
언제나 자기 의견을 씩씩하게 말하시는 앤님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힘든 시기도 있었군요.
많이 아팠을 이 이야기를 꺼내신 이유가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내 아이가 학교갔다오면 가만히 꼭 안아줘야겠습니다.
혹시 지금 마음이 아픈 시기를 겪고 계신 누군가가 있다면, 힘내시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 다독여봅니다
읽다가 눈물이 났어요..
앤님에게도 그런 아픈 기억이..
예전에 뵜을 때 밝고 당당한 모습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어서 그런 일을 겪었으리라곤 생각도 못했네요.
저도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니까 자주 저 초등시절이 생각나더라구요.
전 전학가기 싫어서 초등시절 내내 할머니랑 살았어요. 주말, 방학때만 부모님댁에서 지내구요.
왕따의 기억은 아니지만 초등 3,4학년때 같은 반 아이들이 짖꿎은 놀림을 해서 속상했던 일이 많았어요.
그런데 집에 와도 그런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요..
그렇게 마음 속에 담아 두기만 하다 보니,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도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버렸어요.
중학교 사춘기 시절, 내가 하는 말때문에 친구들이 상처받지 않을까, 기분 나빠 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때문에 친구들 얘기 듣기만 할 때가 많았었는데, 그때 정말 힘들었어요..
초등시절 엄마에게 투정부려 본 기억이 없고, 엄마와의 추억이 별로 없었던 것이 중학교 때 엄마와의 관계에도 영향을 준 것 같더라구요. 그렇다고 엄마랑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고, 속마음을 털어 놓는 사이가 못되었다는 거죠.
그때 나의 그런 걱정을 들어주고 '네가 화가 났을 땐 화가 났다고 말할 수 있고, 짜증났을 때 짜등난다고 말해도 괜찮아~, 사람은 누구나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고 표현할 수 있어...'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살아오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초등시절 엄마와의 추억을 많이 만들어줘야, 아이들이 사춘기시절 힘들 때 엄마에게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겠구나...우리 아이들이 이런저런 고민을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엄마가 되자...그런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앤님의 말씀처럼 어린시절 상처받은 나를 안아줘야겠어요..^^
저도 어릴 때 전학을 자주했어요.
시골에서 살다가 도시로 갔을 때, 정말 외롭고 많이 힘들었지요.
저는 종교는 다르지만 기독교에서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을 주신다.'라고 하더군요.
예전에 누구한테 들은 것 같아요.
사람은 사랑으로도 크지만 시련속에서도 자라는 것 같아요.
글 잘 읽고 갑니다.
갑자기 정말 빨강머리 앤이 떠오르네요.
비록 고아였지만 자존심 강하고 꿈을 간직한 소녀요..
역경과 고난(거창한 말인가요?)이 사람을 힘들게도 하지만 때로는 아름다운 빛을 내는 강한 쇠로 달굼질하기도 하네요. 똑똑하고 야무지고 또 나이보다 깊은 생각을 할 줄 아는 오늘의 앤님을 만든 것은 비단 그 사건 하나뿐은 아니겠지만 그 일을 통해 앤님이 다른 사람을 좀 더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데 일조했겠지요...
저도 타임머신 타고 돌아가 그 시절의 A양을 보듬어 안아주고 싶고...또 앤님처럼 B양도 안아주고 싶네요.
그리고 예전의 저도 찾아가 그냥 꼭 안아주고 싶습니다. 등을 토닥여주며...다 잘 될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