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논술교재가 이번엔 오헨리단편선였어요. 결말이 늘 반전으로 맺더라구요.
거기에 젖었는지 어쨌는지
그리움을 위하여란 단편을 읽는 내내 전 반전 결말을 예상했었나봐여^^
사촌동생의 새드앤딩?
다행히 사량도에서 사랑을 찾았다니 진정 사람은 노년운이 중요하구나 새삼 느꼈어요 ㅋ
이제 나이가 드는 걸까요? 착하게 사람들이 복 받는 세상이 왔음 좋겠단 생각을 맣이해요. 개천에서 용이 날수 없는 세상이잖아요. 돈이 돈을 버는 세상. 부가 있어야만 고등고육을 받을수 있는 그래서 교양있다는 사람들이 부와 명예와 권력을 모두 손에 쥐고 서민을 위하는 척하는 .... 제가 너무 멀리 가네요. 요지는 사촌동생이 마지막을 아름답게 보낼 수 있어 너무 감사한다는 거였는데.. 그 분은 참 잘 사신거네요. 누군가에게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는 것.. 오늘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려 봅니다.
제가 첫편에서 제일 맘에 드는 글귀는요
제목 " 그림움을 위하여 " 7자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리운 사람이었으면 좋겟다는 생각을 해봤구요
책속 "나" 의 마음 하나하나 표현이 어찌나 맛갈스러운지
한편의 일인극을 보는 느낌이었어요
연극은 좋아하는데 (몇편 보질 못햇지만 ) 1인극으로 만들면 멋지겟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마지막에 식구들이 사량도에 가자고 햇을때 그리움으로 남겨둔 것이
아직 제가 다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이지만
사촌동생에 대한 "나" 의 마음속 표현이 너무 솔직해서 약간은 미운듯하면서 부러웠네요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재어가며 속끓이는 표현들도 제 모습을 보는것 같아
웃음도 나구요
글쓰는거 참 어려워요 -.-
박완서님에 대해서 잘 몰라서 네이버 검색도 해봤구요
담주 도서관 가면 나목부텀 빌려 보려구 합니다
처음 글 쓰시던 나이가 제 나이쯤이니까 지금 읽으면 더 이해가 잘 되지 않을까...싶어요 ㅎㅎ
ps : 다들 글을 넘 잘 쓰셔요 (아...부럽당...많이 배우고 갑니다~~~~~~~~)
고백
이 책을 반쯤 지난 여름 서점에서 읽었는데
그리고 이번에 책을 사서 첫 회를 띠엄띠엄 읽었는데 완전 헷갈렸음.
첫회 제목이 친절한 복희씨인줄.... 완존 챙피함.
이제 그냥 아는 척 안 하고 욜띠미 읽겠슴.
따라서 1번 제목 문제는 잘 못된 것. 책사랑님 미안!!
1.책제목에 대하여,,
작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제가 '친절한 복희씨'라는 제목에서 느끼는 것은 살아있는자의 인생에 대한예의로 와닿았어요.
항상 생철갑을 끼고 산다는건
사는게 사는게 아니거쟎아요.
마지막장면에 검은강물에 생철갑을 던져버렸다는 것은 사는게 사는게 아닌것처럼 살던 복희가
사는것처럼 산다는 의미로 와닿았어요.
ㅋㅋ전 책읽고 내맘대로 생각하는 버릇이 있어요..거의다 작가의의도와는 다르게 해석한다는건 작가의
의도를 잘 못읽었다는뜻도 되것지요.
2.주인공과 복희 비교
'그리움을 위하여'의 주인공은 본인의 마음이 지시하는대로 행동하지만
(수다가 싫어 옥탑방의 동생과 함께살기를 권유하지않은것 등등)
복희는 자신의 마음은 생철갑에 꽁꽁 봉한채 현실만믈 살아간다.
3.박완서님의 문체,,
아이들육아를 시작하면서부터 창작을 손에서 놓은것 같아요.
결혼이후 생활이라는 이유로 실용서적인 책들을 읽기 시작한거지요..딸아이 15세이니 15여년을,,
이책은 행간을 놓칠수가 없더라구요..
앤님말씀처럼 홍박사님 어투와 박완서님글투가 꼭 닮았다는것도 알았어요.
현세대도 공감할 수있게 재치,유머,단문 등등등
이첵을 통해서본 작가의 글투는 조금 위장되어진 사람의 본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데
듣는 사람 기분 나쁘지않게 한다는 것이었어요.
본마음을 숨기고 했던 행동,말들의 속살이 다 드러나면 창피해서 미칠것 같은데
이책의 글들은 위장된 마음을 까발리면서도 유회시켜주더라구요.'그래 그런맘이 본심이지!'하는정도로요.
활용해보고 싶은 문장은,,글귀보고 제가 박사님 찌찌뽕했어요.
제가 맘에 드는 문장 에 필이꽂혀 책갈피했거든요ㅋㅋ
~뒷표지의 '나를 위로해준 것들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글을 쓰는 의미인것 같아서요.
~p18 '남편으로부터 그런 임종의 말을 들은 여편네 있으면 어디 나와보라는 투였다'
-자신의 삶에대한 당당함이 좋아서요.
~p19'평소에도 동생은 우리 집에 들어서자마자 거의 한시간은 수다를 떨어야 일을 시작했다'
-제가 형님댁에 가면 그러거든요.저에겐 멘토이신 형님,아주버님을 뵈면 좋아서요.
형님은 말수가 많지않으신데 지혜로우시고 ,덜렁대지않으시고, 해야할일 밤새워서라도 완수하시고,
얌전하시고등등.저는 정반대 천방지축 막내며느리 ㅋㅋ며느리둘인데도 늘 막내며느리를 자처하지요.
p31'여자끼리 통하려면 가문보다는 정서적인호소가 나을 것 같았다'-현실적인 말이어서
p39'한 얘기 또해도 싫증이 안 나. 우린 서로 얼마나 열심히 들어준다고.듣고 또 들어도 재미나니까.그러다가 누가 먼저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들지.'-어투가 좋아서,늙그막에 남표니랑 그러고 살려구요 ㅋㅋ
p39'그건 상전의식이지 동기애는 아니다'-어쩜 요렇게 사람맘을 꿰뚫고 계시지하면서 놀랬어요.
자가의 문장을 옮겨적으면서 참 행복하네요~~이런 문구들을 만나게해준 홍박사님께 감솨요.
전 이번 계기 아니었으면 이책 평생 안 읽었을 지도 몰라요.
퇴근 직전에 책이 도착했어요
집에 와서도 할 일이 태산~
평상시와 똑같이 마무리하고 다소 떨리는 맘으로 급히 책을 집어들었어요
박완서님의 환한 미소를 시작으로,
그리 무겁지 않는 문체,대화체 같은 흐름에 한 단락은 쉽게 읽을 수 읽더군요
읽기까지는 좋았는데...아~~ 복병은.... 너무나 오랫만에 생각을 글로 ...
'그리움을 위하여'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왜 이말이 가슴에 와 닿는 걸까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추억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많은 힘은 추억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치매에 걸려서도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만을 되풀이하는 것도 다 추억에서 나오는 것이니까요!!
현재를 잘 살아야만 나중의 미래에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치매에 걸리신 분들을 보면 과거의 성격이나 삶이 어떠했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거든요
문학소녀도 아니였던 사람이 글로 표현해 보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네요
이런 장을 마련해 준 홍박샘께 감사해요
매일 해야 할 숙제가 생겨 부담도 되지만 내 자신을 위해 할 일이 생겨 행복하기도 합니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컴자판기에 손을 놓고 생각하는 시간이였어요
애들보고는 문제 잘 읽고 풀라고 하면서 문제보다 글쓰는데에 바빴어요.
친절한 복희씨는 이 소설 안에 있는 단편 중 거의 끝부분에 나오는 소설주인공 이름이에요.
벌레한마리 못잡는 여리디 여린 여인네로 둔갑하여, 늙으막에 치매 걸린 돈많은 남편~... 에 , 이렇게 다 쓰면
안되겠네요. 아무튼, 읽다보면 이 여인이 왜 친절한 지 알게되죠... 글세, 복희씨는 무슨 의미일까요?
그저, 금자, 영순이처럼 예전 여자이름 중 흔하디 흔한 이름의 주인공 아닐까요..
질문 있습니다..
제가 이해를 잘 못해서...
한권의 책을 다 읽고 미션수행을 하는건가요? 아님 단편 하나를 읽고인지...
1번 미션을 보면 전체를 다 읽어야 할듯하고..
첫번째 단편의 제목은 " 그리움을 위하여 " 이고...음...
복희는....첫번째 단편에 나오는 사람이 아닌듯하고...
먼저 하신분들은 첫 단편에 관한 이야기들이신듯하고...
초보자를 위한 친절한 설명 부탁드려용~~~^ ^ ;;;
컴이 고장나서 이틀동안 일을 못했더니...영 쑥질도 못하고.,.
너무 답답한 쑥 금단현상이 왔었어요 ㅜ.ㅜ
책 감상문은 못쓰고 일단 제 상황만 보고합니다
다시 자세히 올려볼께요~
다들 즐건 주말 보네세요~
날씨가 많이 추웠는지 슬슬 몸살증세 나타납니다
오늘 쌍화X먹고 땀 한번 빼려구요~
여유있게 복희씨보면서 주말 보내고 싶었는데......
생각지도 않던 일이 터져버리니 정신못차리는 작.기네요 ;;;
맘쓰이는일 있으면 다른일이 손에 안잡히는 스탈이라.. 후딱 쓰고
주말엔 꼭 복희씨 오픈하렵니다.
박사님
생각거리주셔서 감사합니다..
과연 책읽고 세질문들 하나라도 제대로 쓸지는 모르겠지만...
어서어서 편안히 책읽고 싶습니다. ^^
쑥쑥 북클럽하면서 생긴버릇,,
미션올라오면 미션내주신 감사댓글 달고 그때부터 책읽기 시작 ~~
앗,어려운 영어책?이야 미션줄기잡고 읽는다하지만 한글책인데도 이 버릇대로 ㅋㅋ
11기에서 고쳐지겠지요.
홍박사님께서 어떻게 리드해주실까 많이 설레였어요.
올려주신 이야기거리를 보니 더 설레여요~~
함께 이야기 나눌 생각을 하니 더더 설레여요~~~~
얼렁읽고 이야기나누러 올께욤 ㅎㅎㅎ
친절한 복희씨는 소위 말하는 우월감이나 자만심이 없네요.
반면 주인공은 스스로 잘 살고 있으며 본인이 대접받을 만한 그릇을 가졌기에 베풀 수도 있다는 오만한 자존심과 우월감을 가지고 있구요.
그렇기에 어쩌면 주인공이 보기에 어리숙해 보이고 천박해 보이는 그녀의 태도나 사상들이 사실은 세상을 더 현명하게 살도록 해주는 것임을 인정하기 어려웠으리라고 봅니다.
전에 읽은 kite runner에서도 보면 주인공은 자신의 몸종을 형제나 진배없다고 여기며 무척이나 아낍니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순간에서는 자신이 주인임을 여지없이 보여주곤 하더라구요. 결국 순수한 마음에서의 베품과 사랑이 아니었던 거지요.
친절한 복희씨는 새로이 만난 영감의 죽은 전부인 제사를 지내 줄 정도로 친절합니다. 아무것도 고깝게 듣거나 돌려 생각지 않고 불평하지도 않지요.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합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 성격은 이 두 타입의 할머니들 중에 화자쪽에 가깝지 않나 생각되네요.
그닥 순수하지도 않고 마음이 넉넉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제 생각에 저보다 못하다는 인간이 이상하게 맘편히 해죽대며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배알이 꼬이는 느낌도 받습니다. 그리고선 그런 내 자신이 못내 못마땅해 스스로에게 변명의 기회를 후하게 줍니다.
그렇다면 화자인 할머니가 진정 부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겉으로 보여지는 물질적인 부분이나 내세울 만한 거리등으로 근근히 자신의 과시욕을 해결하였던 할머니가 이제사 속내를 보이며 부러워 하는 것은...
그녀의 속편한 행동들과 만족할 줄 아는 데에서 오는 기쁨. 진정으로 반겨주는 사람들을 가졌다는 것.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다는 것등이 아닐까요?
박완서님의 글이 사랑받는 이유는 편하면서도 적당히 생각하게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행간을 멈추어야 할 정도로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지만 훓어 내려가듯 읽을 수도 없는..
40이 넘어서 글쓰기를 시작할 수도 책을 낼 수도 있구나!란 사실에 저에게 도전의식을 심어준 분이시기도 한데 나중에 이 분이 서울대 국문과를 다녔었고 당시에는 꽤 엘리트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다시 절망을 주기도 한 분이십니다. ㅋㅋ
저는 주인공이 할머니인 이야기들에 별 흥미가 없습니다.
화자가 겪은 시대의 아픔도 모르고, 평생 척박한 삶을 살다가 노년에 이르러서는 외딴섬 한 어부에게 재가를 간 사촌동생의 인생도 공감되지 않았습니다.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럴 것 없이 살았음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수필 끝부분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읽으며 새삼 작가와 나의 공통점을 찾은 기쁨에,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그리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끄러움에 다시금 처음부터 읽기 시작합니다.
'나'는 지질이도 가난하고 어려운 '동생'에게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고,
'동생'은 사실 음식하나도 제대로 차려내올 줄 모르는 '나'에게 큰 걱정덜어주는 성실한 손이 되어주며
위태위태하지만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줍니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설사 피붙이에 대한 배려와 내가 가진 기본적 소양이 바탕이 되어있다고 하더라도
'동생'에게 갖는 눈빛은 연민과 동정의 그것이며 동생이 들려주는 수다는 귀에 윙윙거리는 귀찮은 일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한여름 쥐어짜면 짤수록 나오는 땀의 끕끕함에 ,옥탑방 삶의 무게에,결국 동생은 사량도라는 외딴섬으로 피신을 가게 되죠.
만약 '나'가 '동생'의 수다쯤은 좀 참아주고, 관계의 원근을 따지지 않고 품어줬더라면
외딴섬 70의 어부에게 동생을 잃는 상실감은 없었겠지요.
그런 동생이 떠난뒤 작가는 평생 자기 뒷치닥꺼리나 해 주었던 그 동생을 잃었다는 상실감과 질투심에 한동안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막막해합니다.
명절 무렵 다시 상경한 동생의 밤샘수다를 들으며 동생의 행복한 모습에 서운하고 모질던 감정은 풀려버리게 되나, 영영 동생을 곁에 붙잡아 두지는 못하겠다라는 현실에 대한 인정을 하게됩니다.
그리고선, 그 막막함, 상실감, 질투심이 오묘하게 섞인 그리움을 갖게 됩니다.
마지막 작가가 기다리는
동생이 부쳐올 '분홍빛 도미'의 결말은 동생이 가질 분홍빛 행복이라는 창창한 희망이라기보단,
동생에게 머금은 은은한 '분홍빛 그리움'입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보호막이 그 빛을 잃게된다면,
나도 작가처럼 당황하고 상실감에 분노하며 가지지 못한 것에 질투하겠지요.
그러나, 그 구멍에 그리움을 차곡히 채워보는 건, 지극히 겪지않은 것에 대한 감상적 느낌이겠으나,
꽤 괜찮은 위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 봅니다.
박완서님이 지닌, 알알히 곧고 정교한 수다의 필체는
읽는 이의 마음을 어루어만져주네요.
'그리움을 위하여' 에 그려진 그리움을 뼛속까지 이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나,
앞으로 계속되는 작가의 노년의 삶이 묻어난 짤막한 글들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갖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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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덩그라니 남은 삶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친정엄마가 '과부'가 되신지 채 일년이 안됩니다. 갑작스레 건강하시던 양반이 저녁무렵 심장마비로
서울에 있는 자식과는 인사도 못한채 떠나셨습니다.
아빠를 보내면서,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냥 편안히 주무시고 계신 것처럼 느껴졌지요.
저의 직장생활로 큰 아이를 할어버지가 거의 키워주셨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활달한 친정엄마는 밖에서 친구들과의 생활로 집을 많이 비우셨고, 늙으막에 손주를 보신 아빠가 너무나 예뻐하여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정도로 유명했습니다. 그러기에, 지호는 벽에 머리를 짖이기며 그 슬픔을 이겨내기 힘들어했습니다. 그것으로, 아빠를 그리워하고 애닲아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그 힘든 시간이 지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그 슬픔은 온연히 혼자남은 엄마의 몫이더이다.
전, 아이들과의 일상으로 빠르게 복귀했고, 가끔 하늘을 보며 아빠를 그리며 힘든 시간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혼자 아빠가 떠난 그 집에 남은 엄마의 모습은 생각보다 처참했습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가슴통증, 또 아빠처럼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될까하는 두려움, 당신이 아프면 자식들을 얼마나 힘들게할까..라는 걱정.
큰 결심을 하고 아픈 가슴으로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니, 일년전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위가 생살에 생채기나듯 긁혀 피가 사방에 맺혀있더이다.
대놓고 힘듦을 자식에게 표현하지도 못하고 혼자 오랜시간 밤낮을 힘들어하셨던 게지요.
매일매일 전화를 드리지만, 애써 만든 밝은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넘실오는 눈물섞인 엄마의 목소리와 섞이면서 더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어제 저녁 통화에서,"왜 사는 지도 모르겠고, 왜 죽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라는 그렁그렁한 말씀을 듣고도 사실, 전 그 외로움과 허망함의 깊이를 제대로 헤아리기 힘듭니다.
혼자 덩그라니 남은 모습....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대상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거리에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망자에 대한 그리움과 허전함이라면 무엇으로 위로를 해야하는지.. 전,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시간이 약이라더니, 작년 5월 아빠가 떠나신 그 때보다는 조금은 안정을 되찾으신것 같기도 합니다.
이제, 저도 불혹의 나이를 넘기니, 그 외로움, 허전함, 그리움에 대한 단어가 갖는 의미도 어렴풋이 알 것도 같습니다...
허나 준비한다고 준비되어지는 일도 아니니....또 피한다고 피해지는 일도 역시 아니니...
박완서 선생님의 글은 유난히도 편안합니다. 그 분의 문체, style이라 해야겠죠.
분명 문어체이나 그냥 물 넘기듯 단어가, 문장이 목구녕을 타고 살살 넘어갑니다.
젊고 똑똑한 작가들의 할퀴는 듯한, 읽다보면 때로 소화가 안되는 그런 문단이 없어요.
그렇다고 우리 같은 범인의 혀로 쏟아내는 수다가 아니라
요샛말로 쌩얼처럼 보이도록 정교하게 다듬고 손 본 고급언어이니
그 분은 정말 언어로 우리의 마음을 가지고 노니는 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작가의 언어를 흉내내고파 몇 문장 떼엇 적어봅니다.
-더 이상 퇴락할 여지도 없을 정도로 누추한 전셋방
-시집 쪽이 번족한데 이젠 대가 갈려 젊은이들 세상이 되니까 서럽게 된 노인도 많고....
-우리 집에 와 있으라는 소리를 꼴깍 삼키고 만 것은
-갑자기 근해의 파도 속에서 비너스가 요상하고 변덕스러운 화냥기를 바람에 실려보내고 있는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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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읽으면서 끊임없이 내 엄마와 엄마의 사촌 생각이 났습니다.
80여 년 간 사촌인 엄마의 언니는 큰 외할아버님 첩의 딸입니다.
집안에서 같이 자랐으나 그녀는 서자인 관계로 집안 내에서 냉대를 받았답니다.
우리 엄마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의례 그리 살아야하는 것으로 서로 묵인하고 지냈다지요.
한국동란에 남하해 다시 만나고도 그런 관계는 불만없이 진행됐대요.
결혼을 하였는데 그니는 당시에는 천히 여기는 여관업 하는 집으로 시집을 가고
우리 엄마는 박봉의 교사를 만납니다.
게다가 아버지 형제의 만행에 가까운 도움 요청에 늘 사는 게 곤궁했어요.
엄마의 사촌은 맹하기로 유명해 남편과 자식의 헌신적 봉사를 받았고
당찬 페미니스트인 엄마는 자기가 삶을 개척하는 여전사가 됩니다.
어느날 우리 엄마는 그 착한 사촌언니에게 모욕을 당합니다.
집안 모임에서 우리 엄마가 사촌에게 물을 가져오라고 했다가
"야 이ㄴ아, 내가 아직도 네 종이냐? 어려서부터 한이었다!
할머니들도 나는 한번도 업어주지 않았지. 집안에서 너만 딸이었잖냐!"
그 뒤로 엄마는 몹시 뉘우쳤답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었구나.
그렇지만 엄마와 그 양반은 둘도 없는 피붙이입니다.
그 사촌은 지금 혼자 되셨고 치매입니다. 그런데 정말 희한해요.
우리 엄마 생일에는 요양원에서 전화를 합니다. "희현아, 오늘 네 생일이지?"
유일한 피붙이인 이복 오빠와 유일한 사촌 우리 엄마 생일을 기억합니다.
그녀에게 전화를 받은 날은 우리 엄마 하루종일 심란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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