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도 하기 전, 2월에 대기발령 파트타임으로 먼저 출근을 하게 되었어요.
소아중환자실.... 가장 예민하고, 가장 세심하게 일해야 하는 곳이죠.
주로 심장수술을 한 아가들과 중한 병을 가진 아가들이다보니 성인 환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초긴장 상태로 일해야 하는데 하필 처음 일하러 간 곳이 그곳이었던 거죠.
선배 간호사들은 어마무시 무서었어요. 조그만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곳이니 그럴 수 밖에요.
거기에, 그 삭막한 곳에, 4살짜리 너무도 귀여운 꼬마 여자 아이가 있었답니다. 속눈썹은 어찌 그리 긴지, 쌍꺼풀은 또 어찌 그리 예쁜지, 피부는 왜 그렇게 하얀지...
아이는 위장 계통에 문제가 있었는데 수술을 여러차례 하였음에도 계속해서 식도와 기도에 구멍이 생기고 낫지를 않았습니다. 당연히 먹을 수가 없지요. 기도로 음식물이 들어가면 큰일이니까요.
위를 잘라내고 장을 끌어 올리고,, 실패하여 다시 장을 잘라내고 더 끌어올리고...
마침내 더 이상 식도와 기도가 연결되지 않아 다행이다 싶을 때쯤 거의 식도부터 항문이 일자로 세워진 셈이라는 말을 들었지요. 그 말은 곧, 무언가를 먹으면 저장하여 분해하고 소화하고 할 새 없이 바로 항문으로 향한다는 ... 먹이기가 두려울만큼 설사를 해댔어요.
아이는 입에 튜브를 꼽아 산소를 마시고 있었기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죠. 이 아이가 가장 좋아했던 장난감은 특이하게도 수첩과 볼펜이었어요. 기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수첩을 손에 들고 뭔가를 씁니다.
4살이니 당연히 글씨를 알 리도 없고,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도 없었지만 꼬불꼬불 그려대길 좋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간호사 선배들은 "오~ 우리 유희(가명) 또 공부하는구나~! 넌 어쩜 이렇게 공부를 좋아하니?" 하고 신기해 했어요. 그러면 신이 나서 더 뭔가를 그려댔죠.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어쩌면 간호사나 의사들을 보고 흉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4살.. 어린이집보다 병원에서 지내온 날이 많은 아이, 보호자가 들어올 수 없는 중환자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아이, 이 아이가 가장 많이 본 건 의료진들이었을테고, 의료진들이 자기 앞에서 주로 하는 것은 뭔가를 쓰는 것 아니었을까....
제발,,, 설사하지 말고 흡수가 되어라,,,,, 간절히 바랬고
한번에 정말 소량씩 먹는 것이 가능해졌을 때, (그래서 하루에 식사를 무척 자주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어요. 불편하지만 살 수는 이겠구나. 이제 됐다!!!
그렇게 아이는 병실로 올라갔고 얼마 뒤 퇴원을 했다고 하더군요.
죽을 줄 알았는데, 정말 고생만 하다가 갈 줄 알았는데 기적같이 그 험한 수술들을 이겨내고 살게 되어 뿌듯했습니다. 비록 신규 간호사여서 멋지게 케어해주지는 못했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한참 뒤 그 예쁜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 역시 무리였구나. 그렇게 짧은 장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었던 거구나... 허무했어요.
그러나 아이가 그렇게 된 건 병 때문이 아니라는 거에요.
교통사고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더,,,,,,
더 허무했어요. 이게 뭐지? 죽을 힘을 다 해 살아났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뜻밖의 이유로...
드라마도 그렇잖아요. 예상치 못한 결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결말로 끝이 나면 그 여운이 오래 남지요. 이 아이의 죽음이 저에겐 그랬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어떤 부분을 간절히 바라고 매달려 이루어도 뒷통수를 맞을 수 있다는 걸...
아이를 키우면서 안달복달하는 부모들을 보면 그래요.
실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사고가 터지고, 집중하지 않았던 곳에서 공격이 들어오는 게 인생이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내린 결론은, 함께 할 때 후회없이 잘 하자, 언제 죽어도 미안하지 않게, 물론 하나도 미안한 일이 없지는 않겠지만은 그래도 발등찍을 만큼 미안하지는 않게, 그렇게 키우자.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지만,
함께 하는 동안 최선을 다 해 사랑하고, 그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행복할 수 있다면
그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유희는 그렇게 갔지만 어쩌면 퇴원하고 가족과 함께 한 그 시간이 더없이 소중하고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짧았지만 후회없이 행복했다면 그 아이의 존재는 의미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요즘 집안에 안 좋은 소식이 있어요.
재취업을 위해 단순 엑스레이를 찍었던 큰시누가 암 진단을 받았어요.
놀랄 새도 없이 검사하는 족족 충격에 충격.. 폐암 말기에 간, 비장, 림프절, 척추, 골반, 그리고 뇌까지...
저는 사실 큰시누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그 분 때문에 힘이 들 때가 좀 있었죠.
그래도 다행이라고 여기는 것은 돌아가시더라도 미안할 행동을 제가 하지 않았다는 것. 참기를 잘했다는 것. 도와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갚을 날이 올 줄 알았는데 받기만 하고 갚지도 못하게 되어서 미안하다고 펑펑 우시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언제 삶이 나를 배신할 지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러니 오늘 하루도 후회없이, 미안한 일 없이, 그것이 자식에게든, 남편에게든, 친구에게든... 그렇게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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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