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쯤 철이 들까요?
주위에서 염려하는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나이가 올까요?
저는 어른들의 염려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고 나를 자극하는 말만 기억해요.
그 말만 콕 박혀서 빠지지를 않아요.
일부러 그러려고 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그렇게 되어요.
왜 그럴까요?
특히 뭔가 해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떤 말이 작용하여 꺾였을 때요.
곧이곧대로 들리는 말은 저를 공격하는 말처럼 들려요.
철없던 시절 어른들은 분명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을 텐데,
딱 이 말만 기억나요.
승지가 다섯 살이 되기 전쯤이었을 거예요.
가게 고물TV에서 세서미스트리트 영어동영상이 나왔는데
승지는 이것만 틀어놓으면 뚫어져라 보며 웃었어요.
그런 모습을 몇 번 봤다던 손님이 아이가 영어에 재능이 있으니
일부러 가져온 스토리북과 카세트테이프를 주면서 많이 들려주라고,
일주일후에 가지러 오겠다고했어요.
그날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몰라요.
말도 안하는 아이가 영어에 재능이 있다는데 얼마나 기쁘던지
그 일을 남편이랑 어머님께 말했더니 두 사람이 이렇게 말했어요.
‘자발떨지 말라고!’
(자발의 뜻은 좋은 것이지만 뒤에 ‘떨다’가 붙으면 참 나빠져요.)
저는 이 말을 듣자마자 가슴속에 콩콩이 소리가 멈춰버렸어요.
테이프와 책을 서류봉투에 소중히 넣어 일주일 후에 돌려드리면서
더는 필요 없다고 했더니 외국책 서점인 책방이름을 말하면서
이런 책이 많다고 알려주면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돌아가셨어요.
(‘자발떨지 말라’는 말은 평생 박혀버렸어요.)
두 번째 기억은
승지는 초등학교 들어가서 학교와 잘 안 맞았어요.
학교에서 행복할 수 없다면 다닐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미치자
집안에 똑똑한 어르신과 상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말씀드렸더니
‘너보다 잘난 사람도 학교에 보낸다. 너보다 못나서 학교에 보내겠냐?’ 하셨어요.
결석일수가 한 학년에 3분의1(72일)이면 지장이 없다는 말을 어디서 찾아내었고
학교 가고 싶지 않은 날에는 할아버지께는 비밀로 하기로 하고 작전을 짰어요.
대문이 어르신 방에서 훤히 보였기 때문에 다른 창문을 통해
주택 윗층 집이 사용하는 뒷문으로 빠져나와야했어요.
그때 승지는 겁먹은 토끼 같았고 저는 꾀 많은 여우같았어요.
얼 만큼 놀더니 승지가 이렇게 말했어요.
‘더이상 안되겠어! 할아버지께 죄송해서 학교에 가야겠어!’
그 말을 한 이후부터는 학교를 빼먹지 않고 잘 다녔어요.
(‘너보다 잘난 사람도 학교에 보낸다.’ 이 말도 콕 박혔어요.)
이 말을 했을 당시를 떠올려보았어요.
저는 그 당신 아이들에게 열정을 불태울 때였죠.
지켜보는 가족들은 저보다 아이를 먼저 걱정한 거였어요.
아이가 말 한마디도 못하는데 영어가 가당키나 하냐는 염려에서...
두 번째 학교문제는 저의 무모함하고 대책 없는 성격에 학교를 당장에
그만 두게 할 것을 아셨던 거예요.
어른들 보기에도 철딱서니 없는 어린엄마였으니 염려되신 거라!
대화방식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이런 감정이 빨리 정리 되었을 텐데 아쉬워요
아마도 어른들은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제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는 것을 아신 것 같아요.
세월이 흘렀어요.
승지가 캐나다 가기 전에 저에게 ‘엄마 말이 지겹다’고 하더군요.
두 번째 들은 말이에요
그 전에 지우랑 조근조근 말할 때에 곁에서 듣고는 아주 작은 소리로
‘엄마 말이 지겨워’했거든요.
처음에는 잘못들은 줄 알았어요.
저를 깨우치는 소리였음을 한참 생각하고 나서야 알았어요.
아이들을 언제나 염려했기 때문에 오래오래 염려하는 말을 했어요.
언제나 잘 들어주었기 때문에 지겹다고 생각하는 줄 몰랐어요.
에궁....
저는 어른께서 염려하시는 두 마디를 지금까지 가슴에 콕 박으며 사는데
아들 속에는 얼마나 많은 말이 박혀 있을까?
내가 했던 말이 너무나 많아서 무엇이 박혔는지 찾지를 못하겠어요.
어쩌나....
승지야, 너는 주로 말을 듣는 편이야? 하는 편이야?
승지는 말을 듣는 편이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승지에게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누굴까?
글쎄?
둘이 그러면서 한참을 웃었어요.
내가 말을 아주 많이 하는 경우와 승지가 말을 아주 많이 듣는 경우는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핵심만 말하는 승지에게 저는 늘 배워요.
어쩌면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꼭 염두하며 조심해야할 말이 되겠지요.
-이해인 수녀님의 기도문 중-
저로 하여금 말 많은 늙은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특히 아무 때나 무엇에나 한마디 해야 한다고 나서는
치명적인 버릇에 걸리지 않게 하소서
모든 사람의 삶을 바로 잡고자 하는 어리석은 열망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사려 깊으나 시무룩한 사람이 되지 않게 하시고
남에게 도움을 주되 참견하기 좋아하는 그런 사람 되지 않게 하소서
제가가진 크나큰 지혜의 창고를 다 이용하지 못하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저에게도 친구가 몇 명쯤 남아 있어야하겠지요
끝없이 이 얘기 저 얘기 떠들지 않고 곧장 요점으로 날아가는 날개를 주소서
(2015.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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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1 연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