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1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깨달은 일이 생겼어요.
어떻게 살았기에?
젊은 시절에 내가 딱 요만큼 손톱만큼도 안 되게 나를 만들어놨으니
결혼도 배경도 돈도 손톱만큼만 되었어요.
꿈이 있었다면 예쁜 앞치마입고 집안 꾸미며 살고 싶었는데
세상이 바뀐 것을 몰랐거든요.
여자도 돈을 벌어야하는지 산골 처녀가 알리가 없었겠지요.
그저 엄마가 쌔가 빠지게 농사일을 하는 것을 보며
예쁜 앞치마와 깨끗한 부엌을 상상하였는지도
그런 상태로 결혼을 했는데
뜨악했어요.
돈 버는 일은 부부가 똑같이 소박해서 늘지가 않아요.
둘 다 씀씀이가 저렴하고 욕심도 없어요.
시골 가서 농사나 지을까?
텍~~~~~~
아이를 키우면서 쑥을 알게 되었고 유일한 안식처였어요.
비투스가 된 것은 행운이었어요.
아이들 이야기가 대부분 이었지만
글을 쓸 때 의도하지 않아도 아픈 것이 늘 잡혀서 같이 나왔어요.
감정을 누른 흔적이 글마다 다 늘러 붙었지요.
가끔 숨겨놓은 그것을 읽는 분도 계시더군요.
그것을 읽는 분은 아픈 것이 있었을까?
시집살이 십 팔년과 큰며느리라는 배경은 주위 사람까지도 아픈 사람으로 채우더군요.
내 것도 힘겹지만 주위에서 토해내는 그 인생들은 왜 그렇게 하나같이 고플까?
전염된다고 하죠. 행복이가 불행이가
행복해지고 싶으면 행복한 사람 곁에 있으면 된다는 말이 있더군요.
이렇게 쓰고 보니 불행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요?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더이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행복을 끌어오기가 힘들다는 뜻이겠지요.
분명한 것은 그래도 순간순간을 잘 해결하면서 보낸 듯싶어요.
더 분명한 것은 주위에 아파하던 사람들도 자신의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죽었다깨나도 그들처럼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그들은 참 현명해요.
가끔가다 그들이 간절히 보고 싶기도 한데...
다시는 돌아올 수없이 먼 나라로 간 친구 생각이 나네. 훌쩍.
내가 더 만져줄 수도 있었는데, 나 살기도 폭폭시러...
미안해. 친구 (연숙이 이름을 가슴으로 불러봅니다.)
삶을 해결해가는 방식을 보면서 어쩌면 나도 그들의 일부가 아니었을지
가만히 내 것을 드려다 보았어요.
아이들 이야기를 쓰면서 내 아픔이란 것이 글속에 녹아져 순간순간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었나 봐요.
생활에서는 욕심내지 않고 어긋나지 않은 모습으로
주어진 조건을 받아들이며 아이들에게 성실히 다가갈 수 있었어요.
공감할 수 있는 곳에는 늘 이해하는 마음들이 함께였기 때문이겠지요.
오랫동안 함께 긍정적인 마음으로 같은 곳을 향하던 많은 분들 고맙습니다.
흐르는 시간처럼 현명한 것은 없을 거예요.
모든 것을 머물러있지 않고 흐르게 해요.
나이만큼 빨리 흐르네요.
그래서 자꾸만 조급해져요.
하루가 일 년의 세월처럼 흐르는 듯해요.
이제야 나를 보았는데 나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데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이 낮 설어요.
아이들을 잘 지켜주는 일을 우선순위로 두어 몰두하면서
지독한 인내를 배웠던가 봐요.
가슴에 쌓인 것이 뒤늦게 터지면서 나 자신과 마주하는데
여기저기 아픈 곳을 보여주네요.
아파하는 저를 보며 아이들은 말합니다.
‘엄마,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 컸잖아!
이런 말을 듣고도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엄마, 우리가 지금 이렇게 잘 컸잖아!’이 말은
내 가슴속 저 편에 아픔을 건드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너희들에게 돈 들어가는 일은 제대로 못줬지.)
내가 그나마 한 것이 있다면,
잘사는 사람이든 못사는 사람이든 똑 같이 주어진 시간만큼은
알뜰하게 쓰기위에 애썼지.
‘너희들이 스스로 잘 컸다고 생각하면 됐다!’
"잘 큰 자신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힘 써주기를 바란다. "
다 큰놈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여줍니다.
그럼 됐다!
저는 이제 온전히 나 자신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춘기 소녀처럼, 방황도 해봅니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철학자라도 된 기분입니다.
나
처음 발을 떼는 것처럼 두렵습니다.
그리고 나이만큼이나 조급합니다.


쑥쑥몰
체험이벤트














임쏘 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