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들어와라” 라는 말을 듣지 않고 큰 사람이 있을까? 대학 다닐 때 내 통금 시간은 7시 반이었다. 그보다 늦게 귀가하려면 사전 허락을 받아야 했는데 피 끓던(!) 청춘, 나의 20대는 미리 약속된 일보다는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모임이 많았던 때였으므로, 그리고 설혹 사전 허락이 있었다 할지라도 9시 반까지는 무조건 집에 들어와 있어야 했던 엄명 때문에 나와 아버지와의 갈등은 끊일 날이 없었다. 물론 벼락같이 무서운 아버지와의 투쟁은 항상 외출금지라는 일방적인 벌로 마무리되기 일쑤였다. 난 밤길이 위험해 안전이 걱정되기 때문이라는 아버지의 이유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내 친구들은 그 위험하다는 밤길을 날마다 어찌 멀쩡히 다니는가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유학을 떠난다고 했을 때 평소 나와 아버지를 알던 주위 친구들은 모두 놀라워하며 아버지가 쉽게 허락을 해주시더냐고 물었다. 그 후 혼자 공부하던 여러 해 동안 외로움도 물론 있었지만 그보다는 아버지로부터 해방되어 내 마음대로 시간을 쓰는 자유를 실컷 누린다며 좋아했었다. 그 당시 집을 떠나 산다는 서운함이 거의 없었던 것을 아버지가 아셨다면 섭섭해 하셨을까? 그런데 이제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아버지는 나에 대한 걱정과 관심을 귀가시간을 통제하는 것으로 그러나 나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유학을 허락하시는 것으로 보여주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역시 멀리 공부하러 가있는 딸아이에게 매일 조심하라, 늦게 다니지 마라 잔소리하는 것을 보며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하라, 하지마라 할 때 부모가 대는 흔한 이유는 ‘위험하다’, ‘해서 뭐하려고’, ‘다 너 잘되라고’ 일 것이다. 그러나 관심과 간섭이 다른 것임에도 우리는 가끔 혼동하고 또 걱정이라는 이름의 관심이 종종 간섭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놓친다. 그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때문에 부모에겐 분명히 관심인데 아이는 그것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긴 좀 내버려두면 무관심하다하고 또 관심을 두면 잔소리한다, 간섭한다고 불평하는 것이 아이들 아닌가.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또 화장에 눈을 뜬 아이에게 눈에 나쁘다, 건강에 안 좋다, 넌 화장하지 않아도 충분히 예쁘다고 아무리 진심으로 얘기해도 아이들은 그 아래 숨겨진, 그런 ‘쓸데없는 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공부에나 더 신경 쓰라고 말하는 것 같은 부모의 속마음만을 읽는다. 그리고 설령 엄마 생각이 옳다고 해도 그것을 설득시키기 위한 반복되는 노력이 아이에게는 관심으로보다는 또 하나의 간섭이요, 잔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아이에 대한 걱정이 진정한 우려와 관심으로 이해될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아이들의 행동에까지 부모의 간섭의 힘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내 후배 하나는 학교 다닐 때 매니큐어를 질색하시는 아버지 눈을 피하기 위해 집 대문 한 귀퉁이에 매니큐어와 아세톤을 감춰놓고 아침에 나갈 때 발랐다가 귀가하면서 지우기를 매일 반복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아이가 다 큰 지금에 와서야 별 것도 아닌 일로 감정싸움을 했던 것을, 대세에 큰 지장이 없었는데 아이가 원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두었어도 괜찮지 않았을까를 반성하며 그 시간을 되돌아본다. 아이 키우면서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또는 후회하는 일 하나 없는 부모는 없을 것이고 나 또한 엄마라는 자존심으로 아이와 부딪혔던 후회스러운 시간들이 있다. 그때 나는 아이의 ‘싫다’라는 말과 행동을 부모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 오해하며 몹시 엄하게 다스렸던 것이다.
하긴 그런 반성이 있기에 나는 지금 관심과 간섭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넘지 않으려 노력한다. 앞으로도 계속 딸과의 좋은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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