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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이야기 세번째

  • 빨강머리앤
  • |
  • 2014-11-07
16

누군가에겐 멘토였고 누군가에겐 추억의 배경이었던 한 가수가 허망하게 죽은 뒤

사람들의 관심.. 의료사고에 관한 관심이 치솟고 있습니다.

과연 일반인이었다면 소송을 하고 부검을 하고 승소를 하고.. 그런 과정을 겪을 힘조차 있겠나 싶으니 말입니다.

병원에 있었던 사람이라 이번 사건..(사고라고 해야 할런지.) 에 자꾸 눈이 갑니다.

게다가 해당 의사가 마침 제가 일하던 시기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어서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하는 시간이었어요.  그 때는 성격도 좋고 일 하기에 편했던 의사였던지라 지금 저런 행동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에서 의료소송을 걸고 승소를 했던 첫번째 환자는 제가 일했던 곳에 오랫동안 식물인간으로 누워 계신 분이었습니다. 제가 신규 간호사로 들어갔던 당시에도 이미 몇 년째 그렇게 누워겠셨어요.

환자에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보통 그렇게 수년간 식물인간인 채로 있다면 흔히 가지고 있어야 할 욕창이 단 한 군데 흔적도 없다는 것이었죠.

처음 인계받을 때 들은 이야기는 이랬습니다.

 

젊고 이제 막 결혼을 한 이 남성분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려는 참이었답니다.

그래도 외국으로 가는 거니 검진이나 받고 가자 한 것이 갑상선 암을 발견하게 해주었지요.

간단한 수술이니, 게다가 우리나라 최고의 병원이니 후딱 하고 깔끔하게 유학을 가자... 했던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되고 말았던 거지요.

그 간단하다던 수술을 하고 그날 밤 환자는 병실에서 호흡곤란을 호소했고 늦은 대응에 급기야는 병실 밖을 뛰쳐나와 간호사 스테이션까지 쫒아와 거기서 쓰러지셨답니다. 응급으로 재수술을 하고 의료사고의 덤탱이를 쓰지 않기 위해 항생제 및 약들을 다량 투여한 결과 부작용으로 위장출혈을 일으켰고 다시 수술.. 그리고 식물인간이 되셨습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거의 20년쯤 전이니까 당시에는 의료소송이란 걸 하는 사람도 없었고 변호사들도 당연히 패소하는 것이니 병원을 상대로 위자료를 많이 받아내야 한다고 어머니를 설득하더라네요. 병원에서도 물론 할머니에게 (환자의 어머니)  많은 돈을 줄테니 그거 받고 병원에서 나가라는 식으로 설득을 하였답니다.

멀쩡하게 병원에 들어가서 살아있는 시체가 된 아들을 보고 어머니가 정신줄을 놓을 새도 없이 남편의 의료사고로 충격을 받은 임신중이었던 환자의 아내가 먼저 정신줄을 놓고 말았고 그 후 수년간 남편 비슷한 사람만 보이면 부산이든 광주든 무조건 따라 나서게 되었다 하더군요.

환자의 간호및 뒤처리는 오롯이 할머니의 몫이 되었었겠지요.

 

우리에게 환자의 어머니는 환자의 이름을 붙여 '000할머니'라고 불렸습니다.

이 할머니는 얼핏 보기에는 쭈글쭈글 그냥 할머니지만 대차기가 이를 데 없고 아는 것도 많은 엘리트였던가 봅니다.

할머니는 유래없는 의료소송을 진행하셨고 '합의금 안 줘도 된다. 내 아들을 원래대로 돌려놓지 못 한다면 죄값을 받으라'며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으셨다네요.

증거가 너무 명백해서였는지 우리나라 최초로 의료소송에서 승소를 하였다고 할머니의 입을 통해 들었습니다.

보통 식물인간은 중환자실에 두지 않아요. 그리고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는 병실을 주지 않는데 할머니는 그야말로 병원 안에서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인물이 되셨답니다.

너희가 잘못했으니 중환자실에서 우리 아들을 24시간 돌보아야 한다. 당연히 병실도 주어야 한다. 라는 주장에 패소한 병원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요.

게다가 그 수년간 할머니는 빠짐없이 꼼꼼한 기록을 하셨답니다. 날짜와 그 달의 주치의 ,그 날의 3교대 담당 간호사, 아들의 상태... 병실에 몇 권의 책으로 쌓여 있다고 하셨지요.

그러니 모든 의사와 간호사들이 설설 기는 것이 당연했어요. 어쩌다 체위 변경 중 환자의 몸에 손톱 자국이라도 나는 날이면 그 날 그 간호사는 초죽음을 당했지요.

식물인간이라고 대충 넘기는 담당 의사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셨어요.

 

그리고 할머니는 휴일도 명절도 없이 하루도 빠짐없이 와서 아들을 씻기십니다.

대야에 물을 떠다 나르기를 몇 번씩.. 땀을 뻘뻘 흘리며 닦이고 바르고 다듬고 주므르고..

할머니의 헐렁한 웃도리와 몸빼 바지는 이제 너무나도 익숙한 할머니의 유니폼 같습니다.

환자의 몸에 욕창의 흔적이 없는 것은 100% 할머니의 정성과 기도 덕이라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되었지요.

할머니의 모든 에너지를 아들에게 쏟는 모습을 보면서 이 할머니는 다른 자식이 없나? 싶었는데

할머니 댁은 무척 부자이고 큰 아들도 성공한 분이라고 하더군요.

다만 아들을 홀로 병원에 남겨둘 수가 없어서 , 하루라도 엄마가 오지 않으면 아들에게 아무도 관심을 가질 것 같지 않아서 신앙처럼 그렇게 자리를 지키셨나봅니다. 

일년에 한번 정도 불규칙하게 못 오시는 날이 있었는데 그 날은 며느리가 실종된 날이고

그렇게 할머니가 안 보이면 우리는 에고.. 할머니가 이번엔 또 어디까지 가서 찾아오시려나..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 사랑의 결정판을 보는 것 같았어요.

힘없고 연약한 노인네이지만 아들을 보호하고 지키려는 마음과

되돌려 아들을 살려낼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겠다는 의지가

할머니의 강한 말과 표정으로 나타났습니다.

 

환자분이 죽으면 할머니는 그 다음 날 돌아가실 거 같아....

우리끼리 하던 말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당신 자신은 없었고 아들이 삶의 목적이자 이유로 보였던 분이셨어요.

제가 병원을 그만 둔 뒤 느닷없이 갑자기 환자가 숨을 거두었다고 하더군요.

오래 누워있으면 색전증으로 그렇게 갑자기 죽기도 하니까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었어요.

할머니가 걱정되더군요.. 바로 돌아가실 거라 생각했거든요..

 

몇달 뒤 누군가가 지나가다 그 분을 마주쳤는데 

세련된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계시더래요.

인사를 건네니 너무 환하게 웃으시면서 잘 지낸다고 하시고 씩씩하게 걸어가셨답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지요.

십여년동안 아들 곁에서 할머니 자신은 완전히 사라졌었다는 걸..

그리고 그렇게 온전히 다 버리고 간호를 하셨기에 아들이 떠난 뒤에는 미안함도 죄책감도 없이

당신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것을요..

 

의료소송.. 이야기가 나오니 할머니 생각이 나네요.

간호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할머니였는데 저한테는 참 잘해주셨어요.

다른 과 의사와 언쟁을 벌이고 있을 때 씩씩대며 다가와 그 의사에게 제 대신 그 면상에 아밀라아제를 다량 살포하시며 혼내시던 모습이 떠올라 미소짓게 되네요.

 

아직 건강하게 잘 지내시려나...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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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정맘
  • |
  • 2014-12-05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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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 잘 읽고 가네여... 저도 이런 든든한 맘이 되고 싶은데.. 아무리 힘들어도 환하게 웃는..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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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익맘
  • |
  • 2014-11-08 21:30
답댓글

앤님

늘 좋은 글 감사드려요..

잘 읽었어요.

 

어머니는 강하다.

 

나는 어떻게 했을까?

그냥 울고만 있거나

슬퍼하며 아들 옆에 지켰을까?

 

저 할머니처럼 방법을 찾았을까?

 

위기에 닥쳤을때, 나의 선택,태도를 생각하며

어머니의 사랑의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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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강머리앤
  • |
  • 2014-11-09 14:14
미리 생각해도 답은 없어요.
처음부터 불효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도 없고,
미리부터 독하게 싸움닭이 되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도 없어요.
닥치면 그 때서야 답이 나오더라구요...
어찌되었든.. 아들을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로 모든 걸 이겨내신 할머니가 대단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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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11-07 22:17
답댓글

가슴이 먹먹해지는 글~~
그할머니가 이뻐했을 정도니 그때도 역시 똑소리나게 일했나보군.
의료사고,소송,정의,갑질 등등 여러생각들로 늦은 가을이 더 춥게 느꺼지네.
보일러나 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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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빨강머리앤
  • |
  • 2014-11-09 14:11
할머니가 이뻐라 했죵.... 예뻐하셔서 붙잡고 이야기를 많이 하셨기 때문에 아밀라아제 살포 많이 맞았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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