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이 프랑스문학이다 보니 ‘프랑스문학 특강’이라는 수업을 맡게 되는 학기가 있다. 보통 학생들에게 방법론을 설명하고 나면 작품 분석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작품들의 줄거리는 잘 알고 있으나 정작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면서 명작들 -그것이 한국문학이건 외국문학이건 간에-의 줄거리 요약과 주제 등만 참고서에 나온 대로 열심히 외웠던 것이다.
학생들의 책읽기는 초등학교에서 멈춘 것 같았다. 아이들의 탓만도 아닌 것이 중학교만 들어가도 책 읽을 시간이 없다. 뿐만 아니라 배우던 피아노, 태권도 등 취미활동도 하나씩 그만두고 모든 것을 대학 들어간 이 후로 미루는 것이 당연시 된다. 오로지 학과 공부에만 전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참 감성이 풍부할 나이에 무조건 외우는, 이러한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은 문학수업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문학이 무엇인가? 1+1=2의 공식을 벗어나야 하는, ‘밑줄 친 부분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르시오’ 하는 식의 교육을 해서는 안 되는 분야가 아닌가.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시험에 ‘위 글의 엄마는 어떤 분이신가?’ 라는 문제가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정답은 ‘고마운 분’이었지만 딸아이는 ‘무서운 분’을 골라 틀렸다고 툴툴거렸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엄마를 생각하고 적은 답이었을 것을 상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었다.
그런데 이런 유의 문제에 과연 정답이 있기는 한 것일까 생각해 본다. 문학은 읽는 이의 관점에 따라 해석과 이해의 여지가 있는 주관적인 학문이며 또 당연히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같은 책도 읽는 사람의 나이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읽혀진다. 늘 듣던 유행가 가사가 어느 순간 갑자기 가슴에 사무치게 와 닿았던 경험을 누구나 해 보았으리라.
이렇게 답을 예문 중에서 고르는 일에 익숙한 학생들은 문제를 논하라는 식의 수업에 익숙하지 않다. 그나마 논술시험 준비과정 중 닦은 실력으로 어느 정도 틀을 갖추기는 했으나 거기에도 무슨 규격이 있는 것처럼 천편일률적인 답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모범답안 쓰기 훈련을 받은 후유증이리라. 물론 지금과 같은 입시제도 하에서 책을 읽고 취미생활을 꾸준히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그렇지만 창의성을 키워야한다고 말로만 외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어진 상황에서 도움이 될 만한 방법을 찾아본다면 부모와의 대화를 권하고 싶다 . 영화나 좋아하는 TV 드라마를 보면서도 단순히 재미있다, 이야기가 막장이다가 아닌, 어느 부분에서 왜 그렇게 느꼈는가를 같이 이야기해보고, 또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질문들을 하면서 생각지 못했던 아이의 기발하고 다양한 답을 이끌어내는 대화를 짬짬이 시도해 보면 어떨까. 대화가 꼭 길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억지로 ‘교육적’ 정답을 이끌어내려는 의도를 접고 엄마와 나누는 가벼운 수다처럼 시작하면 족할 것이고, 그 내용이 다양하고 깊어지려면 엄마가 신문과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다양한 상식을 쌓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대답에 ‘정말 그렇네, 네 생각이 참 신선하다’, ‘그래 맞아, 바로 보았어!’ 같은 적당한 칭찬 추임새를 넣어 주면서 사이사이 엄마의 지식을 슬쩍 가미해보자. 수다가 이어질 뿐 아니라 어느새 아이 생각 속에 이런저런 정보가 들어차게 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작가 파스칼 메르씨에는 말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로 표현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다’고. 확신하건대. 부모와 대화를 하는 중에 아이들은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되고 그것을 조리 있게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가게 될 것이다. 자녀와의 공감거리가 가까워지는 것은 자동으로 따라오는 보너스일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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