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이야기--까스활명수와 자존심
중환자실 안쪽 벽면으로 붙어있는 침상에 그는 등을 편히 대고 눕지 못한 채 간호사들이 두세시간마다 변경해주는 체위 그대로 누워 있습니다.
혼자서 몸을 돌리지 못 할 정도여서도 그렇지만 그는 척추측만증이 매우 심한 사람이라서.. 흔히들 곱추라고 하죠. 헌데 그 정도가 너무나 심해서 휘어질 대로 휘어진 그의 척추는 이제 그의 모든 장기를 누르고 마비시켜 제 기능을 못 하게끔 만들었습니다.
보통 그렇게 오랜 기간 장애를 안고 살아왔을 경우. 그리고 그것이 외형의 문제일 경우 이 사람이 살면서 얼마나 위축되고 비뚤어졌을까가 가히 짐작이 되는데 이 환자는 예의 그런 것을 눈 씻고 찾아봐도 보여지지가 않더군요.
부탁을 할 때에도 거절을 할 때에도 담담하고 또 침착하게..
면회 시간이 되면 항상 어머니와 누나가 찾아옵니다.
반백의 어머니는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양반집에서 나고 자라 기품있는 집에 시집가서 고생 모르고 사셨을 듯한 인상을 풍기셨는데 역시나 말씀하시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 아들만 아니면 세상에서 걸릴 것이 하나도 없이 사셨을 듯한 어머니는 곱디 고운 손으로 아들을 매만지고 소곤소곤 아들과 대화를 합니다.
누나 역시 풍겨 나오는 기품으로 보아 큰 회사 중역 사모님 같은 이미지입니다.
반듯한 자세와 따뜻한 말투로 그렇지만 서글서글한 눈웃음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두 모녀는 짧은 면회 시간을 어김없이 달려와 아들이자 동생을 한없이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이야기 하다 돌아갑니다.
이 환자는 장 기능이 마비가 되었기 때문에 콧줄을 통해서 음식물을 주입하기는 하나 스스로 변을 볼 수가 없었지요. 3일마다 규칙적으로 핑거 에네마... 다시 말해 손가락을 넣어서 파주는 수동적인 변을 봐야만 했는데 이 분의 소원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제발 까스활명수를 좀 먹게 해달라는 거죠..
그걸 먹으면 소화가 된다면서.. 늘 그걸 먹어왔다고...
환자의 고통이 얼마나 심할지는 엑스레이 사진만 봐도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장 운동이 되지 않아 뱃속 가득히 풍선처럼 차 있는 가스들... 얼마나 더부룩하고 불편했겠습니까.
그래도 환자에게 들어가는 모든 것을 알아야 하기에 주치의에게 물어보았지요.
환자가 까스활명수를 너무나 먹고 싶어하는데 (병원에 없는 약이므로) 보호자에게 사오라 해서 먹여도 될런지를...
의사는 귀찮은 듯이 그냥 병원에 있는 소화제를 처방해 줄테니 그걸 주라고 합니다.
안 된다는 의사의 전갈을 듣고는 마치 걸어놓은 양말 속에서 기다리던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지 못한 아이처럼 울상이 됩니다. 소화제를 여러 종류로 주었지만 환자는 전혀 차도가 없다며 힘들어하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주치의는 허락을 하질 않습니다.
이쯤되면 정말 까스활명수가 중요한 약이어서가 아니라 주치의의 자존심 때문이라는 것을 간호사 경력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깟 시중에서도 파는 음료수 같은 것을 굳이 못 먹게 하는 것은 계속해서 졸라대는 간호사에 대한, 의사의 처방을 신뢰하지 못하는 환자에 대한 자존심 세우기라는 것을.
환자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입니다. 이대로 페도 눌리고 심장도 눌리면 그렇게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왔던 환자의 삶이 당당해본 적 없이 사그라들고 마는 것인데 나름 사회적 위치도 있고 남을 다스리는 위치에 있는 사람의 자존심이나 세우자고 그렇게 작은 소원을 무시하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환자의 누나에게 까스활명수를 사오라고 말씀드렸어요. 주치의 모르게 줄테니 그렇게 아시라고..
무슨 중대한 수술 결정이나 들은 것처럼 기뻐하면서도 비장하게 뒤도 안 돌아 보고 누나는 나가서 까스활명수를 사왔고 저는 콧줄을 통해 주입해주었습니다. 그것이 들어가는 것을 본 환자의 심리적 안정이야 이루 말할 수도 없거니와 잠시 뒤 환자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게걸스럽고도 그악스러운 '꺼어억~~~~" 트름 소리!! 그와 함께 만면이 밝아지던 환자의 모습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였습니다.
그렇게 몇일 뒤 그 분은 맘도 몸도 속도 편할 그 곳으로 가셨습니다.
면회 때에도 임종 때에도 다른 어는 누구도 오지 않고 오로지 어머니와 누나만 오셨지요.
다른 가족들은 없으시냐고.. 조심스러 물었더니 우아하게 따듯한 누나가 대답합니다.
"동생의 이런 모습을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서요. 남편도 오겠다고 했는데 제가 못 오게 했어요. "
그녀의 말투는 단언컨대 절대 동생을 부끄러워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최후까지 동생의 자존심을 지켜주고자 배려해준 어머니와 누나의 섬세한 노력이었던 것을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하게 느꼈습니다.
그런 것이 진짜 자존심인 것을....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안타까이 가는 아들과 동생을 지켜보고서 눈물의 이별을 한 뒤 진정한 자존심을 가진 그들은 저의 손을 잡고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합니다.
정말... 고마웠노라고....
늘상 하는 트름이지만 어쩌다 무척이나 시원스런 트름이 나오면 가끔은 그 분 생각이 나곤 합니다.
지금은 행복하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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