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세계샘입니다.
anthropo님의 글을 주중에 읽었지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은 토일 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먼저, 긴 댓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긴 댓글을 달기 위해서
시간을 따로 내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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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여기 쑥쑥이 영어사이트이지만,
주변적인 이야기도 이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좋은 주제를 투척해 주셔서
마치 연초에 선물이라도 받은 기분입니다.
* 아래는 anthropo님의 댓글입니다.
http://www.suksuk.co.kr/momboard/read.php?table=BEB_003&number=7200&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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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저도 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1. 귀스타브 르 봉 [Gustave Le Bon] 1841 ~ 1931
먼저, 시대에 따라 사실이 변할 수도 있다는 보기로 인용하신
귀스타브 르 봉의 이야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소위,
당시 지성이라고 하는 자들의 ‘그 지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지성의 ‘졸렬함과 천박함’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할 때
필요한 예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멀지 않은 시간, 100년도 채 되지 않는 과거에
지성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인식 수준입니다.
그리고 귀스타브 르 봉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사실이 아니고,
처음부터 낭설’에 불과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사실의 변화는 원래부터 있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만 아는 귀스타브 드 봉의 이야기보다
저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갈릴레오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갈릴레오 아저씨가 ‘지구는 둥글다’라고 했을 때,
당시의 지성들은 갈릴레오 보고, ‘너 오늘 죽어 볼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갈릴레오의 주장은 1세기도 지나기 전에 전 유럽에 받아들여졌습니다.
우리는 갈릴레오 이야기에서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이 바뀌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시 사회가 자연과학의 증거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런 자연과학의 증거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로 변화하였다고 말합니다.
당시 기독교가 말하는 무지의 울타리에서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인간 인식의 확대(=확장)으로 파악하는 것이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의 변화로 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인용하신 이야기는 시대 변화에 따른
인식의 변화이지 사실의 변화가 아닙니다.
인식의 변화는 역사가 아니라,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소학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과부의 아들은 탁월한 재주가 없으면 벗으로 삼지 않는다.’
(소학 - 윤호창 옮김, 홍익출판사, 75쪽)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아니고 막걸리도 아닌 개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두고,
옛날에는 사실이었는데, 지금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식이 바뀐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2. 다양성
쑥쑥의 성격에 대해 지금까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말은 변명같다는 말씀은
딱히 저도 어떻게 반론을 펼치기기 어렵습니다.
맞다 하기도 그렇고, 아니다 하기도 그렇고....
그냥 넘어갑니다.
그리고 다양성.
anthropo님의 댓글을 읽고,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생각은
‘다양성’만큼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 말도 없겠다 이었습니다.
노래에는 보통 1절과 2절이 있습니다.
2절은 1절과 똑같은 리듬과 후렴을 사용하면서, 가사가 다릅니다.
제가 생각하는 다양성의 기준에서 본다면
말씀하시는 댓글의 다양성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곡의 2절로 분류됩니다.
제가 생각하는 다양성은
장르도 다르고, 리듬도 다른 노래입니다.
설운도, 태진아의 노래에서 어린이 동요, G-dragon...
그리고 요즘 자주 듣는 임창정의 문을 여시오까지
http://www.youtube.com/embed/FLPLgJqeZJw
제가 생각하는 다양성과 비슷한 다른 단어들의 예를 들면
중구난방, 잡탕, 퓨전, 용광로, 탈권위주의, 민주주의, 모험, 여기가 어디지?...
뭐 이런 것입니다.
따라서 저에게 있어(= 제가 정의하는 다양성의 범주에서는)
무엇이 지배적인 방식이라는 것은 없습니다.
저에게 있어,
하는 일이 사회가 정한 범죄가 아니면,
(학생입장에서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는)
다양성입니다. 완전 개방형 구조입니다.
3. 자본주의
저는 교육방식이 자본주의 원칙에 기반한다고 믿습니다.
(문제는 그 원칙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 ㅠㅠ)
자녀교육방식 뿐만 아니라,
아이의 탄생부터 유아기, 초중등 교육, 결혼...
심지어 죽고 나서 관 두껑에 못질하는 것 까지-OO상조.
어디 돈과 관련 없는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꼭, 학원과 캠프를 고를 때만 관련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먼저, 엄마가 출산을 합니다.
제일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것이 산후조리원 룸 결정입니다.
일주일 45만원부터 80만원 이상까지
80만원짜리 방이 넓고 깨끗한 줄 알지만, 결국 45만원 방으로 결정합니다.
마누라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간 태어난 아기가 남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돈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6살이 됩니다.
60만원짜리 영어유치원을 몰라서 안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마누라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초등학교 입학하면, 집 앞 상가에 보내 봐라.”
자식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교육에 무관심해서도 아닙니다.
단지, 아버지인 내 벌이가 시원찮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중등, 대학, 결혼.... 장례
더 이상 같은 이야기는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저와는 달리,
자녀교육방식이 자본주의 원칙에 기반한다는 것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하시니,
저로서는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이상주의자라고 하시니.... 달리 드릴 이야기도 없고.
4. 영어와 직업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22592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7199
http://economy.hankooki.com/lpage/opinion/201309/e2013092216175948120.htm
‘영어가 왜 필요할까요’라고 저에게 물으신다면
밥 먹고 살기 위해서입니다.
밥 먹고 살기 위해서는 다른 일도 있는데, 영어가 왜?
좋은 밥 먹고, 편히 살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영어를 잘 하면 아마도 나중에 도움이 될거야 하는
(검증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확률, 미래에 대한 긍정적 추정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영어가 꼭 필요한 사회가 될 것이다는 확신에 가까운 확률 때문입니다.
그러나 ...
미래는 모릅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별별 이상한 직업도 있지만
모두 다 가질 수는 없다.
자라는 청소년들의 배움에는 가능성이 열려 있지만
모든 가능성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결국은 한 두 가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청소년기에 직업 교육이나 자신의 미래 직업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런 준비 중의 하나가 영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기라 해 봐야,
어떤 사람에게는 6-7년 정도이고 (고등학교 마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아이들)
어떤 사람들에게는 10-15년입니다 (대학원까지 학비를 부담해 주는 집 아이들).
길지 않은 시간입니다.
직업에 대한 생각 없이,
학창시절 보냈다가는 학교 졸업과 동시에 실업자 됩니다.
저는 이런 입장입니다.
영어교육보다 직업교육이 우선이다.
영어는 나중에 나이 들어서도 직업에 맞는 수준으로 배울 수 있지만,
직업은 나이 들어 다시 바꾸기 힘들다.
영어는 미래 직업을 위한 여러 가지 준비물 중의 하나이지
영어가 직업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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