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샘님, 기어님, 어디에서부터 얘기를 풀어나갈까 고민하는 중이었어요.
우선 당면한 일로 머리가 복잡했고 그거 좀 숨 돌릴 즈음 기어님이 답글을 쓰셨네요.
혹 두분이 대립각을 세우실까 살짝 고민스러워 저도 의견 더합니다.
세계샘님의 글을 보면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작가는 영어교육 전문가이다.
- 작가는 설득력 있게 글을 쓰는 능력을 가진 분이다.
- 작가는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 데 있어 상당히 단호하다.
- 작가는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다.
그런데 세계샘님은 글 어디에도 "나는 위와 같은 사람이다' 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제가 선택한 그런 단어도 세계샘님 글에는 없습니다.
글 전체에서 작가의 경륜, 성품, 학식이 드러나는데
그건 특정 단어나, 특정 문법 또는 그 조합으로 드러나는 게 아니라
행간 어디에인가 들어서 독자(reader)는 이를 미루어 짐작, 더 멋지게 말해, 추론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독해라 하고 이런 독해가 가능하려면 독해전략이라는 걸 구사해야 합니다.
독해전략(reading strategies)은 텍스트를 이해하고자 하는 총력작전으로
읽는 사람이 자기의 배경지식, 사전 경험, 더불어 그의 예측하기, 의문 품기, 오류수정 등
여러 가지 활동을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복잡한 정신과정입니다.
그런데 어른인 우리한테는 이게 자연스럽게 됩니다.
그건 아마 살아온 경험, 그동안 접한 지식 등으로 수월해진 걸 겁니다.
그래서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이/학생이 이상합니다.
우리에게는 저절로 되는 게 왜 안 되냐면서 가르치려면 방법은?
언어이다 보니 단어와 문법이 우선 손쉬워 보입니다.
독해는 당연 인지활동이므로 생물학적으로 성숙해져야 하거나,
사회적으로 또래나 교사, 부모와 교류하면서 발달하는 것입니다.
주로 그 발달을 돕는 자가 교사인데 이 때 지도법이 무엇이냐가 관건입니다.
세계샘님처럼 입시를 목적으로 하는 학습자를 대상으로 할 경우 쓰신 글이 맞습니다.
우선 다급하니 언제 문학작품을 읽어 정신과정 수련(?)을 하겠습니까?
우선 평가(입시)라는 산을 넘기 위해 부지런히 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캐며 가야지요.
평가를 목표로 할 때는 긴 호흡의 글이 지문에 나오지 않기 때문에,
동화나 소설 읽고 유유자적, 주인공이 뭡네.. 따질 필요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행간을 읽어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내는 일은 단어의 조합
그 이상이어서 아무리 단어를 수 만개 알아도 잘 안되는 영역이 있습니다.
저는 영어를 곧 잘 하는 사람입니다만 영어로 쓰인 의학저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전을 찾아서 단어 뜻을 일일이 캐보아도 모릅니다.
의학 지식이 일천해 글자 그대로의 뜻만으로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독해란 곧 이해요, 이해란 나를 둘러싼 세상에 대한 정보를 처리하는 일인데
글을 읽어 정보를 처리한다는 게 과연 단어와 문법 만으로 되는 일인지,
왜 수 만명의 언어학자, 교육학자, 심리학자들이 독해를 연구하는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저희가 동화 읽기 '의미를 추구하는 읽기' (소위 총체적언어접근법.....)를
하자는 건 아직 연령이 어려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영어에 충분히 노출되게 하자는 뜻에서 입니다.
그 언어에 노출이 충분히 되면 추론/독해가 용이해지는 신기한 일이 생깁니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모국어에 노출되어 국문이 그리 어렵지 않은 것처럼.
고등학생도 소설책 읽으며 유유자적하면 저절로 점수가 잘 나온다고 하지는 않는답니다.
달려들어서 문제 유형 익히고, 단어 많이 외워 시험에 생소한 게 나오지 않도록 해야지요.
그런데 아무리 단어를 외운들 세상 모든 어휘를 알 수도, 기억할 수도 없습니다.
듣도보도 못한 단어를 만났을 때 독해능력은 진가를 발휘합니다.
바로 문맥이라는 걸 바탕으로 뜻을 추론해내는 전략을 쓰는 겁니다.
그래서 책을 많이 읽어 예측하고, 의문 품고, 확인,수정하는 습관을 가진 아이가
모르는 말을 만나도 큰 고민 없이 의미를 추측해 독해합니다.
시험에만 초점을 두어 설명을 해서 그렇지, 사실 언어는 구사인데
어떤 글을 만나도 읽어낼 수 있으려면 단어 만 많이 안다고 되는 일이 아닐 겁니다.
저도 교육경력 25년 째로 초등생부터 대학생, 성인, 심지어 중, 고등 과외까지
미국 한국을 아우르며 다양한 학습자를 가르쳤습니다.
엄청난 독서로 영어평가를 무난히 넘는 학습자를 셀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시험 만 마치고 영어를 접을 것이 아니면 독서는 평생 즐길 수 있는
길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그래서 어려서 영어동화를 읽게 하는 겁니다.
독해를 잘 하게 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향상도를 알기에도 애매한 영역입니다.
즉 실체가 없어 보이지요. 문단 몇 개 곰씹고 심오한 생각을 했다고 향상되지 않아요.
그래서 단어와 문법으로 구체적인 학습실행이 되고 있다고 느끼고 싶어집니다. 또 필요하고요.
그러나 실행작전 만 보고 작전을 구사해 다다러야 하는 목표가 없다고 볼 수는 없지 않을까요?
단어, 문법 매진.....그런 영어교육 전통 거의 백년입니다.
아직도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은 드무니 희한한 노릇이지요.
세계샘님 언짢아 하실까봐 반복합니다.
우리나라 입시라는 평가를 무사통과하려면 문법, 단어 매진은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세게샘님 주장은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언어구사라는 큰 그림을 본다면 언어는 곧 의미 추구 즉 독해이다.
그러므로 독해는 없다라는 말은 맞지 않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건전한 토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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