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했던 글인데 라이노님의 요청에 따라..
그러나 어쩌죠.. 복원을 할 수 없어요.
오늘 스케쥴이 바빠 간단히 요약해요.^^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전교1등 영어 잘하는 리디아정원님 따님에게
교사라는 직업을 추천하는 댓글을 쓰니..
현직 교사이신 쑥쑥의 현직 교사님들 카카오톡 친구들의 항의(?)을 보고 제 주관적인 생각인가?
해서 댓글을 달아 봅니다.
저성장 시대 직업의 안정성도 없고 88만원 세대...
무작정 대학의 네임벨류만 보고 서연고를 가는 시대가 아니더군요.
세상이 많이 변했어요.
'학생인권조례'발표 이후 교사의 인권과 교권 무너졌죠.
교사 본래의 목적보다는 학교 폭력 아이들의 생활지도로 시달리고 계시죠.
아무튼 예전의 교사..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죠.
생각보다 직업의 만족도가 많이 떨어진다고 하소연 하십니다.
친한 친구이기에 저는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 고 했죠.
방학있고 무엇보다 퇴근시간 정확하고..
고등학교샘들 6시에 퇴근한다 해도 어느 직종보다 퇴근 시간이 일정한 직종이죠.
직장 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눈에는 성공한 여성들이 눈에 들어오죠.
그래서 누구나..박근혜 대통령, 조윤선 장관은 될 수 없다고 했죠.
요즘은 학벌도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지만 사회진출도 상당한 영향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여성 직업중 만족도 높은 직종은 과연 무엇일까요?
대기업 직원...육아와 가정 살림은 포기해야죠..
요즘 가장 잘 나간다는 로펌 변호사..쥬니어에서 파트너 될 때 까지 결혼 힘들죠.
아이 학교 친구중 외국생활을 오래해서 영어와 제2외국어 능통해도 외무고시 포기하고 행정고시로..
여성외교관은 남편이 외교관이어도 같은 지역에 발령을 내지 않아 결혼 생활에 고충이 많답니다.
여성 외관들의 경우 국내 근무만을 원해 문제가 된다는 기사도 났고요.
그래서 중매시장에서 선호도가 상당히 떨어진다고 해요.
교수.,,여성 남성 가릴 것 없이 '신이 내린 직장' 이지만 부모의 뒷받침이 많아야 하고 긴 시간 필요하고...
방학길고 수업시간은 일주일에 10시간도 안되지만 머리속은 온통 연구 생각으로 돌아가서..
쉬는 것도 쉬는 것이 아니고..특히 자녀 교육에 신경쓰기 힘들답니다.
세계적인 과학자 서울대 김빛내리 교수님도 자녀 육아로 큰 고민 끝에 직종을 바꿀까..고민하셨죠.
그분의 자녀 교육에 대한 고민글은 유명해요.
아무튼 우리가 선망하는 여성 직종도 결혼생활과 육아를 병행하기에 정말 어려운 점이 많아요.
엄마 처럼 살지 말라...고 어려서 부터 영어도 시키고 야망있게 딸아이들을 키우지만..
일하는 여성들이 여러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일하는 사람으로 보잘 것 없는 일을 하고 있지만 직업 만족도는 상당히 커요.
물론 고충도 있지만요..
제 친구 명문대 졸업하고 아이들 키우며 직장을 그만두었지만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받고 지역아동센터에서 11시부터 6시까지 근무해요.
열악한 환경에서 월 100만원 정도 받으며 일을 하지만 봉사를 한다는 생각에
생각보다 직업 만족도가 크더군요.
모든 일에는 앞면과 뒷면이 있는 것 같아요.
어휴~~딸도 없는 라이노님과 제가 왜? 이런 글을 쓰고 관심을 갖는지...
저도 제자들이 많이 있고 아이들과 진로 상담을 하다보면..고민이 많아요.
잘 키운 남의 집 딸도 제 딸 처럼 생각하고 있거든요.
이대 나온 대기업 차장, 그녀는 왜 사표 던졌나
경향신문 원문 기사전송 2013-04-25 22:45 최종수정 2013-04-26 00:04
ㆍ2013 여성 일자리 보고서 - 전업주부 선택한 조수인씨
그녀는 당당했다. 자녀 때문에 정면 사진은 꺼렸지만 움츠리지도, 숨지도 않았다.
조수인씨(가명), 38세. 초등 2년생 아들을 둔 엄마다. 2009년만 해도 대기업에서 잘나가는 직원이었다. 그러던 그가 전업주부를 선택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 출산휴직 후 인사평가 F, 승진도 남자 동기에 밀려
출세보다 아이 위해 사표… 육아 때문 재취업도 무리
![]() |
| 주부 조수인씨가 지난 8일 하교하는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가고 있다. | 서성일 기자 |
1997년 이화여대를 졸업했다. 해외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다. 이곳저곳 입사원서를 냈고, 국내 굴지의 재벌계 해운사에 입사했다. 여성 공채 2기. 당시 입사자는 총 60명. 이 중 여성은 9명이었다.
신입사원 연수에서 전체 1등을 하고 고위 임원 비서실로 발령받았다. 2년 뒤 마케팅 부서로 자리를 옮겼다. 해운사의 영업직은 화물주인 글로벌 기업과 서비스 운송계약을 체결하고 그들을 관리하는 일이다. 업무는 적성에 맞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해운기업, 달러를 벌어들인다는 자부심도 컸다. 입사 4년 만에 대리. 남자 직원들과의 경쟁 끝에 2002년부터 2년간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는 즐거움도 누렸다. 영업실적은 늘 상위권이었다. 현지에서 과장 승진. ‘여풍’이 보통명사화되면서 회사 고위층에서 여성 임원을 만들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첫 여성 임원이 되겠다는 꿈을 꿨다.
2004년 싱가포르 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뒤 결혼하고,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이 과정에서 출산·육아휴직 6개월을 신청했다. 당시 법이 규정한 기한은 1년.
출산휴가 3개월이 끝나갈 무렵 회사에서 복직 시점을 묻는 연락이 왔다. 나머지 3개월을 쉬고 복직하겠다고 답변했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사평가가 있었다. 등급 F에 연봉 250만원 삭감. 팀원 12명이 아무리 일을 못했어도 쉬다 온 너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출산의 대가는 가혹했다. 팀에서 누군가는 F를 받아야 한다면 희생할 수밖에.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듬해는 차장 승진 시기였다. 남자 동기들은 예외 없이 승진했지만 누락됐다. 사규상 출산·육아휴직 6개월을 쓰면 고과에서 3점이 감점된다. 이번에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여자 후배들과 함께 문제를 제기해 해당 사규를 없앴다. 그리고 동기들보다 한 해 늦은 2007년 차장을 달았다.
회사가 달리 보였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직원에게는 중요한 업무가 덜 가고, 육아 때문에 퇴근을 일찍 하거나 회식에 빠지는 여직원들은 주변부로 밀려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여성들 스스로도 위축됐다. 말로만 듣던 유리천장이었다. 글로벌 기업이란 말은 허울처럼 여겨졌다. 금융위기로 기업 경영이 어려워지자 회사는 2009년 명예퇴직 신청을 받기 시작했다.
고민에 빠졌다. 자녀 양육은 시부모에게 맡기고 오전 6시30분이면 출근해 오후 8시가 돼야 퇴근하는 시절. 아이 때문에 고생하는 시부모, 바쁜 엄마 때문에 고생하는 아이. 공무원인 남편은 아이를 챙길 형편이 되지 못했다.
내가 그만두면 모두가 편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일하는 어머니’ 아래에서 자란 만큼 내 아이는 꼭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 직장에서 버티면서 부장이 되고 임원이 되려면 아이가 아플 때 모른 척해가며 밥먹듯 야근을 하고 술자리에 가야 한다. 그렇게까지 희생하면서 올라가야 할까. 나의 출세와 아이의 어린 시절을 바꿀 수 있을까. 결론을 내렸다. 사직서를 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함께 입사했던 여자 동기들은 한 명도 남지 않았다. 모두 가정주부로 바뀌었다.
회사를 그만두었지만 일에 대한 열망에 비정부기구(NGO) 같은 곳에서 보람 있는 일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1년 쉬고 비정부기구 입사시험을 봤다. 면접관은 대기업을 그만둔 이유를 물었다. 육아 때문이라고 답했다. 면접에서 탈락했다.
시의회에서 계약직 보좌관 일을 1년 했다. 집 근처였고,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올 시간에는 퇴근할 수 있어서 가능했다. 지난해에는 다국적기업 사회공헌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며칠 출근했지만 종일 근무와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포기했다. 현재는 전업주부로 지내며 이따금씩 지역 시민단체에서 활동한다.
퇴직을 후회하지 않고 지금의 삶도 충분히 행복하다.
다만 가끔은 당시 조금만 더 버텼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지금쯤 부장이 됐을 것이다. 그룹 오너가 여성인 회사지만 사내에 아직 여성 임원은 없다. 아이도 어떻게든 컸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퇴보하고 있는 게 아닐까. 되돌아갈 수 없는 선택이지만 때론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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