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며 둘째 학교생활기록부의 학생의 장래희망,부모의 장래희망란
두칸을 채우기위해 우리는 수많은 고민을 했다.
어떤 직종을 선택해도 먹고 살기 어렵다는 요즘...
남들이 너도나도 선망하는 분야 즉 레드오션보다는 블루오션을 권하기 위해 아이를 설득시켜야했다.
부모가 바라는 아이의 장래희망...
대학교수라고 남편과 상의해서 썼다.물론 아이의 장래희망란에는 구체적인 분야를 썼다.
이유를 쓰라는 빈칸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학업에 정진하기 바람'이라고 어렵게 칸을 메꾸었다.
아이가 고2 말 무렵이 되어 장래의 직업을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시기...
요즘 입학사정관 제도라는 것이 진로를 빨리 정해 전공을 정하고 그쪽 방향으로 3년간 스펙을 꾸준히
쌓아야 한다,물론 생활기록부도 장래희망에 맞추어 고등학교 생활을 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장래라는 것은 정말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는데,빨리 정하라고 독촉을 받다보니 유감스러웠다.
사실 고2에 문이과를 정하는 것도 모험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튼 우리도 사회과학 분야..라고 전공범위를 폭넓게 정해 이러저리 전공 탐색을 해야만했다.
그리고 결정해야 하는 시기..
우리부부는 아이의 장래희망란에 '신부' 즉 카톨릭 사제라고 써서 보내고 싶었다.
작은 아이의 입덧이 심할 무렵 새로 입주한 아파트의 기도모임 공지를 보고 무작정 찾아갔다.
'묵주의 구일기도'라는 54일간의 기도를 모여서 하는데 기도모임이 끝나면 과일과 떡을 주었다.
입덧으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지만 기도후의 간식은 꿀맛과 같았다.
남편의 박사과정이 끝나갈 무렵이었고 아파트도 마련했고 큰아이도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어렵게 결혼해서 빠르게 많은 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 무렵..
세상에 무언가 영원한 것은 없을까? 고민하던 중 내가 찾은 것이 카톨릭이라는 종교였다.
8개월간의 카톨릭 교리를 받는 내내 작은 아이는 내 뱃속에서 자랐고 영세를 받고 얼마후 아이가 태어났다.
영세를 받았지만 열심히 하는 신자는 아니였다.
나이롱 신자라고 해야하나...맘편히 사는 사람이 뭔가에 절실히 매달려 기도할 일이 없었다.
신앙이라는 것이 뭔지..기도라는 것을 모르고 세월은 흘렀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며 이사를 해야하는데 내가 구한것은 집이 아니라 학교가 먼저였다.
아이를 잘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카톨릭 재단의 초등학교를 찾아갔다.
무섭게 춥던 2월 어느날 초등학교 안에있는 수녀원에 남편과 함께 찾아가 교장수녀님을 뵙기위해
몇시간을 기다렸던가..미리 연락을 하지 못하고 찾아갔기에 발이 시려웠지만 언발을 동동 구르며
아이의 전학을 위해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아이를 힘들게 전학시켰고 좋은 교육을 받으며 어린시절을 보냈고 자랐다.
아이들의 학교 생활은 기도로 시작되어 기도로 끝났다.
그러나 첫 영성체를 받고 성당의 복사를 시키지 않았다.
복사를 하게 되면 아이들이 공부하는데 피곤하고 시간을 빼앗길 것 같다는
나의 솔직하고도 어리석은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중고등학생이 되며...
엄마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학교성적이었다.
주일날 아침 학생미사가 있지만 보내지 않았고 저녁 미사에 데리고 다니기도 하고
시험기간이 되면 물론 미사참례 보다는 시험공부가 우선이었다.
1시간 남짓되는 미사에 시간을 뺏기면 100점 받을 성적이 95점 될것만 같았다.
정말 그 어리석음 깨달은 것은 이미 모든 것이 다 지난...요즘이다.
아직 책을 읽지 못했지만 대건고등학교의 교장신부님이 인성이 바로되면 공부는 저절로 된다는 책의
내용을 보며..
큰아이를 키우며 많이 힘들었다.
우여곡절도 많고 아이 키우기가 이렇게 힘들다면 어떻게 자식을 키울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좌절해서 더이상 견딜 수 없을 때....
나는 더 이상 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소파위에 굴러다니던 묵주가 눈에 뛰었다.
묵주기도 하는 방법도 잘 모르던 내가 묵주를 들고 기도를 시작했고,하느님께 간청하기 시작했다.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고통의 신비,영광의 신비...라는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우리의 인생과 아이들의 인생 그자체가 이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이 없는 영광이 과연 있을까?
기도를 하고 매일미사를 참례하고 제대봉사를 하며 하느님 가까이로 갈 수 있었다.
하늘을 보면 그곳에 계시는 분에게 우리 아이들.. 마음의 평화를 위해 기도를 드렸다.
그러면서 내 신앙도 성숙해져갔다.
더우기 3년간 모시고 계시던 노신부님의 청빈,절제,순명의 삶을 곁에서 바라보며
작은 아이의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났다.
"요한이는 나중에 훌륭한 사제가 될 인물" 이라고 하시며 잘 키우라고 당부를 하시던..그 말씀이
두아들을 사제로 키우고 싶어 그토록 기도를 하셨지만 사제성소가 없어
큰아이는 의사가 되었고 작은 아이는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다고 하시며 아쉬워 하시던 모습..
작은 아이..
특이하게 어려서 부터 선한 마음을 가진 아이였다.
미운오리새끼를 읽어주었더니 엉엉 울기시작해서 어떤 말로도 달랠 수 없었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시절 유니세프 바자회가 있는 날은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털어 고가품(?)을 여러개 사와
엄마에게 혼나고 사온 물건을 책상속에 숨겨두기도 했다.
중학교 때..친구가 교복을 살 수 없어 하복 입는 날 그대로 온 친구를 위해 내게 전화를 걸어 빨리 학교로
교복을 한벌 배달해 달라고 하기도 했던 아이였다.
그러나 이 아이도 오로지 공부만 강요는 부모 아래서 서서히 시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이제 지나고 보니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부터 잘 키웠다면...
지금 우리 부부가 가장 원하는 부모의 장래희망란에 '신부' 라고 당당히 쓸 수 있었을텐데...
2주전 아이에게 우리 부부는 이런말을 했다.
요한아..신부님이 되는 것은 어떨까?
네가 신부님이 된다면 우리는 기뻐하며 맘껏 지지해줄거야...
1년후 서울대학교 합격증과 카톨릭 신학대학 합격증을 모두 받아 카톨릭 신학교를 선택한다면
얼마나 기쁠까?
물론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제가 된다해도 괜찮아..
훌륭한 신부님들 중에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카톨릭신학교를 가신 분들도 많이 계시니까..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형은 국가를 위해 일한다면
너는 하느님을 위해...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아빠도 다시 태어난다면 신부님이 되고 싶다고 하셨어.
아....돌아와 생각해 보니
모든 것이 부끄럽고 아쉽고 후회되고...
작은 아이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의 말씀을 깊이 새겨들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사제는 흠없는 완벽한 사람이어야 하기에..
아이가 원한다고 부모가 원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카톨릭 신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해도 교구청의 엄격한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여러 관문이 있다.
부모와 집안도 그 어려운 관문에 통과해야 한다.
하느님께 바칠 아이였다면...나는 아이를 잘 키웠어야 했는데..
아쉽다.
과연 아이에게 사제성소가 있을까?...
세상에 무언가 영원한 것은 없을까? 이런 의문이 들기 시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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