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세계샘입니다.
앞글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3. 홍박샘의 글과 그 댓글들을 읽고 나서
홍박샘글을 읽고 안타까운 마음 가지게 되어 글을 적어 봅니다.
이 글은 홍박샘이 쓰신 글과 그 글의 댓글에 대한 저의 생각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 말이란 참 묘합니다. 아 다르고 어 달라요...
■--- 말이 묘한 것이 아니고,
각자가 처한 입장이 묘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고사성어에 結草報恩도 있지만 背恩忘德도 있습니다.
대립되는 두 말은 모순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가 처한 입장을 대변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것도
어쩌면 우리가 처한 서로의 입장이 ‘아’를 ‘어’로 받아들이고,
‘어’를 ‘아’로 받아들이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 좀 유용한 정보를 그냥 전달만 했는데도 고맙다는 글이 그렇습니다...
■--- 그냥 전달만 했는데도 고맙다는 글을 읽고 마음이 따스한 것은
내가 주었던 것을 크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그에 반해 어떤 사람의 글은 정 반대입니다.
내가 몰랐던 정보를 수고롭게 써줬는데도 고맙기는커녕 비위가 상합니다.
그래 너 잘났으니 너나 알고 잘 써먹어,
그래 정보는 가져간다만 너는 다시 안 나와도 오케이...
이런 기분이 들면서 그런 옹졸한 마음을 갖는 내 자신이 싫어지죠...
■--- 이익에는 밝고 인정에는 박한 우리네 인간들의 간사한 마음 때문이겠죠.
보편적인 사람들의 평범한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 저의 멘토는 그리 학벌도 배경도 대단치 않습니다.
단지 저의 말을 들으면 우선 공감을 해주세요.
내가 누굴 욕하면 같이 흉을 봐줍니다.
그러다 말미에 살짝 선회해서 교훈을 주지요.
듣고 보면 나의 문제점을 잘 짚어내어 깨닫게 해준다 이겁니다...
■--- 이미 멘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은 김제동씨의 콘서트에 갔습니다.
김제동씨가 무대에 걸어 나왔습니다.
그냥 걸어 나왔습니다.
그 콘서트에 모인 2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웃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대에 몇 걸음 걸어 나온 것이 전부이었습니다.
그리고 콘서트 중에 피아노를 치겠다면, 피아노에 앉았습니다.
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였습니다.
그냥 피아노에 앉았을 뿐인데,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요동쳤습니다.
생각해 봅니다.
우리들의 가카 이명박 대통령이
그 자리에 김제동씨와 똑 같은 행동을 했다면,
아마 저 같은 사람 두 명만 더 있어도 바로 ‘씨발'이 나왔을 것입니다.
웃을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좋아하기에,
걷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고, 앉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싫어하기에 보기만 해도 ‘씨발’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옳고 그름의 합리성의 문제가 아니죠. 직관의 문제이죠.
멘토이기 때문에 공감이 있고, 멘토이기 때문에 교훈이 아닐까요?
‘...믿으려는 이는 미리 믿고, 속이려는 이는 앞서서 속인다....’
- 인물지, 56쪽. 이승환 역. 홍익출판사
그런데 한동안 친분을 나누다 연을 끊은 사람이 있어요.
그이는 학벌과 배경, 경험 때문에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양반과 얘기를 나누고 나면 무엔가 기분이 나빠요.
그 잘난 말 몇 마디 들을 때 나는 무지몽매한 인간으로 전락,
무조건 그가 맞다고 해줘야 합니다.
■--- 내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닐까요?
그가 무엇을 이야기 하든.
.... 우물 안 개구리를 칭하시오?...
■--- 우물 안 개구리를 위한 변명입니다.
평생을 우물 안에서 살아도 아무 상관없는 개구리에
우리는 우물 밖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우물 안 개구리의 짧은 지식을 조롱합니다.
자기가 보았던 우물 밖 넓은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아름다운 정원의 장미향기와 허공을 나는 새의 날개 짓을 이야기 합니다.
장미의 향기와 허공을 나는 새를 이해하지 못하는
개구리를 쪼다 취급합니다.
우리가 오기 전에는
우물 안 개구리의 삶은 평화로웠습니다.
그에게 장미향기, 하늘을 나는 새는
그의 삶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밀향고래에는 뚜렷한 후각기간이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무슨 부자유가 있겠는가?
바다에는 장미꽃도 제비꽃도 꼴로뉴 향수도 없다...
- 백경, 334쪽. 강영길 역. 일신서적출판사.
... 브죵이나 나처럼 쑥쑥을 징~하게 사랑하고 게시판을 자주 드나든 사람은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글쓰기 버튼을 누르는지 대충 알지요.
홍보냐, 자랑이냐, 정보 전달이냐, 쥐뿔 아는 거 드러내려는 거냐, 그냥 수다냐. 그런데 수다도 떨어본 사람이 재미를 알고
게시글도 많이 읽어본 사람이 그것도 간파하는 모양이어요...
■--- 홍박샘의 전체 글 중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 우리네 세상살이의 이치입니다.
평생을 살아도
마누라 마음을 모른 것이 남편이고,
남편 마음을 모르는 것이 마누라입니다.
게시판의 짧은 글을 보고, 그 사람의 의도를 알다니.....
흔치 않는 능력입니다.
그리고 홍박샘은 제가 알기로는
이 사이트의 운영자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회원들이 가입할 때 입력한 회원 정보도 원하신다면
관리자 모드에서 열어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권한이 있는 분이
회원들이 쓴 글에 대해
‘홍보냐, 자랑이냐, 정보 전달이냐, 쥐뿔 아는 거 드러내려는 거냐,
그냥 수다냐’하시면서, 그 의도를 알고 있다고 말씀하시면,
누가 게시판에 글을 남기겠습니까?
또한 이것은
앞에서 말씀하신 ‘그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사람’과
홍박샘이 무엇이 다른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그 분은 자기와 말을 하는 사람은 무조건 뭘 모른다는 전제 하에 시작한다고 하셨죠. 자기가 하는 말은 다 옳아서 동의한다고 하셨죠.
홍박샘은 말씀하시죠.
사람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글쓰기 버튼을 누르는지 대충 안다고.
상대방을 한 수 아래로 보는 관점은
그 분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
1) 웃음행복(dorikae) 2012-11-13 16:23
"말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
■--- 이 속담의 의미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적는 것은 웃음행복님의 댓글에 관한 내용은 아닙니다.
아래 내용은 웃음행복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 보는 것입니다 .
말 한 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표현이 과연 가능할까?
천 냥은 거금입니다.
천 냥이라는 거금을 말로 갚기 위해서는
천 냥보다 더 큰 이익을 말해야 합니다.
천 냥은 이익을 눈앞에 둔 인간이 포기할 수 있는 돈이 아닙니다.
우리는 천 냥 빚도 말 한 마디로 갚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말 한 마디가 과연 무엇에 관한 한 마디일까 생각해 봅니다.
------------------------------------------------------------
2) 은근과부(parzen2) 2012-11-13 10:42
'아' 다르고 '어' 달라서 선뜻 낯선 곳엔 글 못씁니다.
'아'라고 쓰고 싶은데 저도 모르게 '어'라고 쓸까, 혹은 그리 오해할까 두렵기도 하구요.
■--- 정말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글은 반박글이 아닙니다.
은근과부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글입니다.
그래서 저는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하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아’를 ‘아’로 들리게, ‘어’를 ‘어’로 들리게 하려고
그래서 이분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인생이 이분법처럼 그렇게 구분되는가 하고 푸념처럼 말하지만,
우리의 논쟁만큼은 ‘아’가 ‘아’가 되게, ‘어’가 ‘어’가 되게
이분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진리는 검은색도 아니고 흰색도 아니요라는 화법은
논쟁(=논의, 토론, 합의점 찾기)를 하자는 것인지 말자는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이분법 예찬론자의 생각입니다.
------------------------------------------------------------
끝으로 댓글 주신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글에 대한 평가는 누구의 글이든
그것이 현실적이다(real), 아니다(not real)
일반적이다(general), 아니다(not general)
말이 된다(reasonal), 아니다(not reasonal)와 같은
기준으로 구분되고, 평가 받아야지
읽어보니 ‘내 기분이 나쁘다, 내 기분이 좋다’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이 글이 처음 시작될 때는
과외 선생님 구하기(looking for)에서 시작되었는데,
이제는 과외 선생님 구하기(saving)로 변한 것 같습니다.
보편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봅니다.
누군가가 웃을 때,
웃음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그가 기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흐르는 눈물을 보면, 우리는 그가 슬퍼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의 마음 속 일은 알 수 없지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반드시 웃음소리가 기쁨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반드시 눈물이 슬픔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기 때문에
웃음은 기쁨의 동일어가 되고,
눈물은 슬픔을 상징하게 됩니다.
그래서
귀에 들리는 웃음소리와 눈에 보이는 눈물을 가지고
보이지 않는 마음을 짐작하는 것입니다.
웃음소리와 눈물을 놓아두고
보이지 않는 마음을 짐작하는 것은 타고난 성인도 하기 힘든 일입니다.
예수님도 12명 과외를 했는데, 그 중 한 명이 배신 때렸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조차도 사람 마음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과외 선생님 구하기란 글에 대해 불편에 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의 덕목, 진정한 사랑을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교재에 대해서는 평가는 한 분 뿐입니다.
쑥쑥은 회원이 많은 큰 사이트입니다.
좋은 단어와 부드러운 문장으로 글을 쓰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간혹
저처럼 ‘편파적인’ 이분법으로
끊임없이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때로는 ‘어의가 없는 황당무계한 주제’를
구구절절 써 내려 가는 인간도
함께 할 수 있는 큰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쑥쑥몰
체험이벤트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은 어떤 책을 읽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