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올려두고는 이제서 들어와 봅니다.
그 일로 인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느라... 학생 생활지도라는 주제로 전국의 교육청으로 교사 연수를 가고, 방송 토론 프로그램에 패널로 나가고, 대책 회의를 하고 등등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모든 분들의 의견, 감사하고 많은 고민을 다시 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학교에 있어서 학교와 교사의 입장을 변명하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그래도 아이들 모두를 다 끌어 안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와 교사가 모른 척을 한다고들 하는데....절대, 라는 말씀은 드릴 수 없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 문제의 핵심은 '부모와 아이들과의 소통과 유대관계의 부재'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갑자기 그렇게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중 1담임을 하면서 1년 동안 자해, 왕따, 폭력, 금품 갈취, 야동 등등 솔직히 거의 모든 문제를 다 접해 보았습니다.
제가 있는 학교는 가정 환경이 많이 힘든 곳에 있습니다. 저희 반 29명 중 우리가 보통 이야기 하는 가정의 틀이 깨진 아이들이 13명, 즉 3명 중 1명입니다. 그 아이들은 이미 각자의 마음에 너무도 큰 상처를 가지고 학교에 왔습니다. 부모가 내 아이 하나의 마음도 재대로 다 알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과연 교사가 30명의 아이들의 마음과 상처를, 전부 다 알아서 치우해주고 미리 예방한다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많은 노력은 하겠지만 완벽하게 해낼 수는 결코 없지요.
저는 교사 25년만에 이렇게 담임을 열심히 해본적이 없다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그 만큼 아이들은 많이 상처받고 아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희반 아이들은 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절대 우리를 혼내지 않는 담임'이라고...
저는 그 아이들이 수 많은 잘못을 하고 문제를 일으켰고, 학교에서 저희반 수업을 못 들어가겠다는 선생님이 계실정도였지만 그 아이들을 혼내거나 나무랄 수 없었습니다. 그건 그 아이가 열네살이 되는 동안 몇 년에 걸쳐 너무도 큰 상처를 받아 그 안에 쌓인 분노들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건 절대 그 아이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도 알기에....
하지만 제가 그 아이들을 무조건 봐준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아이를 혼내기나 벌주는 것보다는 그 아이의 변화에 가장 큰 촛점을 맞추고 있고, 아이들은 저를 많이 무서워 합니다. 혼내지 않는데 무서워한다니 이상하다 생각하실 지 모르지만 저희 학교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사람이 저인 것은 분명합니다.
아이들의 저에 대한 또 다른 표현
"정말 웃기고 재미있는데 진짜 무서워.'
저는 권위는 교사가 부리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로 부터 선물 받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을 존중해주는 저의 말을 들어주려 노력하고 거슬르지 않으려 애써준답니다.
엄하게 처벌을 해야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 것으로 그 아이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반성문을 쓰고 벌을 받는 동안 아이들은 뉘우칠까요? 그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자신이 한 일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제대로 가르쳐주고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서 스스로 후회하고 마음 아파하며 반성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해와 바람 중 나그네의 옷을 벗긴 것은 해였다는 것을 저는 늘 기억하려고 합니다.
저를 보고 너무 이상적이고 감상주의적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시간이 들고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만 분명 그것만이 또 다른 반복을 피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아이들이 소년원을 갑니다. 그리고 다시 사회로 돌아오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사회는 그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는 따가운 시선으로 관심을 가지지만 그들이 다시 사회로 돌아왔을 때는 냉정합니다. 그들이 아무리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삶의 기회를 잡아보려해도 정말 어렵습니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더 이상 따듯함이 없습니다. 그들은 결국 뒷골목을 방황하게 되고 더 큰 잘못들을 저지르게 되고 또 다른 희생자가 나타나게 되지요. 이런 악순환이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습니다.
학교 폭력이라고들 하는데....
멀쩡하던 아이들이 학교에 와서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너무 아파서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정폭력, 가정이 깨어지는 과정에서의 상처, 경제적인 어려움 등등
그리고 과다한 학업 스트레스와 그로 인해 노는 방법 조차 알지 못하게 커버린 아이들....
아이들은 숨쉴 곳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와 제대로 소통하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면, 사랑받고 존중받고 자라서 상대를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아는 아이라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이들은 집과 부모님에게 마음을 뿥이지 못하기에 집 밖으로 돌거나 게임이나 오락, 인터넷, 스마트폰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집에서 부모와 함께 이야기하고 즐거이 시간을 보낸다면 그런 일에 빠질 이유가 없겟지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보면 정말 매일매일이 마음이 짠~~하게 아픕니다.
집과 학교, 학원이 전부인 아이들이 너무 많거든요. 아이들은 부모로부터 사랑받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잘 키워져야 하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 같아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학교 폭력의 근원은 가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서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라고 할 지 모르지만 그것 역시 그 아이의 선택입니다. 한 학급에는 30명의 다양한 아이가 있는데 굳이 그런 아이를 친구로 선택하는 것은 그 아이의 몫이고 가치이지 절대 다른 아이로 인해 강요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부모님들이 보시면 너무도 상처가 되실 지 모르지만 ....
저는 그 아이의 유서를 읽으면서 솔직히 화가 났습니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저를 너무 힘들게 했었습니다. 저는 독서치료와 미술치료를 공부하여 실제 치료를 하고 있는 사람인데....
저는 그 아이가 유서에서 조차 어떻게 그렇게 반듯할 수 있는 건지....처음에는 숨통이 막히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저의 목을 만져보았습니다. 그 다음 감정은 당황스러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을 많이 사랑하는다는 글에서 그 아이의 가족들로 인한 외로움과 사랑받고 싶어하는 강력한 욕구를 느꼈습니다. 그 아이는 가족을 사랑하기 전에 자신을 사랑할 수 있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가족을 사랑하는다는 말로 가족들로 부터 사랑받고 싶다는 너무도 간절하고 아픈 내적 바람을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가 주는 사랑과 아이가 바라는 사랑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의 간극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요.
아이는 자신을 사랑하도록 키워저야 합니다. 영화배우 장국영이 그렇게 말하면서 목숨을 끊었다고 하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고.....
자존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아이는 다른 사람도 제대로 사랑할 줄 압니다.
학교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아이들이 재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방치되거나 반대로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키워지는 대상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주먹을 날리는 것만이 폭력이라고생각할 지 모르지만 솔직히 부모로부터 감정적인, 정서적인 폭력으로 인해 상처받는 아이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결국 그렇게 마음이 아픈 아이들은 자신을 상처입히거나 상대를 상처입히거나 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자신이 그렇게 아프게 맞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을 절대 때리지 않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폭력은 그저 일상이 되어버리고 갈등의 해소 도구가 되어버리고, 나중에는 무감각해져버립니다. 정말 남을 때리는 것이 왜 나쁜지조차 모르게 되어버리는 거죠.
저는 그 아이들을 무조건 용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 번 일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 아이부터' 제대로 잘 알았으면 하는 것이고, 그 아이와 제대로 소통하고 있는 지, 그 아이가 혹여 마음이 아픈 것은 아닌 지 알아보자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모두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다면 그 이상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리고 내 아이뿐만 아니라 내 아이의 친구들이 같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마음을 열어 함께 키워가자는 것이지요.
제가 보호관찰청소년의 멘토가 되어 줄 때 남편이 심한 반대를 했었습니다. 우리 귀한 아이들이 그런 아이들과 만나는 것도 싫고, 그런 아이들이 우리 집에 드나드는 것도 싫다고요. 그 때 제가 이런 말을 했었습니다.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기 때문에 내 아이의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이라고. 내 아이가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내 아이의 친구 내 아이의 이웃이 함께 행복해야 한다고. 내 아이 귀하다고 구중궁궐에 가두어 키우고 나쁜 환경 소위 나쁜 아이들로 부터 완전히 격리해서 살게 할 수 있느냐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아이가 건강한 가치와 자아를 가질 수 있도록 키우는 것이고, 더불어 남의 아이들에게도 마음을 열어 그 아이를 따듯하게 안고 갈 때, 나와 내 아이, 그리고 내 아이의 친구들과 이웃들이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물론 내가 한 아이의 멘토를 한다고 세상이 다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노력들이 결국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그렇게 보호관찰 받는 아이들이 저희 집에 와서 방학을 보내고 하면서 가장 달라진 것은 남편과 저희 집 아이들이었어요. 마음의 크기가 커지고 따듯해졌지요.
2월에 대학을 졸업하는 큰 아이가 중학교 때 그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만약 어른이 되고 이런 사람들을 만났다면 절대 마음을 열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언니 오빠들을 만나면서 제가 많이 변했어요. 지금까지 학교에서 소위 논다는 아이들을 보면 인생을 저따위로 사나, 싶은 것이 좋은 시선으로 볼 수 없었는데...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저 아이들도 우리 집에 오는 언니 오빠들처럼 많이 아픈, 상처가 큰 아이들이구나.... 그 아이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고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그 아이들을 도와주려고 노력하게 되었어요."
또 이 번 문제에서 또 하나 생각해 볼 것은 피해자도 가해자도 외적으로는 크게 문제가 있어 보이지 않는 가정이라는 것입니다. 가정이 해체된 것도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도 아닌... 아무 문제가 없어보이는 가정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들이 지금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행복했으면 합니다.
몇 년후, 소위 말하는 보장된 미래를 위해 몇 년을 담보 잡힌 채 공부만 하면서 사는 아이가 아닌, 지금 행복한 아이요. 아이는 행복이 무엇인 지 알아야 행복하고 싶은 열망을, 이 행복을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살거라 생각하거든요. 먀일 매일 공부만 하는 이 재미없는 세상에 아이들이 10년 후의 미래를 제대로 꿈꿀 수 있을까요?
자신이 행복한 아이는 누군가를 향해 주먹을,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을거라 믿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지금 제대로 행복하게 사랑해주십시요.
제가 쓴 글 중 하나를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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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부모여야 할까?
박선미 님의 「비상구(『오늘의 동시 문학』 수록, 21문학과 문화)」라는 시에서 그 답을 찾았다.
바깥에선 열리지 않아도
안쪽에선 언제나
쉽게 열려야 한다지
즉시
알 수 있어야 한다지
어두운 곳에서
환하게 불을 켜고 있는 비상구
아무리 큰 잘못을 했어도
용서해 주지
아무리 심술부려도
언제나 안아 주지
얼굴빛만 보아도
무슨 일이 있나 금방 알아차리지
언제나 급하면
달려갈 수 있는 비상구
우리 어머니
‘언제나 급하면 달려갈 수 있는’이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면서 내 아이가 혹여 세상사람 모두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내쳐져도, 모두가 외면하여 세상에 혼자 남겨진 듯한 기분이 들더라도 우리엄마만큼은 내 편이 되어줄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져준다면, 그래서 언제나 급하면 내게로 달려올 수 있다면…….
하지만 학교에서 만나는 많은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바로 이런 말이 아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말이라고 한다.
“어머니 학교에 오시라고 할까? 네가 한 일을 어머니께서 아시면…….”
“그 어떤 벌도 다 받을 테니 부모님에게만은 알리지 마세요. 다 할게요.
집에만 알리지 않으면 다 할게요. 부모님 아시면 정말 너무 실망하실 거예요. 절대로 안 돼요. 절대로.”
아이들은 부모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힘든지, 그 순간 자신에게 부모의 도움이 얼마나 필요한지 이야기하지 못한다. 자신에게 실망할 부모님의 모습이 가장 두렵기 때문에.
아이들은 수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자란다. 아이들에게는 실패,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벅차다. 하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들의 실패를 용서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괜찮아. 실수할 수 있고 실패할 수도 있어. 괜찮아. 다시 일어서면 되는 거야. 괜찮아, 정말 괜찮아.”
이런 말과 함께 품에 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주는 따듯한 위로를 바라지만, 아이들은 부모에게 손을 내밀지 못한다. 부모의 기대를 깨버릴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에게 실망할 부모에게 너무 죄송해서…….
간혹 들려오는 아이들의 극단적인 선택에 관한 안타깝고 마음 아픈 이야기들. 그 아이들이 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면, 위의 시에서처럼 마음속의 슬픔과 설움, 좌절감을, 상처받은 자존감을, 최선을 다했지만 인정받지 못한 억울함을 죄다 일러바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정말 그런 선택을 했을까? ‘바깥에선 열리지 않아도 안쪽에선 언제나 쉽게 열려야
한다지’라는 구절처럼 아이들에게 언제든 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아이가 열고 싶을 때 열고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면 말이다.
난 우리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들 스스로 학원이 필요 없다.”고 하더라는 설명까지 덧붙여 그렇게 말했더니, “선생님은 아이를 방치하시는군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는 단지 아이들에게 부모와 함께했던 추억을 만들어주고 열 살, 열다섯 살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일들로 채워가는 삶을 살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
20대 후반의 후배교사는 영화 <써니>를 보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저의 열일곱, 열여덟, 열아홉을 되돌아보니 제게는 추억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아침에 눈떠서 학교 가고 밤 9시 넘어서까지 야자하고 그리고 그 길로 과외하고……. 12시 넘어 집에 돌아와 숙제하고 잠 잔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는 거예요. 영화 속의 사람들처럼 추억이 없다는 생각을 하니 어찌나 눈물이 흐르던지요.”
또 나처럼 교직에 있는 한 제자는 이런 말을 했다. “저는 그 영화 보면서 선생님 생각 많이 했어요. 아이들에게 삶의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는 말씀이 제 귀에 맴돌더군요. 그리고 영화 속 주인공들 같은 추억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선생님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어요. 제가 첫 발령을 받았을 때 제게 그러셨잖아요. 학교 아이들
에게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라고……. 학교에서 친구들이면 몰라도 선생과 무슨 그렇게 재미있고 좋은 추억이 만들어질까, 솔직히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되었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선생님으로 인한 추억이 많더라고요. 아시죠? 다른 건 몰라도 ‘과학쌤’ 하면 제일 먼저 활짝 웃으시는 모습이 떠오른다는 거.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 추억이구나, 하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선생님 작은 딸이 엄마 별명을 늘 잘 웃어준다고 ‘모나리자 엄마’라고 지어주었다는 글을 블로그에서 읽고 저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지던걸요. 저는 엄마한테 잔소리 들은 기억밖에 없는 것 같은데…….”
나는 아이가 20~30대가 되어 열 살, 열다섯 살 때의 자신의 삶을 추억해볼 때 학교 가고 학원 가고 과외 하느라 종종거리던 기억밖에 없다면 나는 그 아이가 이른바 사회적인 성공을 했다 해도 진정으로 행복하지 못할 거라 생각한다. 아이는 지금 행복해야 한다. 지금 행복해야, 그리고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야 앞으로의 인생도 행복하고 싶다는 열망을 가지게 될 것이고 자신의 삶을 열정적으로 살아줄 거라 생각한다.
지금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데, 매일 공부만 하느라 힘들기만 한데, 몇 년 뒤의 행복을 위해 지금을 참아야만 한다는 것을 아이는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까?
부모인 우리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아이들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힘들 때는 부모 품에 안겨 엉엉 울 수 있는 아이이기를, 혹여 실패하더라도 부모와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들 덕분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아이가 되기를 바란다.
이 책의 원고를 처음 쓸 때 초등학생이었던 큰아이 예슬이는 대학 졸업
반이 되었고, 유치원생이었던 작은아이 정빈이는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예슬이는 자신의 꿈대로 디자인을 공부하고 있고, 정빈이는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삶을 채워가고 있다.
사람들은 묻는다.
“큰 애 어느 대학 다녀요?”
나는 대답한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디자인 전공요? 그런데 무슨 대학 다녀요?”
10년 전 이 책의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찾았을 때가 생각난다. 열 곳이 넘는 출판사에서 똑같은 이야기를 물어왔다.
“자녀 교육서의 필자라면 적어도…… 그런데 자녀분은 어느 대학 갔어요? 아님 외국으로 바로 갔나요?”
남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대학 진학이나 사회적 성취를 한 것이 아니어서 출판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서 나왔던 기억이 난다.
지금 또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물을지 모른다.
“아이가 어느 대학 다녀요?”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아이는 자신의 꿈을 찾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큰 아이는 동생에게 말한다.
“공부의 목적이 대학 입학이 되어서는 안 돼. 정말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한 준비와 과정으로서의 공부여야 해.”라고.
작은아이 정빈이는 아직 학원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학교수업과 금요일마다 도서관에서 하는 방과후 수업 ‘금요과학 터치’만 들을 뿐, 나머지 시간에는 만화와 영화에 열광하고 있다. 또 공책을 온통 만화와 낙서로 채우거나 만화 주인공처럼 차려입고 그 캐릭터를 흉내 내는 코스프레에 열정을 쏟으며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가 아이에게 부탁하는 것은 아침 같이 먹기와 일주일에 책 3권 읽고 글쓰기가 전부이고 나머지는 아이의 선택으로 채워지고 있다.
정빈이는 엄마가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신의 시험 기간만큼은 일찍 집에 와서 자신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이야기하는 아이다. 시험 잘 쳤느냐, 몇 점 맞았느냐, 내일은 무슨 과목을 치느냐, 공부는 제대로 했느냐 묻는 엄마 때문에 시험 기간만큼은 엄마와 마주치지 않기를 바란다는 아이의 친구는 끝내 우리 아이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더란다.
언젠가는 우리 곁을 떠날 그날까지 아이들의 삶에 따듯한 동반자이자 응원군이 되어주고 싶다. 그리고 “그 시절이,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했던 그 시간들이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제게 삶의 큰 힘이 되어주었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다.
나는 좋은 엄마이기보다 행복한 엄마, 행복한 아이들의 엄마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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