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마지막 날
큰아들과 데이트를 했다.
몇번 학교에서 만나자고 아이가 청했건만
하루도 시간을 낼 수 없는 처지기에 미루어 온 일이었다.
마침 학교에 갈 일이 있어 마음먹고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사진에서 그토록 빛나고, 고등학생들의 노트 앞 표지에서 반짝이던
샤대의 정문은 초라했다.
SK관으로 올라가는 길 햇빛은 쨍쨍,가을날의 데이트를 기대했는데...
좌측 구석에 입학관리본부라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그 푯말을 그냥 스쳐지날 수 없던 이유들이 생각났다.
'더 키친'에서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수업이 아직 끝나지 않은 아이를 벤치에서 기다렸다.
"엄마,어디야" 라는 문자가 온다."이눔의 자식 수업시간에 문자질..ㅋㅋ"
저쪽에서 스키니진을 입은 아이가 뛰어온다.
어려서 아무거나 입혀도 한마디 없던 애가 지금은 최고의 패션리더인양 온갖 멋을 낸다.
때로는 향수까지 뿌리고....
쟤가 내 아들이야? 집에서 보는 모습과 또 다르다.
아,나는 아이비스타일의 대학생이 좋은데..
멋을 부리는 것도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라기에 더이상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더 키친'에서 간단한 양식을 먹었다.
유럽의 카페를 옮겨다 놓은 분위기
음식의 맛 때문이었을까?
국제교류학생들 때문이었을까
학교 한가운데서 유럽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더 키친에서 나와 아메리카노와 와플을 들고 SK관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아메리카노'가 좋으신가요? 저는 아직도 콜라가 더 좋아요ㅎㅎㅎ..."
대학2학년이지만 아직도 정신연령은 초등 6학년정도로 느껴진다.
언제 성숙할지...
SK관은 기업에서 지어준 건물인데 SK텔레콤에서 올해 더 큰 건물을 붙여서 올렸다고 한다.
거리에서 마주치던 SK텔레콤 로고를 발견하니 신선한 느깜이 들었다.
유리창 너머로 LG관이 보인다.기업의 사회기여가 이렇게도 이루어지는군.
그동안 꼬박꼬박 내 온 핸드폰 요금이 아깝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건물을 짓는데 기부한 기업과 개인의 이름이 새겨져있었다.
"나중에 돈 많이 벌어 왕창 기부하고 이름를 새기는 사람이 되어라."
"근데 엄마도 소액기부 했어요? 내 이름이 기부자 명단에 있기에"
"응,총장님이 권유하시기에 기쁜 마음으로 소액기부... 네 이름으로 했어"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발전 기금 꼬박꼬박 냈던 기억
학교가 세금과 수업료로만 운영될 수 있을까..
부자라면 학교에 많은 기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건물은 초현대식 건물로 투명엘리베이터에 최상층 라운지가 인상적이었다.
마치 호텔 이규제커티브 라운지에 서 있는 기분....
학생들은 라운지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영어로 토론을 격렬하게 하고 있었다.
저 학생들 조기영어교육 1 세대일까?
다시 태어나 대학을 다시 다니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이 스쳐 지나간다.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자친구 이야기...내 딸처럼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딸이 없어서일까.
만약 딸을 키운다면 딸의 남자친구 이야기가 이토록 기쁘게 들리진 않았겠지...
요즘 대학은 무슨 공부를 그리 심하게 시키는지 맨날 시험이다.어제도 시험 내일도 시험.
요즘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한다.우리는 절대 아르비이트 하지 말라고 했는데...
초등학교 동창 정치외교를 전공하는 여학생인데,경제를 복수전공하고 싶어해서
경제수학을 일주일에 두시간씩 과외를 해준다고 한다.
"예쁘니?" "키가 179에 킬힐신으면...ㅠㅠ" ㅎㅎㅎ
그렇구나..
외고 나오고 외국 살다와서 외국어 2개 능통한데 외무고시가 아니고 행시를 보고 싶어한다고 한다.
외교관이라는 직업이 여성에게는 상당히 고달프고 결혼 하기 힘든 직업이라는 것을 알았다.
남편이 외교관이어도 같은 지역에 발령을 내주지 않아 남성들이 결혼상대자로 기피한다는 것이다.
여성 외교관하면 "우와~~했는데,그것이 아니구나!"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참 어렵게 키운 아들이다.
내 욕심보다 아이의 욕심에 치쳐가며 고달프게 키운 기억이다.
나도 참으로 욕심이 많은 사람인데...따라 갈 수가 없었다.
아이를 키우며 눈물도 많이 흘렸고 가슴 앓이도 많이 했다.
물론 사춘기 겪고 지나며 아이에게 상처도 많이 받고 나 또한 상처를 많이 주었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서 솔직히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슬펐다.
아이는 나의 십자가요.내 무거운 짐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내려놓고 싶은 무거운 짐이었지만 어디 내려둘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굴리기도 했다.
무거운 짐을 일단 내려놓았지만 또 짐을 싸야할 것 같다.
10월 첫날
우리 아이들을 위한 묵주의 구일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해 주었고 하늘이 도와주심에 그날들을 견디며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육아일기 아닌 교육일기
일기는 일기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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