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이 일어날 뻔 했다.
이나이에 부부싸움 하느니,내가 웃지...하고 넘기고, 부부싸움을 안한지 4년이 넘어가는 것 같다.
완벽주의자 남편과 평범하고 둥글둥글한 내 성격, 어지간하면 내가 참고 버티며 살아왔다.
결혼 하면서 아파트를 분양받고 중도금을 내려고 대출을 받았는데 남편이 그 돈으로 주식투자.
주식은 떨어지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겨우 중도금 마련하고 그 때 산 20년전 주식이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 주식은 내 손으로 들어오고 큰아이 초등 저학년 시기 한때 주식에 열을 올렸다.아이들 교육은 뒷전.
요즘은 온라인 거래를 하지만 객장도 자주 드나들었다.참 한가한 시절이었다.주식도 한가한 사람이 하지
지금 같으면 손에 그냥 쥐어주며 하라해도 못한다.아이들 이미 모두 키웠지만 바쁜 생활을 하다보니...
증권회사 지점장까지 하셨던 아버지를 보고 자라며 절대 주식은 하지말리라고 다짐을 하며 살았건만
투자 해보니 역시 주식으로 돈을 불린다는 것은 허망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십몇년전 펀드가 처음 나왔을 때 현 미래엣셋 회장인 박현주펀드 1호에 투자를 했다.
박현주 펀드 1호는 1년만에 두배가 되었지만 다음해 재투자 결과 은행금리 수준의 이익을 남기고
겨우 본전 찾은 것에 감사해야했다.역시 주식, 펀드...너무 허망한 것이었다.
다행인 것은 주식,펀드에서 손실은 없었고 본전에 은행이자 정도 남았다.어휴~그냥 은행에 넣을껄~
10년전부터 남편 직장을 옮기며 받은 퇴직금과 결혼 초부터 하던 주식을 종자돈으로 재태크를 시작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재태크가 아니고 착실히 그저 저축을 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친정엄마가 아이들 키울 때는 절대 주식을 하지 말라는 조언을 하셨다.
목돈을 모두 우체국 예금보험에 넣었다.그냥 집에서 가까워서 넣었는데 2년후 대박이란 걸 알았다.
금리는 팍팍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5년짜리 비과세...
그당시만 해도 년 9% 대의 금리에 5년 비과세 상품,요즘은 꿈도 꿀 수 없는 고금리였다.
10년전 부터 맞벌이를 시작했다.역시 맞벌이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을 하며 돈관리에 무심해지고 특별한 재태크없이 CMA(은행에 넣으면 이자가 한푼도 없지만 CMA는 이자가 아주 조금 날마다 불어난다)에 모아 일정금액 즉 5000만원(예금 보호자 한도)이 되면 은행보다는 상당히 금리가 높고 복리계산이 되는 제2금융권에 하나,둘 통장을 만들기 시작했다.한개 5천만원 10개 까지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월급쟁이 소득에서 목표에 달성하기는 절약 밖에는 없었다.특히 애들 사교육비 절약이 일등 공신이었다.
통장는 나의 꿈이었다.'꿈'은 다름아닌 아이들 장래의 '교육'
처음 통장을 만들 당시의 환율로는 아...이 통장 하나에 조금만 보태면 우리 아들 미국에서 1년 공부할 돈!
이런 생각을 하며 통장을 만들었다.그 당시는 학부유학을 계획했기에 도대체 통장을 몇개를 만들어야 하는
것인지...앞이 캄캄했다.그러나 하늘의 도우심으로 아이는 국내대학으로 진학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생각이 얼마나 통 큰 계획이었는지...
물론 지금도 은행에 한푼 두푼 저축하며 우리 애들 생각을 한다.어차피 아이들 교육에 들어갈 돈이란 생각.
정말 꼭 필요한 곳에만 쓰고 안쓰고 모아 목돈을 만들고 제 작년 남편에게 공개를 했다.
완전 기절하는 듯한 모습,,,그러나 일주일전 재태크 없이 안쓰고 그냥 차곡차곡 모은 돈이란 이야기에
큰 싸움 날 뻔 했지만,,,그저 내가 웃었다.고맙다고 큰 절을 해도 부족할 판에!!!!
남편말에 의하면 안먹고(?) 안쓰고 ...안먹은 것은 아니지...우리집 처럼 먹는 것을 중시하는 집이 있을까?
앵겔계수가 상당히 높은 편인데...안먹고 안썼다는 것은 우리집 TV는 15년전에 산 삼성 명품 TV..ㅋㅋ
잘 나오는데 바꿀 이유가 없었다,TV는 애들 어릴 때 DVD보는 용도일 뿐이고....
부부싸움 날 뻔한 이유는 PB상담을 받으라고 했는데,그냥 두었다는 것이다.
멋진 PB룸에서 무슨 상담을 받을까? 주식,채권,예금,부동산...
안 들어도 뻔한 이야기겠지....
큰 금액은 예금이나 채권으로 하고 회전주기 때마다 예금 이자나 채권으로 적립식 펀드를 운용하라고
권유하겠지...다 해보았지만 별거 없잖아.
남편에게 신혼초 내가 굴리던 주식을 미련없이 선물로 주었다.엄마 말씀이 애들 키우며 주식하지 말라고..
아...그때 가지고 있던 삼성전자,물론 지금도 가지고 있지만 물론 주식계좌의 운용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다.주주총회가 열리는 봄이 되면 집으로 날아오는 주주총회,배당금통지서등으로 무슨 무슨 주식이 있구나! 알고 넘어갈 뿐.그러나 상당히 큰 액수라는 것을 예감한다.(내 기준에서 생각할 때)
계란을 한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 원칙을 배웠다.
주식은 남편이 하고(실은 이 주식은 내 돈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남편도 뭔가 가져야한다는 생각, 나이들어 허전할 것 같아서...) 은행에 저축하고 집있고...
그런데,그저 안먹고 안쓰고 모았다는 말에 화가 벌컥났다.
요즘 내 마음 평온하여 그저 웃고 말았지,아니면 화 풀이 한번 제대로 하는건데...아쉽다.
요즘 주식,채권,원화가치 트리플 강세라더니...
헐...주식 떨어질 땐 조용하더니.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엄마표라는... 애들 교육에 내 머리의 반을 빼앗긴 상태에서
최고의 재태크는 그저 은행에 저축하는 길이 진리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제2 금융권의 금리는 4.5% 10월이 되면 만기가 돌아오는 예금이 많아 금리가 오르곤 했다.
그러나 한국은행에서는 금리를 내리고,아직까지는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탄천이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세컨드 하우스를 사두었다는 지인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하철 완공되면 강남에서 30분 어쩌구 저쩌구...가 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돈 모아 늙어서 호의호식하자는 건가? 늙어서는 교원연금으로도 우리 부부 먹고 살기에 충분하다.
때로는 젊어서 돈을 써야지 늙어서 무슨 재미로 돈을 쓸지...한해 한해 늙어가며 안타깝기도 하다.
자식 교육을 생각하며,하고 싶은 공부 뒷바라지 해야하니..
십몇년전 박현주 펀드와 인연을 맺은 '미래에셋' 에서 상경계 대학생에게 유학자금을
지원해 준다는 공고가 해마다 난다.그러나 부모 연소득 7천만원 이하...실은 연소득 1억이 넘어도
월급쟁이 통장에 찍히는 액수는 뭔가 계산 착오가 있는건 아닌가? 할 정도의 액수다.
솔직히 부모 연봉이 1억이 넘는다 해도 자식 유학 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노후도 생각해야 하니 말이다.공부 많이 시켰으니 노후 책임지라고 할 수는 없고...
그저 평범하게 대학 졸업하고 취직하고 결혼시키는 부모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평범한 것이 가장 아름답고 편한 삶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요즘은 장학금 한푼 받지 못하던 딸래미 학자금 대출없이 등록금 대주시던 부모님 생각이 난다.
과연 우리 애들 교육비 얼마나 비축해 두어야 할지.....
Don't Put Your Eggs in One Basket.
Don't Put Your Eggs in One Basket.
서울대 서양사학과 주경철 교수님 글의 일부인데,저는 이글을 읽으며 남다른 감동을 받았어요.
이 글을 보면 현재 우리 사회의 엄청난 교육열이 적어도 백 년 전에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양반ㆍ상민의 구분이 사라져서 공부만 열심히 하면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주장이니, 그 시대에 이것은 정말로 혁명적인 사고방식이 아니었을까? 아닌 게 아니라 20세기 이후 우리나라의 역사는 교육을 통한 사회 변동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비록 지금은 가난하고 비천하다 해도 열심히 공부하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고, 혹시 내가 이루지 못 한다 해도 내 자식 대에는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6.25전쟁 중에 피난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사는 동네에서도 천막으로 학교를 짓고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모습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우리가 아닌가.
현재 중년에 이른 사람들은 대개 이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내 선친께서는 동네에서 작은 의원을 운영하신 의사셨다. 지금의 의사는 어떨지 몰라도, 모두들 어렵게 살던 1960년대에는 동네 의원이라는 것이 구멍가게 수준이어서 때로는 생계유지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때 아버지의 캐비닛 안에는 돈 통이 두 개 놓여 있었는데, 하나는 생계를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 교육을 위한 것이었다. 환자를 한 명 보고 나면 왼쪽 돈 통으로 입금하고, 다음 환자를 보고 나면 오른쪽 돈 통으로 입금했다. 어머니의 평가대로 “정말 책임감이 강한 사나이”였던 것이다.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최 빈민 국가에서 오늘날 이런 정도로 우리나라가 발전한 것은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세대의 교육 투자 때문이었다고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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