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건보다 미남이시며, 생각도 반듯하신 진보적 성향의
서울대 로스쿨 조국교수님
학문과 사회참여, 이 둘은 나의 의무”
사회적 발언 계속하는 한편
복지국가 법률적 기초 연구
‘넌 어느편’ 편가르기식 사고
한국사회 생산적 논의 막아
![]() 동아일보 창간 90주년 특집 기획 ‘2020년을 빛낼 대한민국 100인’으로 선정된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13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났다. 활발한 사회활동을 펼치고 있는 조 교수는 학문과 함께 ‘앙가주망(사회 참여)’을 자신의 의무로 꼽았다. 홍진환 기자 |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해 강연이나 기고 등을 통해 발언을 아끼지 않는다. 저술, 번역도 많다. 그동안 국문 논문만 60여 편에 이른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45)에게는 어느새 ‘진보적인 법 전문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동아일보 창간 90주년 특집 기획 ‘2020년을 빛낼 대한민국 100인’으로 선정된 조 교수는 13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학문과 ‘앙가주망(engagement·사회 참여)’은 나의 의무”라고 말했다.
“사회적 참여를 하면서 복지국가에 필요한 법률적 기초를 연구하려고 합니다. 2020년의 한국은 사회권이 실현돼야 합니다. 육아·교육, 취업, 주택, 노후 등 정치적 좌우를 떠나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잖아요.”
조 교수는 1980년대 말 대학원 조교로 있으면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로맹)’을 도왔다가 199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5개월간 구치소생활을 했다. 그는 “사로맹 핵심 간부였던 백태웅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교수가 고향·학과 선배여서 자금 지원과 글을 써주기도 했다”며 “나는 사로맹에 이견도 있었다. 세상 살이가 그것(사상)만 갖고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으로 일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는 조 교수는 한국 사회의 생산적 논의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과잉 정치화’를 꼽았다. 정책을 두고 사실 여부와 적실성(的實性·현실에 도움이 됨)을 따지기에 앞서 ‘너는 어느 편이냐’를 묻는 ‘진영론적 사고’가 횡행하고 있다는 것.
“제2차 세계대전 뒤 프랑스의 샤를 드골 대통령은 좌파적 지식인 앙드레 말로를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합니다. 말로는 현재의 ‘문화 프랑스’의 기초를 닦았어요. 한국 사회도 정당들이 정치적 욕설 교환을 통해 ‘너는 어느 편’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표를 확보하려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해요. 어느 정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좌우 진폭이 큰 것보다 합의의 영역이 넓은 사회가 바람직합니다. 보수적이라는 동아일보가 진보적으로 분류되는 나를 100인 중 1명으로 선정한 것도 소통과 상호인정의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조 교수는 인권 문제에 대해 “‘촛불시위’의 표현의 자유, 북한 인권 문제 등 큰 이슈에만 관심이 있는 경향이 있는데 ‘임신한 여고생이 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할 권리’ 등 작아 보이는 부분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상대적으로 젊고 서울대 교수라는 ‘간판’ 때문에 “곧 현실 정치에 뛰어드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많이 받는다. 조 교수는 “정치인은 어떻게든 51%의 표를 얻는 것이 목적이지만 지식인은 10%의 지지를 받더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해야 한다”며 “‘일회용 불쏘시개’가 되는 일은 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의 연구실 탁자에는 거친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하는 모습 위에 ‘운명은 겁내지 않는 자를 사랑한다’는 경구가 인쇄된 사진이 유리판 아래 깔려 있었다. 조 교수는 “연구실을 찾는 학생들이 보라고 놓은 것”이라며 “청년들이 공무원 같은 안정된 직장을 얻기 위해 ‘스펙 쌓기’에 열중하기보다는 창의성을 갖고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분야에 뛰어드는 과감함을 가졌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조종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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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성교수님 어머님은 아드님이 '엄친아'라는 사실을 알고 계실까?
한번 사는 인생이라면 이렇게 자신을 불태우며 살아가기를....
축구·야구·농구… ‘체육과 교수’로 불릴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
10년 전 취미 삼아 발레 배워 공연까지… ‘예술경영’이론도 연구
앨빈 토플러와의 특별 대담도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지난해 5월 17일 오후 5시 서강대 메리홀. 우리나라 나이로 예순을 맞은 한 교수가 위아래로 딱 붙는 까만 색 타이즈와 망토를 두르고 거대한 무대 위에 섰다. 머리는 희끗희끗했지만, 그의 발엔 발레 토슈즈가 신겨 있었다. 음악이 나오자 교수가 발과 몸을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무가 조기숙(이화여대 무용과 교수)씨가 기획한 발레공연 ‘백조의 호수-사랑에 반(反)하다’ 무대에 선 조동성(趙東成·60)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였다.
그가 맡은 역할은 ‘불신’을 상징하는 마왕(魔王). 오데트 공주의 아버지인 마왕은 이 공연에서 불신과 저주, 번민, 복수를 상징하는 4명의 인격체로 등장한다. 그가 등장하는 장면은 전체 65분 공연 중 2분 남짓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는 그 순간을 “식은땀이 가득 흘렀다”고 기억했다. 수천 명의 청중 앞에서 숱하게 경영학 강의를 해온 ‘경영학의 대가’는 전 같지 않게 몸을 떨었다.
공연이 끝나자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500여명의 관중 가운데 100여명은 그의 첫 발레공연을 축하하기 위해 온 제자와 지인들이었다. 지난 석 달간 저녁시간마다 이화여대 체육관에서 2~3시간씩 발레연습을 하며 쏟은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photo 이경민 조선영상미디어 인턴기자 1949년 서울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경영학 박사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산업정책연구원 원장, 한국국제경영학회 회장, 한국전략경영학회 회장, 한국여가문화학회 회장,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 한국경영학회 회장 역임
현)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엄친아 cho!’
‘최강 동안!’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cho!’ ‘언제나 열정적인 교수님 존경합니다’….
지난 7월 28일 찾은 조동성 교수의 연구실 창가엔 이 같이 쓰인 알록달록 한 색종이 6~7개가 붙은 종이 액자가 놓여있었다. 조 교수는 “학생들이 그냥 보낸 것”이라며 별 거 아니란 듯 웃었지만, 학생들이 ‘최강 동안’ ‘엄친아’라는 찬사를 보내며 열광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발레하는 60대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학교 안팎에서 ‘경영학의 대가’로 잘 알려진 그는 “나는 단지 발레를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생각했을 뿐이었다”고 말했다. 다만 지난해 처음 발레무대에 서면서 비로소 ‘예술이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가 ‘운동의 하나’로 발레를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1978년 서울대로 부임한 조 교수의 별명은 ‘서울대 경영학부 체육학과 교수’. 그의 승용차 트렁크엔 늘 농구공과 배구공, 축구공, 배드민턴공 등 온갖 체육 도구들이 가득했다. 강의를 끝내고 시간이 나면 학생들과 어울려 서울대 대운동장에서 땀을 흠뻑 흘렸다. 한때 동시에 12개 체육 동아리의 지도교수를 지냈을 만큼 관심이 각별했다.
그는 자신의 다리 뒤꿈치 위쪽 아킬레스건을 한번 만져보라고 했다. 1㎝ 넘게 두꺼운 근육이 만져졌다. 보통 사람들의 아킬레스건을 만지면 일반적으로 3㎜ 안팎의 얇은 근육이 느껴진다. 양쪽 종아리 중간까지 8㎝ 정도의 선명한 수술자국도 있었다. 그는 “아킬레스건이 모두 끊어져 수술을 해 이렇게 두꺼워졌다”고 했다. 오른쪽 다리 아킬레스건은 테니스를 하면서, 왼쪽 다리 아킬레스건은 농구를 하면서 끊어졌다.
전문 스포츠선수도 아닌데 아킬레스건이 끊어질 만큼 격하게 운동을 하다니 선뜻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웬만한 운동은 다 섭렵했을 만큼 ‘스포츠맨’으로 유명했다. 경기고 시절 교내 수영대회는 물론 교내 단축마라톤 대회도 출전했고, 친구들과 어울려 당구와 씨름을 즐겼다. 태권도 유단자(초단)이기도 했다. 스스로 “공부 빼고 다 한 것 같은 학창시절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서울대 상대에 진학한 뒤에도 그는 학생회 체육부장을 맡아 단대별 체육대회를 치르는 등 열정을 쏟았다. 배드민턴 동아리에서도 활동했고, 단대 대항 운동회에서 800m 달리기 부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는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면서 느끼는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고 했다.
유학시절엔 레스토랑서 ‘기도’로 알바
미국으로 유학간 뒤부턴 운동과 담을 쌓고 지냈다. 논문과 연구에 파묻혀 지내느라 운동할 틈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하버드대학이 있는 보스턴 시내의 한 한인 태권도장에서 사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거의 무급에 가까운 자원봉사였지만, 그에겐 유일한 낙이었다.
한창 태권도 사범으로 재미를 붙일 무렵 뜻밖의 고소득 아르바이트 제의가 들어왔다. 한 40대 미국인 태권도 제자가 조 교수에게 “잠깐 우리 식당에서 일해볼 생각이 있냐”고 물은 것이다. 그의 단단한 몸과 날렵한 움직임을 눈여겨본 레스토랑 사장이 식당 입구를 지키는 이른바‘기도(木戶·문지기)’ 역할을 맡긴 것이다.
일주일에 두 번 8시간씩 까만 양복을 입고 1년간 식당 문 앞을 지켰지만, 다행히 정작 ‘힘’을 쓸 일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수입은 쏠쏠해서, 그곳에서 일하면서 1년 동안 무려 5000달러를 벌었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약 5만달러에 가까운 거금이었다. 장학금을 받으면서 학교에 다녔지만, 아내와 아이 셋이 있던 그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생활비였다.
그가 인생의 ‘씨줄’과 ‘날줄’ 원리를 알게 된 것도 이때부터라고 했다. 공부와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활동들도 나중에 하나 둘 모이면 결과적으로 다 내 공부와 연관이 되더라는 교훈이었다. 씨줄이든 날줄이든 어느 하나만으론 옷감을 짤 수 없듯, 한쪽의 경험만으로 세상을 배울 순없다는 이치였다고 했다. 그는 그때부터 씨줄과 날줄을 견고하게 잇고 엮는 작업을 몸으로 익히겠노라 다짐했다.
“삶은 씨줄과 날줄로 이어지는 것”
그가 발레를 처음 접한 건 1990년대 말이었다. 구기 종목이 아닌 새로운 운동을 해보고 싶었던 조 교수는 동네 근처의 댄스스포츠 학원에 등록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빠른 리듬의 댄스는 영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동작 따라하기에 급급한 조 교수에게 강사가 “그러면 리듬과 몸의 움직임을 배울 수 있는 발레를 해보라”고 권했다. 발레는 스포츠댄스보다 상대적으로 동작이 느릴 뿐 아니라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에 대한 기초 자세를 가르쳐준다는 것이었다.
쫙 붙는 타이즈에 토슈즈를 신고 조 교수는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 1시간씩 시간을 내 학원을 찾았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여고생들과 섞여 발레 스트레칭과 기본 동작을 익혔다. 그렇게 넉 달 넘게 발레를 배우고 나니 몸이 곧아지고 컨디션이 한층 좋아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했다.
“발레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아세요? 다른 운동은 보통 근력이면 근력, 심폐강화면 심폐강화, 특정 부문에 강하잖아요. 그런데 발레는 근력에 심폐강화, 리듬감까지 한 번에 모두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운동이더라고요. 게다가 발레의 기본동작이 허리를 쫙 편 채 머리는 하늘로, 발끝은 땅으로 뻗는 자세잖아요.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긴 제겐 이보다 더 좋은 운동이 없었습니다. 예전엔 허리도 아프고 목 디스크까지 있었는데, 발레를 하고 나니 고질적인 목 통증도 사라지고 몸을 바르게 하는 습관도 갖게 됐어요.”
▲ 발레 ‘백조의 호수’에서 ‘마왕’을 맡아 공연하고 있는 조동성 교수(맨 오른쪽) 발레의 ‘묘미’에 한껏 취했지만, 연구 활동에 바빠지면서 조 교수는 한동안 발레를 잊고 살았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2005년 2년 임기로 한국학술단체연합회 회장직을 맡게 되면서 그는 ‘운명적’으로 발레와 조우했다. 당시 그는 총 560여개 학회 연합의 수장을 맡아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과 예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학제 간 세미나’와 ‘통합학술대회’를 이끌고 있었다.
“2007년 100여개 학회가 모여 통합학술대회를 열었는데, 워크숍 저녁 때 한국무용학회에서 댄스파티를 개최했어요. 회장이었던 제가 앞장서서 춤을 췄죠. 그걸 본 조기숙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가 ‘어떻게 춤을 그렇게 잘 추냐’고 했고, ‘발레를 조금 배웠다’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조기숙 교수가 ‘춤을 중단하지 마시고 계속 배우라’고 조언하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지난해 조기숙 교수의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에 참여하게 된 겁니다.”
스포츠로 시작한 발레, 예술을 만나다
이제 그에게 발레는 단순한 운동을 넘어선 그 ‘무엇’이 됐다. 발레가 그에게 ‘예술을 통한 자기 경영’이란 새로운 영역을 알려준 것이다. 조 교수가 ‘백조의 호수’ 공연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지자, 제자가 공동 소설집필을 권유해 지난해 국내 최초의 자기계발 소설 ‘장미와 찔레’를 출판하기도 했다. 내년엔 안중근 의사 서거 100주년을 기해 연극무대에 올릴 극본도 쓰고 있다.
현재 조 교수는 ‘예술로서의 발레’를 어떻게 경영학의 한 분야로 통합할 수 있을지 골몰하고 있다고 했다. 예술의 창조성을 경영학으로 끌어들여 지속 가능한 접점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조 교수는 자신의 대표적인 경영학 이론인 ‘M이론(메커니즘 이론·기업의 성공을 결정하는 요소로 기업 주체(S)와 산업환경(E), 자원(R) 외에 이를 모두 포괄하는 특정한 메커니즘(M)이 있다는 것)’과 더불어 ‘예술경영’을 이론화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오는 9월 서울대 경영대학원(MBA)에서 ‘Management by Art(예술경영)’ 과정을 열게 된 것도 그의 이 같은 구상이 반영된 것이다.
“예술의 창조성은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 반복에 대한 혐오, 무량대수적인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발레를 통해 제가 배운 것도 이런 정신이었어요. 이제 경영학이 주목하게 될 것은 ‘혁신’이 아닌 ‘창조’입니다.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뭔가 ‘빵(Box-Out)’ 터지게 하는 거죠. 제한적인 범위(Box-in)에서 움직여야 하는 ‘혁신’은 한계가 있거든요. 이런 경영학의 트렌드를 뒷받침할 수 있는 방법론을 바로 예술의 창조성에서 찾은 겁니다.”
‘예술경영’은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특정한 메커니즘(M)을 찾는 그의 장기적인 연구 과제와도 긴밀히 연결될 예정이다. 한번 고착화되면 바꾸기 힘든 기업의 메커니즘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힌트를 주는 것도 예술의 창조성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9월에 MBA 과정을 개강하면 대학원생들에게 제가 나온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 테이프를 보여줄 거예요. 전문 무용수들이 나오는 발레공연이라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겠죠. 하지만 비디오에 제가 토슈즈를 신고 나오면 학생들이 박장대소를 하고 뒤집어질 겁니다. 창조성은 바로 이 순간, 두려움을 없애고 기존의 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데서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봇물 터지듯 나오는 학생들의 아이디어가 바로 경영학의 자산이 되는 거죠. 저는 이런 믿음을 그저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는 교수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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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 이분의 좋아하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따뜻함이다.
남편의 소개로 시골의사 박경철님의 글을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인간을 소중히 하는 삶......
따뜻한 마음을 가진 시골의사이시며 경제면 경제,문학이면 문학,예술이면 예술의 전문가적 지식..
우리 애들이 이분처럼 살았으면,틀에 박힌 삶을 살지 않았으면 하고 몇번이나 생각했다.
이 책은 그동안 지은이의 블로그에 <인생>이라는 코너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모은 것이다. 시골 외과의사가 병원이라는 풍경 속에서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건져 올린 35개의 에피소드는 우리가 찾는 삶의 진정성은 삶 그 자체에 있다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지은이는 의사로서, 아니 의사이기 때문에 목도해야 했던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생생한 날것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인생은 이런 것이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애써 군더더기 설명을 달거나 에둘러서 가는 법이 없고, 어쭙잖은 감상이나 연민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아마도 울다가, 웃다가, 어느새 다시 조용히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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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평론가 박경철 씨는 '통섭(通涉)'의 철학을 일찍부터 자신의 공부에 접목시켰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여러 분야를 두루 통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원리다. 사진=조영철 신동아 기자 |
"니체가 이렇게 말했죠. '네게 닿지 않는 것에 선의(善意)를 갖고 대하면 언젠가 그것이 네 것이 된다'고…."
촌스러운 폴로 티셔츠를 입은 경제평론가의 입에선 예상 외로 '프리드리히 니체'의 경구가 흘러나왔다. 경제평론가로 유명한 '시골의사' 박경철(43·경북 안동 신세기병원 원장) 씨. 의사이면서도 정작 증권시장에 발을 담근 이들 사이에선 경제 전공자보다 더 신뢰받는 그다. '도대체 어떻게 공부했느냐'는 평범한 질문에 대한 대답치곤 현학적이었다.
성공한 투자자에게 어울릴 듯한 서울 강남의 대형빌딩이 아닌 강북의 자그마한 공부방(오피스텔)에서 만난 그는 "은퇴가 머지않았다"고 읊조렸다. 그는 자신의 투자경험과 이론을 기록한 새 책 '주식투자란 무엇인가'를 막 탈고한 상태였다. 피로감이 몰려 온 탓일까.
"현자(賢者) 피터 린치의 은퇴 시점이 47살이었어요. 자신의 행복과 명예를 지킨 절묘한 선택이죠. 저도 그처럼 적절한 시점을 찾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대학에서 공부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10년 전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알린 뒤 그의 활약상은 증시에 발을 담근 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두드러졌다. 지난해에는 대한의사협회 대변인, 민주당 공천 심사위원 까지 활동의 폭을 넓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그는 '2007년 9월 한국증시 고점론'과 상하이 지수 6000포인트 돌파 시점에 '중국 증시 거품붕괴' 경고를 시장에 내보내는 등 탁월한 예측 능력을 선보였다. 그의 발언을 조금 신중하게 받아들인 개미투자자라면 현재의 금융 위기국면에서 남들보다 타격이 적을 지도 모르겠다.
경북 안동의 평범한 외과의사 출신으로 성공한 투자자인 그에게 이젠 '시장전망' 혹은 '경제풍월'과는 조금 다른 질문을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도대체 그가 전공도 아닌 분야에서 어떻게 시장에 대한 분석능력과 전문적 식견을 갖췄는지는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평생학습'을 목표로 하는 현대인들에게 그의 성공사례는 훌륭한 교과서가 될 수 있을 터이다. 자신의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 특별한 노력을 통해 쌓아올린 지식. 오늘의 '박경철'을 가능케 한 남다른 '학습 방법'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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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문학습과 집중력
"어릴 때 반강제적으로 서당에 끌려가 사자소학(四字小學)과 명심보감(明心寶鑑)을 배웠어요. 어릴 때의 한문 공부가 텍스트를 재해석하는 습관을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이 과정에서 음과 뜻을 따로 떼어 놓고 이를 차근차근 재결합해 나가는 '독해 능력'을 배웠다.
"텍스트 재해석이 하나의 습관이 된 거죠. 이게 저자의 진짜 의도인지 의심을 하게 되고, 그런 트레이닝을 위해서 아이들에게도 한문 공부를 중요시 합니다."
실제로 그는 현상을 '재해석'하는 일에서 남다른 능력을 과시해 왔다. 1997년 휴대전화를 처음 접하고 남들은 "무거워서 실용성이 없다"고 말할 즈음, '이동전화 시장이 마치 인터넷처럼 커질 수 있겠다'는 확신에 장외시장에서 이동전화 주식을 매집해 수백 배의 차익을 남기기도 했다.
한문학습과 함께 어릴 때 익힌 학습법은 집중력.
"시골에서 '똑똑하다'는 소리 들으며 크다가 큰 도시(대구)로 진학하니 내 재능은 평범하더군요. 그래서 중학생 시절 다른 아이들보다 집중력을 더 발휘해 보자고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조금 일찍 깨달은 셈이죠."
책을 읽을 때도 그는 제목만 봐도 되는 책, 30분도 안 걸리는 책, 음절 하나 단어 하나 까지 씹어 먹어야 하는 책을 분류해 맞춤 방법으로 공략한다.
그의 안동 본가에는 그가 읽은 책 1만 여권이 서가에 꽂혀 있다. 아직도 그는 인용해야 할 책과 해당 대목이 생각나면 정확하게 책 더미 속에서 찾아 낼 수 있는 기억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게 다 일찍 습득한 집중력 덕분이었다고 말한다.
○ 지식을 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집념
하지만 이 역시 너무 평범하다. 결정적 비법은 없을까.
"제가 조금 집요한 면이 있죠. 30대 초반 대전에서 고용의사를 하던 무렵이에요. 금강에서 누군가 대낚시로 잉어를 잡아 올리더군요. 저도 꼭 그렇게 하고 싶더군요. 곧장 '찌맞춤의 원리' 등 이론서 십여 권을 사고 낚시 전문지 구독을 신청했어요. 빨간 줄 그어가며 이론서들을 독파한 거죠. 낚시의 원리를 깨우치고 나서야 낚싯대를 구입했어요."
그의 '낚시학' 정복 과정은 처절할 정도로 집요했다. "침대에 누워 내가 물고기라면 어떤 떡밥을 좋아할까?"하는 것까지 고민했다. 병원에서 쓰는 영양제는 실험용 떡밥이 됐고 의사로서의 해부학적 지식 역시 어류(魚類) 이해의 밑천이 됐다.
그러다 문득 낚시를 평생 취미로 삼기엔 시간낭비가 너무 심하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낚시는 잉어를 잡을 때까지만 하겠다"고 선언한 뒤 그해 4월부터 9월18일까지, 심지어 태풍이 몰려와도 잉어를 낚기 위해 퇴근 이후에는 무조건 낚시터로 향했다.
"그해 9월18일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겁니다. 제 손으로 잉어를 잡아 올린 날이거든요. 아직도 제 병원 냉동실에 보관돼 있습니다. 껄껄. 그리곤 낚시를 딱 졸업했습니다."
그의 관심사는 미추(美醜)와 호오(好惡)를 가리지 않는다. 대신 단순히 소비할 것이 아니라면 철저히 연구해 반드시 정복한다. 어떤 지식이건 결국 다른 지식과 맞닿아 있고 그 지식은 언젠가는 새로운 영감으로 변해 돌아온다. 결국은 지식을 도구화하는 학습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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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각기관 일깨우기
그렇다면 모든 지식과 잡학(雜學)이 인생에 도움이 될까. 그의 대답은 "그렇다"에 가깝다.
대학 시절 그의 별명은 '퀴즈의 제왕'이었다. 퀴즈동호회를 중심으로 PC통신에서 활동했다. 그 당시 그가 가장 싫어했던 퀴즈는 음악에 관련된 문제였다. 트로트나 김광석의 선율에 익숙했던 그의 귀에 클래식이란 넘을 수 없는 산 같았다. 어느 순간 그것을 반드시 극복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클래식 매니아인 친구에게 클래식 입문용 명반 100장을 추천 받았어요. 그날로 곧장 음반 매장에 가서 레지던트 한 달 치 월급을 투자했습니다. 그 뒤로 수술할 때나 차트 정리할 때 반드시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음악을 하루 20시간 가량 들었어요. 4개월이 지나니 멜로디가 머리 속을 떠다녔고, 6개월이 지나니 그 음악을 다시 듣고 싶다는 감흥이 일더군요. 꽈배기처럼 꼬였던 선율들이 하나씩 풀어지고 악기들이 하나씩 귀에 꽂힌 거지요.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겁니다."
이런 노력 이후 그에게 찾아온 변화는 놀라웠다.
"저는 시간이 아까워 골프도 안치고 술도 안 먹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감정을 주체 못할 경우가 있잖아요. 환자를 접해야 하는 저는 특히 더 그랬어요. 누군가와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지 않아도, 모차르트 레퀴엠만으로 때론 감정을 정화하고 고양시킬 수가 있게 된 거죠. 이런 느낌은 돈의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주요자산이 됐습니다."
정보가 길에 널린 시대다. 그는 이런 시대엔 예술에 감응하는 '감각기'가 지혜에 다가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공부에 꼭 필요한 덕목이 바로 '감각기'입니다. 그림 앞에서 눈물 흘리고 음악을 듣고 가슴이 따뜻해지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배울 수는 있겠지만 자신의 독창적인 무엇은 창조할 수가 없는 법이거든요."
○ 경제학과 상상력
공부에는 일정한 과정이 필요하다. 일종의 탑 쌓기와 비교할 수 있겠다. 구름 위를 뚫고 올라가면 '위대한 학자'로 칭송 받는다. 적어도 남들보다 조금 더 쌓아도 경쟁력을 인정받는다. 그런데 단순 '학문의 탑'이 아닌 '시장'에서는 조금 다른 기준이 적용될지 모르겠다. 많이 공부하고 학식이 높다고 해서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네이버 검색창만 두들겨도 이제는 유명 경제학자들의 이론이 튀어나오는 세상이에요. 절대로 자신의 학문만 파고든다고 일정 수준에 오를 수 없는 시대가 됐어요.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삼아야겠지만 마지막 최후의 벽돌이 필요합니다. 나의 사유와 이론을 담은 새로운 그 무엇. 그게 바로 '영감(靈感)'입니다. 영감이 없는 사람은 상상력이 없는 거죠. 현상을 파악하는 총체적인 사유가 필요해요."
그도 한때는 '한 발 앞선 정보'와 '경제학적 지식'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1993년 처음 주식을 시작했을 때는 친구들과 스터디 모임을 결성해 마치 의사고시 준비하듯 50여 권의 증권이론서를 독파해 나갔다. 그러나 돈을 벌기는커녕 10년간 처참하게 잃기만 했다.
결국 지식보다 시장을 보는 눈, 시장에 대한 독창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 뒤부터 그는 경제학 공부를 철학공부와 일치시켜 나갔다.
"철학사를 곰곰이 뜯어보면 인간에 대한 탐구이고 세계를 구성하는 원리에 대한 사유가 녹아 있습니다. 경제학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결국 철학을 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 상상과 망상 사이에서 길 찾기
지난 10년간 주식시장에서 탁월한 성공을 거둔 그는 아직도 자가용이 없다. 매일 택시와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
"영감을 얻으려면 끊임없이 구상하고 공상하고 추상해야 해요. 택시 뒷자리에 앉으면 거리의 모습과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머리 속의 실험실을 돌릴 수가 있거든요."
그는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망상과 공상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학습이론에 따르면 망상(妄想)이란 체계화 되지 못하고 흩어지는 생각이다. 그러나 공상(空想)이란 생각의 바탕에 계단을 놓을 수 있는 지적 실험물의 결과물이다.
결국 무엇을 얼마나 오래 공부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내뱉은 언어와 행위가 일관된 생각의 바탕 위에서 나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바탕에서 나오는 사고는 대체로 합리적이라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시골에서 간고등어 굽는 아저씨나 김포공항 앞의 구두닦이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의 고리 위에서 말할 경우 누구라도 설득할 수 있고 통찰력 있는 지식을 생산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그 정도의 저잣거리 지식을 풀어 온 수준에 불과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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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필로그 - 선의(善意)
그는 10여 년간 개미투자자들에게 '지식의 연금술사'로 통해왔다. 그를 통하면 난해한 경제이론이나 투자모형이 명료한 일상의 스토리로 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마치 '경제 전문가'로 대하는 세간의 시선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는 눈치다.
"저는 절대 경제전문가가 아닙니다. 박이부정(博而不精)한 사람이고, 불가(佛家)의 언어로 말하자면 선(禪)을 깨우치지 못한 '알음알이' 단계에 불과합니다. 대신 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저잣거리의 논리로 조금 자유롭게 말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저를 고평가하게 만든 원인이겠죠."
금융시장에 대한 수많은 이론이 있지만 예측 모형을 제시한 이론은 없다. 투자의 귀재로 추앙받는 워렌 버핏이나 피터 린치 모두 공부를 많이 한 학자이기 때문에 추앙 받는 것이 아니라 통찰력을 지닌 '현인(賢人)'이라서다.
"다시 니체로 돌아가면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교향곡은 처음 듣는 사람에겐 불협화음으로 들리는 것이 당연하다고요. 하지만 선의(善意)를 갖고 대하면 어느 순간 소음에 불과하던 소리들이 협화음(協和音)으로 들릴 것이라고, 언젠가 네게 기쁨을 줄 것이라고…. 모든 공부의 원리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정호재 기자[email protected]
아...나는 무엇보다 차가운 우리 아들 마음이 따뜻한 엄친아로 키우고 싶다.
이글을 올리고 운동가서 러닝머신에서 1시간 달리며 생각했다.
'엄친아' 그들은 키워지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는 것이라고...
공부만 잘하는 엄친아는 싫어서 악기,운동도 많이 시키고 책셔틀도 많이 하는데..
우리 아들들은 요즘 무슨 생각하고 사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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