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한 학생으로부터 메일을 받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 얻은 속쓰림이 다시 찌릿찌릿 느껴집니다.
제 수업에서 가장 나이많은 복학생인데 간암 투병을 해 온 친구지요.
얼굴이 새까맣고, 연신 쿨럭쿨럭하면서도 병원예약이 있는 날을 제외하곤,
늘 야구모자 아래로 눈을 반짝이며 별 이상한 질문에도 열심히 토론해왔던 학생이에요.
그런데 그 날 메일엔, 앞으로 생사가 불확실하다는 선고를 들어 두번 남은 수업 마무리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죄송하다고, (치료과정에 대한 긴 설명 끝에) 혹 내년에도 살아있다면 졸업할 수 있도록 F는 받지 않게 해달라는 담담한(?) 글이 있었습니다. 어휴.
요즘 대학에서 학생들을 마주하다 보면, 학생들의 수강선택에서부터 수업진행 모두가 어떻게 하면 다른 스펙쌓기에 영향받지 않으면서 좋은 학점을 받을까에 좇기고 있음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세태가 각박하다 보니, 아이들만 한심하다 할 수도 없지요. 내 수업처럼 지*맞은 경우는 중간 탈락자가 당연히 많습니다. 리딩량도 많고, 조토론에, 영상비평문, 프로젝트 페이퍼에 중간/기말고사 깐깐하고, 수업 중 토론도 만만치 않고... 그러다 보니 꼭 듣고 싶다고 요청했던 녀석들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죄송하다며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남아있는 50여명 친구들은 저 친구같은 용자(!^^) 들이 대부분입니다.
이전 학기 수강생 중에도 집안이 어려워 학비를 벌어야 해서 휴학하고 파주 등지에서 휴대폰 장사를 하고 있다고, 그러면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신나서 메일로 보내온 친구도 있었고, 집달리가 쳐들어와 숨어있다가 기말고사에 늦어 한시간을 더 줬던 친구도 있었고, 농촌활동을 하다 농악에 미쳐 농민연구를 해보겠다던 공학도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 수업 마치며 수줍게 내밀던 용각산이 잊혀지지 않네요.(용각산, 언제적 약인지)
다 21세기 초 한국의 드러운 대학서열의 꼭대기를 일찌감치 차지한 아이들입니다.
값싼 감상에 기대어 서울대를 옹호할 생각은 아닙니다.
그런데, 잘못된 사회현상 (대학서열로 인해 빚어지는 줄줄이 사탕)에 대한 화살이 일단의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로 잘못 겨누어져서는 안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아이들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사회의 대학서열 문제에 대해서는 학생들과도 자주 토론 했었는데요,
어느 누구도 대학서열이 불러일으킨 여러문제들 - 수능이라는 인생의 너무 이른 판가름, 중고등 교육의 황폐화, 대학교육 공동화, 학벌부패, 패거리 짓기, 한국교육 부적응과 기러기 아빠현상... 등등 - 에서 자신이 승자라고 느끼지 못합니다...
문제제기는 명확하지만, 해결책은 단순히 그 서열의 꼭대기를 잘라내는 데 있지 않지요.
서울대 혹은 다른 명문대 사람들 중엔 여러 기득권의 연쇄를 다 차지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학서열에 무임승차하려는 텅빈 수레란 딱지가 붙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외국, 특히 미국의 대학과 비교해서 한국의 대학들을 비하하는 언급에 대해서는 또다른 게시글이 필요하겠습니다만... 미국엔 수없이 많은 수많은 수준의 대학들이 있습니다. 단지 하바드를 위시한 미국의 명문들과 비교하는 것이라면 결과만을 비교하지 말고 그 과정을 비교해야 정당하다고 믿습니다... 단적으로 교육에 투자되는 베이스만 가지고 논의하더라도 하바드의 연간 기부금과 기타 투자액은 감히 비교의 수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 대학교육 개선점이 많고 바깥에서 배울 점이 많겠으나... 개선하려는 노력에 앞서, 비하하고 외면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을 참 맥빠지게 한답니다.
한국대학과 미국대학에서 각각 공부하고 가르쳤던 경험에 비추어보아, 서울대의 인적자원이(교수진/학생 공히) 하바드와 그 근본에서부터 다르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티칭시스템과 공부하는 방식을 몰라서라기보다, 그에 올인할 수 없게 하는 수많은 사회적 장치들이 있습니다. 이 게시글만으로 다 풀어내기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한편으론 바로 미국과 한국을 비교하는 것처럼, 성공에 대한 섣부른 요구들이 빚어내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을 숭상하는 사고가 큰 걸림돌이지요.
좋은 문제제기가 삼천포로 흐른 거 같아 안타까워 껴들어봅니다.
점심시간이 끝나서 다소 뜬금없이 마무리해야겠네요.
이 오랜 대학서열의 병폐, 어디서 어떻게 끊어낼 수 있을지... 부모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어쩌면, 속내용과 관계없이 무턱대고 서울대를 부러워하거나, 배타하는 마음들이
우리사회의 서열로 인한 병폐들을 부풀리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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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 선생님의 책 < 어휘끝 >를 읽고 나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