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큰애(8세)랑 영어책 소리내서 읽기(Read aloud)를 하고 있습니다.
음운인식능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녀석이기 때문에
(그래서 한글도 7세가 되어야 읽기 독립이 되었습니다)
단어 하나 하나를 읽을때 자기 맘대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옆에서 친절하게 알려주면 고쳐서 읽기는 하지만,
좀처럼 소리내서 읽지 않으려 합니다.
묵독이라도 읽는게 어디나 싶어서 그냥 놔뒀더니
아들 녀석이 실토를 했습니다.
-엄마, 내가 속으로 읽으면 마구 내 맘대로 읽어!
간단한 쓰기도 진행하고 있는데
어제는 light란 단어가 나오자
갑자기 벌떡 일어나 자기 방 책장으로 가더니
책을 한권 빼오더니
크리스마스 전구가 나오는 페이지를 펼쳐서 저한테 보여줬습니다.
그 그림옆에 light란 단어가 나왔거든요!
파닉스 규칙에 의해 읽기를 배우는데는 어려움을 느끼지만
글자를 시각화하는 능력은 좋은 녀석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시각화 능력때문에 종종 흐름이 끊기고 산만해져서 문제지만요...
이런 아이의 Read aloud를 어떻게 교육시킬지 다시 고민하던중
예전에 메모해둔 존홀트의 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전에 이 분의 <아이들은 왜 실패하는가>를 소개한적이 있죠?
그 책과 자매편으로 보시면 됩니다.
읽기 교육에 도움이 될만한 팁을 정리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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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떻게 배우는가 존 홀트 | 공양희 옮김
아침이슬 2007.07.10
... 리사는 글 읽는 법은 알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는커녕 아주 글을 배우고 싶어했다.
다만 자기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내가 가르치려고 한 것에 대해 정당하게 분개했던 것뿐이다.
리사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자신이 하고 싶은 때에,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으로 읽기를 배우고 싶었다.
배움의 영역에서 이런 독립심은 학습자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자산중 하나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아이들의 배움을 돕고 싶어 하는 삶이라면
이런 독립심을 존중하고 북돋우는 법을 배워야만 한다.
... 그런데 오래지않아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노라가 앞에서는 바르게 읽은 단어를 뒤에서는 틀리게 읽는 것이었다.
이 일은 여러번 일어났다. 나는 당혹스러웠고 왠지 좀 거슬렸다. ...
나는 생각했다. ‘아니 얘가 벌써 이 단어를 잊어버린거야?
아니면 그저 경솔한 거야, 집중을 안하는 거야, 알아볼 노력을 안하는거야?’
... 그 아이는 정말이지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바로 앞 페이지에서는 알던 단어를 지금 페이지에서는 모를 수가 있단 말인가?....
다른 사람, 특히 아이의 학습 문제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그들의 눈으로 사물을 보려고 해야한다.
.. 그래도 나는 노라의 눈으로 책을 보려고 노력했고,
그러자 서서히 어떤 깨달음이 왔다.
읽을줄 모르거나 인쇄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의 눈에는
거의 모든 단어들이 그저 괴상하게 꼬불거리는 형체로만 엇비슷하게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한 페이지 넘어갈 정도의 시간이라면
앞서 본 단어의 생김새를 기억하기가 쉬울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그 단어를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경우고,
방금 전에 처음으로 그 단어를 본 아이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같은 페이지 안에 있을때조차 단어들이 얼마나 비슷하고 다른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를 말하는 것 또한 아이에겐 쉽지 않다. ...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글자와 단어의 모양에 충분히 익숙해져
단어들 사이의 유사성과 차이점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글자를 익히는 아이들에게는 시간을 아주 많이 주어야한다.
좀 늦되 보인다거나 멍청해 보이는 실수를 하더라도 놀라거나 걱정을 해서는 안된다.
어떤 아이가 한 페이지 안에 있는 두 단어가 서로 같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한 채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다가
갑자기 “아, 알았다. 이게 똑같은 거네!“하고 외칠 때
아이가 해낸 일을 하챦게 여겨서도 안된다.
그것이야말로 아이에겐 진정하고도 중요한 발견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가지는 맨 처음의 감은 극도로 희미하고 시험적인 것이다.
뭔가에 대해 ‘어쩌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고 여기게 만드는
직관의 가장 엷은 형태와 비슷하다고 할까.
이 희미하기만 한 감은 아이들이 시험해보고 확인할 때마다 조금씩 분명해진다.
5퍼센트짜리 감이 10퍼센트가 되고, 그게 다시 20퍼센트가 되는 식이다.
그렇게 천천히 진행되고 나서야
아이들은 마침내 ‘이러이러한 것이 사실이라는 걸 안다.’고 확신에 차서 말하게 된다.
아이들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사람이 실시하는 이런 시험이
아이들의 학습을 망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우선 아이들을 시험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은
희미한 감을 반복적으로 확인함으로써
확실한 지식으로 바꾸어가는 아이들의 더딘 과정을 중간에 끊어버린다.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내용에 대해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일은
방금 막 아교로 붙인 의자에 그들을 앉히는 격이다.
그 구조물은 무너져버린다.
마찬가지로 압력을 받으면
아이들은 자신의 희미한 감을 튼튼하게 만들려는 시도를 그만둬버린다.
그냥 포기하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항상 잊어먹는 아이들은
기억력이 나빠서가 아니라
자신의 기억력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아이들은 자신이 옳을 때에도 여전히 틀렸다고 느낀다.
그들은 결코 ‘그건 이러할 것’이라는 자신의 감을 걸고 도박하지 않으려 한다.
그 감을 확신으로 바꾸려 들지도 않는다.
이런 이유로 나는 노라가 책을 읽다가 실수했을 때
그걸 바로잡거나 지적하려는 유혹에 저항했다.
만일 내가 그렇게 했다면 노라를 불안하고 소심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노라는 자신의 감을 시험할 용기를 잃고
나에게서 답을 받아낼 궁리를 하는데 더욱 몰두했을 것이다.
하지만 노라의 실수를 지적해서는 안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노라 스스로 자기가 한 실수의 대부분을 알아차리고 고쳐나갈 줄 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그건 아이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놔둘 때,
부담감을 주지 않고 불안하게 만들지 않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은 우리가 논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순서에 따라 배우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흔히 어려운 것을 쉬운 것보다 나중에 배우는 게 논리에 맞는다고 생각하지만
의미를 찾는 탐구자인 아이들은 어려운 것에 더 먼저 접근하기도 한다.
그쪽에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을 경우에 말이다.
이는 페퍼트 식으로 말하자면 아이들이 세계로부터 훨씬 덜 분리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 어떤 일의 쉽고 어려움을 머릿속에 인식시키는건
그 일이 포함하고 있는 정보의 양이 아니다.
그건 오히려 그 일이 얼마나 재미있느냐와 상관이 있다.
다시 말해 그 일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얼마나 자신의 현실과 관계가 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는 얘기다.
도전이란 어떤 삶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시키는 일을 말한다.
도전은 그 능력을 확신하게 만드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람은 성공할 수 있다는 충분한 자신이 있을 때 도전하고 싶어 한다.
반면 자기가 이룩하거나 대처하기에는 뭔가 부족할 것 같아 보이는 임무는 위협이 된다.
먼저 쓰기와 읽기가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느끼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시작한다면
우리는 굳이 아이들에게 쓰기와 읽기에 관한 기술을 익히라고 꼬드기거나 들볶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이들 스스로 그 일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원본 게시물: http://www.suksuk.co.kr/momboard/read.php?table=BEC_001&number=45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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